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들판 저너머 어떤 야욕 느껴지지 않나?

I.
23일 연평도 포격 이후 국민의 관심과 분노는 청와대의 ‘단호하게 대응하되 확전하지 말라’는 황당한 명령, 혹은 의사소통 장애현상에 집중되고 있다. “김정일 포탄 이전에 ‘MB 한심’ 때문에 뇌혈관이 터져 죽을 것만 같다”는 언론인 류근일 선생의 말, “청와대와 정부 내의 개자식들”이라는 홍사덕 의원의 말이 억장이 무너지고 있는 국민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의 핵심을 잘못 잡고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북한에 더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비난하지만, 실제 대한민국의 능력으로는 그 ‘단호한 대응’이 불가능함을 이제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왜 그러한가? 한국 사회는 원심분리 되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1950년 남침하기 전에 박헌영은 전쟁이 시작되면 남한의 방방곡곡에서 남로당원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전쟁이 터지자 남로당의 대규모 봉기는 없었다. 놀랍게도 한국전쟁 발발 이후 60년이 지난 2010년, 김일성이 꿈에도 그리던 ‘그 봉기’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나 이정희 민노당대표 등의 종북발언들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들은 김정일이 저지르는 모든 패악을 한국의 언론의 자유를 이용하여 대변하는 김정일 망치의 모루이지만, 이들이 갖고 있는 화병 유발물질은 그 성분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박지원-이정희류의 종북 보다 더 무서운 봉기들이 숱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런 봉기들은 일상적으로 일어나 아무도 그것이 김정일의 적화통일 대남혁명을 위한 ‘봉기’라는 점을 모르고 있다. 이런 봉기들은 파시즘 연구가들이 이른바 ‘일상속의 파시즘’이라고 부르는 것과 흡사하여, 우리는 이들을 ‘일상속의 친북봉기’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II.


김대중-노무현 정권하의 햇볕정책이 이러한 봉기의 출발점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이 북한에 원조를 퍼부으면 북한정권이 개방에 나설 것’이라는 햇볕정책은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 놓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즉 ‘북한에 퍼주는 것’이 원인이요, ‘북한이 개방하는 것’이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개방을 안 하면 안 할수록 햇볕주의자들은 더 퍼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의 신앙이자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햇볕주의자들은 아직 충분히 주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우파정권이 햇볕을 막았기 때문에 북한이 개방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도발하면 한국이 아직 충분히 ‘대북 프렌드리’ 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났으므로, 특사 밀사 칙사 현금 등을 동원, 이른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크게 주고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니 ‘일단 주고 나중에 받을 것’을 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인과관계를 도치시킨 햇볕정책은 우리 국민의 엄청난 인식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 ‘북한정권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한반도 평화구조 정착을 목표로 하는 햇볕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전쟁광의 행태다. 둘째, 북한경제의 붕괴로 인해 인민은 물론, 군대조차 영양실조, 기름부족, 훈련부족 등에 시달려 전쟁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셋째, 북한과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행동하는 것은 돈을 주어 달래는 것보다 비싼 대가를 치룰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북한과의 분쟁에서 희생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개죽음’이다.


지난 5월 천안함 폭침의 원인이 밝혀졌어도 국민의 30%는 한국조작설을 주장하고, 군에 입대한 일부 젊은이들은 지방선거 직전에 ‘MB 때문에 전쟁 나게 되었으니 아빠가 어떻게 해봐~’라고 전화를 하게 된 심리적 배경에 이러한  햇볕정책의 후과가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국민의식의 변화가 국민에게서만 끝날 수는 없다. 정치인들은 진실보다는 표를 의식하고, 김정일 정권에 대한 대응보다는 대화, 대화가 아니면 유화, 유화는 아니더라도 위원장의 심기를 거스리지 않으려는 정책을 선호하게 되었다.


지식인 역시 ‘평화’와 ‘대화’의 담론이 주는 자기도취적, 자위적 환상에 빠져서 북한인권법에도,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도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나아가 전 국민이 김정일에 부치는 ‘국방위원장’이라는 호칭을 자신의 거칠지 않음을 증명하는 고상한 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즉 우리는 위원장님 앞에서 스스로 기를 꺾었다.


특히 좌파정권하의 한국군 장교들 역시 ‘적을 끝까지 쫓아가 섬멸한다’는 것은 잘못하면 ‘스스로를 섬멸’함을 반복하여 보게 되었다. 사회 전체가 김정일 정권과의 대결의식을 고무하기 보다는 이런 대결의식을 가진 자들을 시대에 뒤떨어진 극우잔당 정도로 경멸하게 되자, 비록 국가방위의 신성한 임무에 대해 의심은 없더라도 그 성의와 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III.


연평도 포격 시 청와대 지하벙커는 흥분이나 분노보다는 관리차원의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천인공노할 일이 벌어지더라도 냉철함을 유지해야하는 지휘부의 성격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G20의 열정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북한이슈는 거칠고 냄새나고 귀찮은 것이다.


바로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태도들: 우선 나부터 피하고 보자. 일을 크게 벌려야 좋을 것 없다. 확전이 되면 어떻게 수습하나? 빨리 원상태로 돌아가고 싶다. 지금 조금 모욕을 참는 것이 나중에 오랜 기간 편하다. 북한문제는 나에게는 현실이 아니다 등등.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김정일 정권과의 관계에서 일상적으로 행하는 ‘대남혁명 환영봉기’인 것이다. 이런 봉기들은 수없이 많지만 너무나 일상적이고 또 섬세하여 우리들은 그것을 하나의 패션, 현대적 세련됨으로 착각한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현대적 감각을 쫓아 당의 노선을 ‘개혁중도보수’라고 명칭하였다. ‘단호하게 대응하되 확전하지 말라’는 벙커용 기도문의 원형(原型)이고, 이념 미필(未畢), 군대 미필들의 ‘이것도 내 것이고 저것도 내 것’이라는 오렌지성 발언들이다.


이런 상태에서 대한민국은 서서히, 그러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원심 분리되었다. 친북좌파 정치인, 사회단체, 지식인들이 마음대로 설치고 돌아다닐 수 있는 드넓은 수원지(水源池)가 생겼다. 비록 북한에 강경한 대응을 주장하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있지만, 자칭 세련되고 지적인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연평도 포격이 있은 지 바로 이틀 후에 ‘유연한 대북정책’을 라디오에서 주장한다. 전국 규모의 ‘봉숭아 학당’이 따로 없다.


이런 상황은 한마디로 햇볕정책 이후 우파의 대북정책에 아무런 비전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비핵개방개혁 3000’은 비젼이 아니라 거래조건일 뿐이다. 확전이 되어 북한을 궤멸시켜도 그 다음에 재건할 수 있다는 아무런 믿음도 희망도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 2010년 대한민국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의 대가가 바로 후대에 물려줄 통일의 위업이라는 생각대신, 통일 안하면 ‘개죽음’  ‘개희생’도 없다고 주장한다. 통일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으니, 두들겨 맞더라도 현 상태(status quo)로 돌아가는 것이 국민, 군대 그리고 대통령의 유일한 비전이다. 즉, 비전 없음이 우리의 비전이다.


IV.


필자는 김정일의 눈빛이 조만간 땅에 떨어질 것이며, 북한정권의 붕괴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천안함 폭침부터, 우라늄 농축, 그리고 연평도 포격을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후계자 구도에서 보고 실제로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야욕의 치달음이 들판 저 너머로부터 미세하게 느껴지고 있지 않은가? 죽기 전, 붕괴되기 전 마지막 투전을 김정일은 할지도 모른다. 그 자신 20년의 잔인한 권력투쟁을 통해 후계자 자리를 거머쥐었으니, 어린 김정은을 그냥 두고 죽을 경우 그의 생존가능성이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나아가 2012년 강성대국의 해, 아무리 말장난으로 넘기려 해도 그냥 지나갈 수 없는 해이기도 하다. 현재 상황이라면 중국은 이 야욕이 실현되는 것을 막지 않을 것이고, 일본은 막을 능력이 없으며, 미국은 막으려 해도 한국국민의 의지 없음에 실망할 것이다.


실제로 연평도는 한국의 방어 의지가 없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상황임이 드러났다. 수만의 인민군 병사와 1,000 여개의 대포에, 고작 가끔 작동하는 것도 있는 K-9 10여문과 얼마 안 되는 해병대원이 전부다. 또 다른 섬 여의도에서는 김정일의 공동정범들이 활개치고 다녀도, 이제는 그것을 민주화된 한국의 현실로 자부한다.


판사들은 바로 이러한 김정일의 친구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을 정의의 실현으로 인식하고 있다. 야당 정치인은 김정일과의 투쟁보다는 여당과의 투쟁을, 수용소 넘어 북한인민의 목소리보다는 지역구 내의 표에만 관심이 있다. 언론인은 진실보다 자신의 상상과 망상을 ‘On-Air’하는 것이 언론자유의 고귀한 실현으로 간주한다.


야욕이 있는 자라면 죽기 전에 마지막 투전 한 판의 상황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김정일에게는 독기어린 인민군과 핵이 있고, 한국에는 협박이든 도발이든 그 무엇을 당하더라도 ‘만약 다시 도발하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라는 기도문만이 있다. 이제 아직 사라지지 않은 노병이라면 전장에서 죽겠다는 결의가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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