”그 여자’도 안됐지, 남편을 뺏겼으니…’

“스무살 첫사랑이라 그런지 잊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30여 년을 자식들 키우며 그렇게 혼자 살았지”

9일 전북 익산에서 ’열린 납북자 가족 한마당’에 참석한 귀환어부 최욱일(67)씨의 부인 양정자(66.경기 안산)씨는 그간의 서러움이 몰려온 듯 눈시울을 적시며 ’첫 사랑’때문에 버텨온 세월을 풀어놨다.

지난해 12월25일 밤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넌 최씨와 33년 만에 재회한 뒤 다시 석달여를 같이 살고 있는 양씨는 “속초에 살던 남편을 주문진에서 만나 중매로 결혼했다. 남자 품이라고는 처음이어서 납북된 뒤에도 30여 년을 한결같이 그리워하고 잊지 못했다”고 말했다.

양씨는 “식당 허드렛일은 물론 오징어 덕장, 생선 행상, 연탄 배달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고 회고하며 “4남매를 모두 시집.장가보내고 나니 남은 것은 관절염과 신경통 등 망가진 몸뿐”이라며 한숨 지었다.

어부인 남편 최씨가 1975년 오징어잡이를 나갔다가 동해에서 납북된 후 소식이 끊기자 연좌제 등을 우려해 사망신고를 내고 제사까지 지내며 살았지만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강한 믿음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던 양씨.

그래서인 지 ’과부 아닌 과부’로 살아온 자신과 달리 납북 뒤 ’생존을 위해’ 북한 여자와 결혼한 남편을 원망하거나 미워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남편의 북한 아내) 여자도 참 안됐어. 남편을 뺏겼으니…불쌍하고 돈만 있다면 데려와 같이 살고 싶다”며 이전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있는 북한의 ’그 여자’에게 연민의 정을 내보였다.

그는 “재미나게 살지 못했던 젊은 시절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귀환한 남편과 함께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겠다”면서 “경제적으로 사정이 나아지면 보신탕과 사골 국을 많이 먹일 것”이라고 말했다.

양씨는 “남편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1월 주민등록 신청을 했으나 두 달 넘게 관공서로부터 소식이 없다”며 “”건강에 큰 이상은 없지만 건강보험도 안돼 병원에 갈 엄두가 안 난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최씨의 경우처럼 사망신고 후 주민등록증을 재발급 받으려면 본인이 법원에 출두해 생존해 있음을 증명하고 본적지 전적 기록을 삭제하는 등의 재판 절차를 거쳐야 하며 이어 법원에서 생환 사실이 확정되면 관련 서류를 주소지 관청에 제출하고 호적에 이 사실을 기록, 주민등록증 재발급 신청을 하면 된다.

33년 만에 다시 만나 ’첫날 밤’을 보낸 이야기를 묻자 ”비록 몸은 늙었지만 남자 앞이라…“더니 ”남편이어서 그런지 많이 서먹하거나 부끄럽지는 않았다“며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띄웠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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