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안풀리는 ‘朴씨 피살’ 미스터리

고 박왕자 씨 피살사건을 조사 중인 정부 합동조사단이 1일 “(북한군에 의한) 총격은 고 박왕자 씨가 정지해 있거나 천천히 걷고 있을 때 100m 이내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모의실험 결과를 밝혔다.

김동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총기연구실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측의 주장대로 박 씨가 도주하는 상황이었다면, 사거리는 100m 이내보다 가까웠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북한군이 박 씨를 안전하게 해수욕장 경계선 밖으로 퇴거조치 할 수 있었는데도 등 뒤에서 총격을 가한 것이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해 사건발생 초기 북측이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을 통해 전달한 ‘정황’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될 전망이다.

합조단은 이날 총격이 최소 3발이라는 사실과 모래사장에서 이동거리별 소요시간, 사건 발생 시간대의 사물 식별 가능거리, 사격 방향 등을 모두 추정해냈다.

그러나 박 씨의 정확한 이동경로 등은 여전히 파악할 수 없어 북측이 주장하는 이동거리와 피살 시간 등에 대한 ‘진실’은 여전히 미궁 속에 남게 됐다.

▲ 정확히 몇 시에 쐈나?

북한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은 북한군 초병이 박 씨를 발견하고 ‘섯! 움직이면 쏜다’며 제지했으나 박 씨가 도망치자 쫒아가 공포탄을 쏜 후 조준사격으로 세 발을 쐈다고 주장했다.

북측이 주장하는 박 씨의 피격 시각은 새벽 4시 55분에서 5시 정각 사이다. 이에 대해 당시 해수욕장 근방에 있던 관광객들은 총성 소리가 5시에서 5시 20분 사이에 울렸다고 증언했고, 합조단은 관광객들의 증언과 수집한 사진자료 등을 통해 5시 16분 이전이라고 결론내렸다.

피격 시간은 북한군이 ‘박 씨가 여성인지 아닌지, 관광객인지 아닌지를 식별할 수 있느냐’를 추정하는데 중요한 증거다.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측은 새벽이라 ‘알아보기 힘든 상황’이라고 주장했고, 관광객들은 ‘(총소리가 들렸을 당시) 이미 날이 환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합조단은 사물식별 실험을 통해 “새벽 5시경에도 이미 50m 거리에서 남녀 식별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확정했다.

합조단의 실험 결과와 관광객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군은 남녀 식별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박 씨를 조준 사격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특히나 합조단의 실험 결과 박 씨가 도주 상황이었을 경우, 북한군의 총격거리가 최대 60m 이내일 것으로 밝혀져 ‘식별 불가능’을 암시하는 북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 도대체 몇 발을 쐈나?

북측의 주장은 ‘공탄(공포탄) 1발과 실탄 3발’이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10초 간격으로 2번 총성이 울렸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합조단은 ‘최소 3발’이라고 확정했다.

김동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총기연구실장은 이날 “몇 발을 쐈던 간에 박 씨의 사체에 나타난 총상형태를 봐서는 최소 3발은 확정을 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합조단은 사거리별 사격실험, 박 씨의 허벅지의 상처 등을 토대로 첫 번째 발사된 탄환이 박 씨의 발 주변에 맞아 조개껍데기나 돌이 부서지면서 허벅지를 타격하자 그 자리에 멈췄고 그 이후에 엉덩이와 등에 총을 맞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추정대로라면 박 씨가 멈춘 상태에서도 북한군이 총격을 계속 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합조단은 박 씨의 앞이나 뒤 어느 한 방향에서 각각 2발이 발사되거나 전․후방에서 각각 1발씩 발사됐을 가능성이 모두 있다는 결론을 내려 총격을 가한 북한군이 1명 이상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 ‘경고’와 ‘공포탄’, 진짜 있었나?

북측은 “공포탄까지 쏘면서 거듭 서라고 하였으나 계속 도망쳤기 때문에 사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도 “사고자는 평지처럼 다져진 해안가를 이용해 달렸고, 북측 초병은 발이 빠지는 모래사장 위로 추격하다보니 초병과 사고자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고, 이에 경고 사격을 한 차례 했으나 그렇게 해도 멈추지 않자 세 발의 조준사격을 하게 됐다고 해명했다”고 북측의 입장을 전했다.

합조단의 실험에서 북측에서 주장하는 경고 여부는 확인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합조단은 박 씨의 총상 자국과 옷에 남은 탄흔을 근거로 ‘천천히 걷고 있거나 정지 상태에서 총에 맞았다’고 추론했다.

합조단의 보고에 따르면 박 씨는 애초부터 북한군으로부터 도주하지 않았거나, 도주를 멈춘 상태에서 조준 사격 당한 것이 된다. 혹은 북측의 주장을 다 인정한다 하더라도 북한군은 최초 발사된 탄환에 의해 멈춘 박 씨에게 두 발을 더 발사한 것이 된다.

황부기 합조단장은 이날 모의실험 결과 발표에 앞서 “합동조사단의 모의실험은 북측의 주장에서 문제점이 무엇인지 밝히는 한편 당시 사건 현장을 재구성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진상을 정확히 밝히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진상조사단의 방북 현장 조사가 빠른 시일 안에 이뤄져 제기되고 있는 모든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