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反美…‘연대사태’ 그리고 10년

▲ 13일 저녁 연세대 운동장에서 열린 ‘연대항쟁 10주년 기념대회’ ⓒ데일리NK

13일 저녁 ‘8.15 대학생 축전’과 ‘연대항쟁 10주년 기념식’이 열릴 예정인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앞은 여느 때처럼 젊은이들의 열기로 넘쳐났다.

학교 입구부터 줄지어있는 ‘우리민족끼리 통일’, ‘주한미군철수’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과 선전물들이 아니라면 이 곳에서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주도의 집회가 열린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한산한 분위기다.

학내에는 마침 노천극장에서 열리는 인기가수의 콘서트를 보러 온 젊은 세대들이 줄지어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고, 정문부터 줄지어진 각종 반미선전물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

연세대 정문에서 왼쪽에 위치한 운동장 길목에 들어서자마자 ‘주한미군 철수하고 평화통일 이뤄내자’는 구호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폭력적인 투쟁구호 속에서 이 곳의 시계추는 10년 전으로 급박하게 되돌아갔다.

그러나 10년 동안 한결같이 ‘미군철수’를 외쳐온 사이 이들은 점차 운동장 한 귀퉁이로 밀려나 있었다. 누가 봐도 그들은 초라해질 대로 초라해 졌고, 목소리는 운동장 담을 사이로 세상과 단절됐다.

‘8.15대학생 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한총련 소속 대학생 1천여 명은 13일 저녁 연세대 운동장에서 지난 96년 벌어졌던 연대사태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

행사 참가자들은 96년 연대사태를 ‘연대항쟁’이라 칭하며 당시 김영삼 정부가 대학생들의 정당한 평화통일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고 입을 모았다.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회장은 “당시 연세대에는 7차 범민족대회와 7차 범청학련 통일대축전을 열기 위해 4~5만 명의 학생, 노동자 시민단체들이 평화적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며 “폭력경찰 수만 명은 연대를 겹겹이 에워싸고 학생들을 고립시키며 야만적인 진압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 한총련의 학내 진입을 반대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추승호 씨 ⓒ데일리NK

권 회장은 이어 “북한 미사일 발사는 자위적 군사 조치다. 물리적 억제력을 갖는 게 중요하다. 억제력이 없었다면 이 땅에 수없이 전쟁이 발생했을 것”이라며 행사 의도와는 상관없이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옹호 하는 발언도 했다.

이 자리에서는 범청학련 북측본부(의장 김인호)가 보내온 기념사도 낭독됐다. 이들은 “조국통일을 위해서는 조미간 평화조약이 체결되야 하고, 외세에 의해 초래된 위기 국면을 타개하며, 6.15기본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민족끼리 이념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측의 주장은 한총련 등 통일단체들의 발언과 글자만 몇 개 바뀌었을 뿐, 거의 동일한 내용이었다. 한총련이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고장난 녹음기’라는 지적이 한 치도 틀림이 없었다.

이들이 ‘연대항쟁’의 의의를 기리며 이어나가자는 높은 뜻도 결국 ‘주한미군철수’ 등의 반미구호로 점철됐다.

14기 한총련 의장인 전남대 총학생회 장송회(26) 회장은 주한미군을 ‘만악의 근원’이라고 규정하며 “미국 놈들에 의한 전쟁 책동이 계속되고 있다. 침략자 미제를 한시라도 빨리 몰아내자”고 말했다.

이어 “친미수구세력들이 남북한의 영구적 분단을 꾀하고 있다”며 “이들을 절대로 용서치 말자”고 선동했다.

한편, 연세대학교 측은 대회 이전에 한총련 주도의 ‘8.15통일축전’ 교내 개최를 절대 불허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교수평의회에서도 외부세력이 참여하는 이번 행사의 개최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일반 학생들은 1인 시위 등을 통해 적극적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13일 저녁 연대 앞에서 ‘815 행사단의 무단 교내진입을 반대합니다’는 플래카드를 목에 걸고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던 추승호(27.노어노문학과)씨는 “행사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단으로 학내에 진입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 1인시위에 동참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윤한울(24. 정치외교학과) 씨가 주도한 ‘8.15 연세인 권리장정 학생대책위원회’도 13일 성명서를 내고 “소위 ‘진보단체’들의 학내 공간 무단 점거에 반대, 조직적인 대응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연세대 홈페이지에는 통일축전 행사 강행을 비판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연대사태 당시 한총련 중앙간부 출신 K씨는 “당시 연대사태는 정명기 의장을 중심으로 강경파가 결사항전을 통해 김영삼 정부 타도를 주장할 정도로 정세인식이 수준 이하였다”면서 “종합관이 경찰에 진압되고 나서야 탈출을 시도할 정도로 판단력이 없었고, 폭력투쟁을 적극 주도한 책임도 지도부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대사태 이후 학생운동이 몰락의 길을 갔음에도, 마치 그 사건이 대단한 ‘항쟁’이었던 것처럼 미화하려는 것은 여전히 한총련이 변화할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연세대 정문에 부착돼 있는 상반된 두 문구 ⓒ데일리NK

▲ ‘8.15대학생 축전’ 참가 대학생들은 연세대 정문부터 반미구호가 적힌 플래카드와 선전문을 부착했다 ⓒ데일리NK

▲ 96년 연대사태 당시 4기 한총련 의장을 맡았던 정명기(왼.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씨와 96년 당시 활동했던 문예단도 이 날 행사에 참가했다 ⓒ데일리NK

▲ 14기 한총련 의장 장송회 전남대 총학생회장(왼). 96년 연대사태 당시를 극화한 가극간 ‘미래’의 공연 ⓒ데일리NK

▲ 구호를 외치는 ‘8.15대학생 축전’ 참가 대학생들 ⓒ데일리NK

양정아 기자 junga@dailynk.com
김소영 기자 cacap@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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