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입력 안된 단어’를 들려주자

▲ 미 하원 건물내에서 기습 시위 벌인 김 대표

인터넷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가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 한성렬과 미국의회 건물에서 마주친 이야기가 탈북자들 사이에서 즐겁게 회자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의 길은 ‘김정일 타도’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서있는 김성민 대표에게 한성렬은 “너 이 ×× 죽을래?”하고 흥분했다 한다. 그 ‘××’에 담겨있는 말이 무엇일까 상상해보면서 혼자 웃고 흐뭇해했던 것은 모든 탈북자들의 공통된 심정이었을 것이다. 우선 김성민 대표의 통쾌한 한판승에 박수를 보낸다.

그 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그 자리의 상황이 자연스레 그려져, 지금도 자꾸 웃음이 나온다. 한성렬이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을까? 한상렬의 불쾌감이 심히 이해가 된다. 북한에서는 하나님보다 한참 상급이며, 신(神)중의 최고 신으로 모셔지는 김정일의 이름 석자를 존칭어도 없이 그냥 말하면서, 게다가 ‘타도’라는 단어를 곁들어 듣게 되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 말을 같은 동향인(同鄕人)에게서 듣게 되었으니 말이다.

머리 속 사전에 입력되어 본 적조차 없는 ‘김정일 타도’라는 말을, 이제는 자유인이 된 동향의 후배에게 듣는 순간 한성렬은 심장이 터질 듯한 격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런 척’ 해야 하는 것이 북한의 생리다. 그런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으면, 지금쯤 한성렬은 목이 열 개라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남한 삐라 처음 봤을 때의 충격

내가 북한 체제에 의구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 2학년 ‘고사포병 구분대’ 생활을 할 때였다. 북한 대학생들은 재학기간 중 6개월간 군사훈련을 의무적으로 마쳐야 한다.

부대의 난방을 위한 땔감을 마련하러 산에 올라갔다 남한에서 보낸 삐라를 보았다. 내용인즉 동구라파에 유학이던 북한 대학생이 남한으로 귀순한 후 가진 기자회견 내용이 들어 있었다. 호기심이 많은 대학시절인지라 주위를 수십 번이나 경계하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읽었다.

그 유학생의 기자회견 내용 가운데 ‘김일성 부자(父子)의 40년 독재’라는 표현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북한에서 ‘독재’라고 하면 남한의 박정희나 칠레의 피노체트 같은 경우만 일방적으로 교육받아왔던지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의 행위가 ‘독재’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우리 체제가 대외적으로 ‘독재사회’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뒤통수를 둔기로 맞은 듯, 머리가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독재라는 말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우리(북한)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너무도 단순한 사실을 스무살이 되어서야 깨닫다니! 그 전에 내 머릿속 사전에는 ‘우리 체제도 독재일 수 있다’는 사고의 가능성 조차 입력되어 있지 않았다.

유학생의 기자회견 내용 가운데 또 하나 잊혀지지 않는 것은 “지금 내가 신고 있는 이 신발은 바르샤바 백화점에서 산 대한민국 제품이다”라는 말이었다. 남조선이 동구라파의 백화점에까지 수출을 할 정도로 잘 살고 개방적인 국가라는 것을, 그때 또한 처음 알았다.

‘반복을 통한 학습효과’ 노려야

물론 지금 한성렬은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잘 산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김정일을 반대하는 세계적 흐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타도’라는 말을 면전에서 듣는 건 처음일 게다. 이런 말을 한성렬뿐 아니라 북한의 외교관들에게, 북한의 간부들에게, 나아가 북한 주민들에게 자꾸 들려줘야 한다.

그래서 ‘김정일’이라는 이름 석자가 ‘타도’라는 단어와도 결부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 그들의 머릿속 사전에 한번도 입력되어 본 적 없는 단어가 자꾸 입력되도록 상기시켜 줘야 한다. 예컨대 “김정일 정권이 타도되어야 통일이 된다”거나, “북한의 세습독재는 끝나야 한다”, “구걸하고 갈취하며 연명하는 국가는 북한 밖에 없다”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가 그들 귀에 이제는 들리도록 해야 한다.

김성민 대표의 쾌거가 있던 날, 내가 다니는 회사의 남한사람들은 “그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하고 물었다. 심적으로 쾌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자극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북한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태어나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 본 적 없고,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그럴 수도 있다’고 일깨워주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효과다. 강조하건대, 북한 주민들은 태어나서 한번도 사고의 회로(回路)에 그런 생각을 입력해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당장은 화를 낼 지 몰라도, 잠자리에 누워서 참 많을 생각을 할 것이다. 이것을 ‘반복을 통한 학습효과’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여간 “너 이 ×× 죽을래?”라는 구수한(?) 북한욕설을 상상하니 나는 마냥 즐거웠다. 얼추 상상은 되지만 김성민 대표가 귀국하면 그 ‘××’가 무엇이었는지 전화를 걸어 물어봐야겠다. 북한 주민들에게 한번도 입력되어 본 적 없는 ‘김정일 타도’라는 단어를 입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김은철

1970년 평안북도 신의주 출생
관서대학 물리학부 졸업
고등중학교 물리교사
1997년 탈북, 1999년 입국
현재 인터넷 업계 종사, <백두한라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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