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감각’조차 상실한 ‘기자협회 9·19 1주년 성명’

22일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해 인터넷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은 9·19공동성명 1년을 기념해 단체 공동명의로 ‘미국부터 올바로 처신하라’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북핵 해결을 위한 9·19공동성명이 파탄상태에 이른 원인이 미국의 금융제재 때문이며, 지난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따른 유엔의 대북결의안과 일본·호주의 제재 동참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해서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중단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한심한 말 장난 수준이다.

구체적인 사실과 균형감각으로 무장해야 될 기자들이 한총련이나 친북단체들이 내놓을 법한 한심한 성명을 내놓은 것이 같은 기자 입장에서 부끄럽고 당혹스럽다.

이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유엔안보리 회원국이 15: 0 만장일치로 채택한 대북결의안마저 ‘주권국가의 고유한 권리’라면서 ‘위협이 되지 않는다’ ‘부당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또 인도나 중국, 한국, 미국 등 전세계 국가들이 통상적인 미사일 발사훈련을 실시하는데 북한만 문제 삼아 제재를 추진하는 것은 ‘독선의 논리’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국제사회의 안보를 위협했다는 것은 안보리 결의에서 15개국 전원이 확인한 것이다. 중국, 러시아도 동북아 평화를 위협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유엔의 결의가 ‘독선의 논리’라면 독선이 아닌 것이 대체 무엇인가.

합동참모본부는 미사일 사태후 노동·스커드 미사일이 목표지점에 비교적 정확히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노동·스커드 미사일은 이미 실험발사와 실전배치가 끝난 상태다. 한반도를 사정거리에 둔 미사일을 무더기로 쏘아대며 무력시위를 벌인 것이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위협’인가.

성명은 ‘뉴욕타임즈 등 미국의 유수한 언론과 한반도 전문가 등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주권국가의 고유한 권리이며 다른 나라에 위해가 되지 않을 경우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만 유독 문제 삼는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성명이 인용한 뉴욕타임스 사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국제법이나 협약 위반이 아니기 때문에 안보리 제재 대상이 아니다’는 제재의 형식을 문제삼았지, 위협이 아니라거나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은 하지 않았다.

이 신문은 ‘안보리를 통한 제재가 아니라 가장 영향력이 있는 한·중·미 3국이 북한의 핵과 장거리 미사일 폐기를 위해 북한에 대한 단기적 제재나 장기적 인센티브를 궁리해야 한다’며 관계국의 실효성있는 대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성명은 또 9·19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해 ‘정당성 없는’ 대북 금융제재를 철회할 것을 주장했다.

미국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한 것은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유통과 불법금융거래에 따른 ‘법적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는 자국의 금융질서와 국제 기축통화 보호를 위한 조치다.

이태식 주미대사도 “슈퍼노트를 직접 봤고, 미국이 제시하는 북한 위폐 제조의 증거와 과거 사례 등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다.

북한이 위폐를 제조해왔고 지금도 유통시키고 있더는 사실은 국내 언론의 현지취재를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북-중 접경지역에 가서 조금만 취재 노력을 들이면 북한 관리들이 위폐를 유통하고 있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도 기자들이 북한당국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옮기고 있는 것 자체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동안 ‘김일성-김정일 추종주의자’들은 북한이 핵 개발 혐의를 부인한 90년대 말까지도 핵무기 개발 의혹을 미국의 모략이라고 주장해왔다.

고농축우라늄 방식의 핵개발을 추궁 당한 2002년 10월 이후부터는 ‘체제보장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핵 개발을 추진한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자 이들은 ‘대북적대정책이 핵 개발의 원인’이라며 ‘先체제보장론’을 주장했다. 이제 와서는 북한 핵은 자위용이라고 주장한다. 대포동 미사일을 북한당국의 주장처럼 ‘인공위성’이라고 말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김정일 정권의 논리와 성명에 참여한 기자들의 논리가 달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미국 책임론’을 내세워 대책 없는 유화정책을 주문하는 것이 지금의 한반도 위기를 풀 수 있는 해법인지 성명에 참가한 기자들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이 되면 북한체제와 주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핵을 포기하지 않고 한반도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김정일 정권을 온갖 궤변으로 변호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성명은 유엔안보리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북한 미사일 발사 대응의 적절성과 미국의 북한 위조달러 문제 제기의 ‘형평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시각과 동떨어진 우물안 개구리의 논리로 북한의 군사적 도발과 범죄행위를 옹호하는 것이 형평에 맞는 것인지, 성명에 참가한 단체들은 먼저 자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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