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키신저가 ‘老兵’…北核해법, 한미중 대타협해야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방북 이후 오바마 행정부 안에서 약간의 변화가 감지된다.

뉴욕타임스(NYT)는 9일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벽한 폐기보다는, 핵기술의 확산을 막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는 이는 거의 없고, 현실적인 목표는 김정일이 핵 제조 기술을 수출해 돈을 벌어들이고 권력을 확충하는 능력을 무력화(neutralize)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물론 오바마 행정부의 공식적인 북핵 목표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다. 하지만 이 목표의 현실성 문제를 놓고 설왕설래가 있는 모양이다.

10일자 조선일보는 미국 외교가의 노병(老兵) 헨리 키신저가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을 소개했다.

키신저는 “북한의 유화 정책에 속지 말고 북한 핵 프로그램의 폐기 정책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으로, 미국이 정책 방향을 바꾸고 미북 양자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며 “북한은 당장에라도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전망으로 우리의 관심을 돌리려는, 매우 잘 확립된 전술을 다시 구사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키신저는 또 “북한이 핵무장을 하느냐, 비핵(非核)국가가 되느냐 사이엔 중간 지점이란 없다”며 “북한이 만들어낸 ‘온화한 환경'(클린턴 방북)으로 인해, 미국과 동맹국이 분위기와 본질을 혼동하는 샛길로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간을 정해놓고 그 안에 북한의 핵 능력을 제거하는 것이 아닌, 다른 어떤 결과도 전 세계의 비확산 전망과 전 지구적인 평화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행정부 대북정책의 현안도 핵문제다. 북한인권이나 개혁개방은 일단 뒤로 미뤄져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북핵 정책이 CVID에서 ‘확산 방지’ 쪽으로 확실히 건너갈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북한정권의 의도를 읽어내는 능력은 아무래도 노병 키신저가 나은 것 같다.

특히, 키신저가 말한 “기간을 정해놓고 그 안에 북한의 핵 능력을 제거하는 것”은 그나마 김정일의 핵전략을 약화시키는 데 일정한 도움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김정일 정권에게 시한을 주고 ‘언제까지 핵을 다 폐기해라. 그 이후 IAEA가 검증 사찰에 들어갈 것인데, 만약 이 제의를 따르면 국제사회는 북한이 정상국가로 가는 데 아낌없는 지원을 해줄 것이고, 거부한다면 핵이 완전히 폐기되기 전까지 국제사회는 봉쇄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김정일에게 ‘통첩’해주는 것이다.

이같은 통첩을 한 다음 북한을 제외한 5자가 모여 김정일이 거부할 경우에 대비해서 유엔 차원과 5자 차원의 각각의 대비 방안을 정기적으로 논의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물론 김정일은 그런 제의를 거부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가 이같은 통첩에 따른 봉쇄와 압박, 고립 전략을 지속할 경우, 그나마 김정일의 핵전략을 둔화시키는 데는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김정일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한을 두지 않으면 북한 핵이 ‘폐기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확산되는 방향’으로 가도록 만든다. 지난 17년 간의 과정과 결과가 이를 입증하고 있으며, 또 이 길이 김정일 정권이 체제를 연명하면서 살아갈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6자회담 내 미북 양자회담이든, 별도 양자회담이든, 북한은 처음에는 마치 뭔가 잘 될듯한 분위기를 잡겠지만, 결국 북한은 ‘미북 관계개선’이라는 이름 하에 ‘미북 핵군축 논의’ ‘先 주한미군 철수’ 등 공허한 주장을 되풀이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김정일이 시간을 벌면서 국제사회의 북핵폐기 노력을 방어해내고 동시에 ‘북한은 핵국가’라는 사실을 기정사실화 시켜가면서 남한 내부 여론을 흔들어놓는 전략이다.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언급한 ‘기간을 정해놓고 북한 핵 능력을 제거하는 것’은 지금까지 해온 방안 중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만약 이 방안을 5자가 받아들인다면 김정일이 좀 긴장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김정일이 거부한 뒤의 ‘후속조치’가 문제다. 미국은 ‘기간이 지난 뒤 프로그램’으로 군사작전을 상정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군사작전은 중국을 설득해내기 어렵다. 또 현실적으로 중국에게 ‘기간을 정한 폐기 방안’을 제시한다면, 중국은 ‘6자회담을 통한 평화적, 외교적 해결’ 노래를 계속 부를 것이다. 하지만 한미일러가 강력히 요구한다면 중국도 일단은 수용할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간을 정해놓는 방안도 북한의 완전 핵폐기를 이끌어내기는 어렵고, 단지 김정일의 핵전략 둔화에 약간의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결국 북한 핵문제 해결방안은 6자회담을 통해 지속적으로 핵폐기를 압박하면서(A트랙), 북한을 개혁개방 체제로 몰아넣는(B트랙) 방안을 병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에 개혁개방 정부를 세우면서 ‘결과적으로 북한에 핵무기가 필요없게 되는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 방안이 북핵 완전 폐기로 가는 가장 현실적인 길인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미래’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합의를 해야 한다. 그 합의안을 먼저 한국이 만들어서 미국에 제시하고, 그 다음 ‘한미 합동’으로 중국에 제시하는 것이 순서다.

이 대목에서 ‘한국이 먼저 그 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한반도의 앞날과 관련하여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한반도는 어차피 4대 강국 속에 둘러싸여 있다. 이 지리정치적 환경은 극복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능동적으로, 창의적으로 먼저 움직이느냐, 결과적으로 주변의 피동에 휘말리느냐 하는 문제는, 그 결과된 현실에서 하늘과 땅 차이가 나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그래서 한반도 문제는 결코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하기 어려운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100년 전의 한반도 상황’과 지금은 질적으로 많이 다르지만, 우리의 운명이 ‘창의적 능동성’에 크게 달려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지금 그 ‘중대한 시간’이 자꾸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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