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뺨치는 자전거 도둑

▲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평양 시민

어느 인터넷 포탈사이트에서 ‘북한에서는 자전거 면허증이 필요하다?’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에는 자전거를 타는 데도 면허증이 필요하나?’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실은 면허증이 아니라 등록증이 있어야 한다.

“여자들은 자전거 타지 마라”

택시나 시내버스가 거의 없는 북한에서는 자전거가 서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나 마찬가지다. ‘어느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소득 수준을 드러낸다. 요새 북한에서 ‘부자(富者)’라고 하면, 스타일로는 김정일식 점퍼를 입고, 일본제 중고자전거를 타고, 저녁에 시장을 돌며 5,000원 이상의 돈을 쓰는 사람을 꼽는다. 이 정도면 ‘중상류층’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는 자전거에 얽힌 일화가 많다. 1996년경 평양시에서 ‘여자들은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적이 있었다. 이유인즉, 북한은 전통적으로 여자들이 바지를 입고 다니면 곱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어느 날 김정일이 치마를 입은 채 자전거를 탄 여성을 보고 “보기가 흉하다. 여자들은 자전거를 못 타게 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들이 바지를 입을 수 있도록 할 것이지, 하여간 이런 지시가 내려온 후 교통보안원(안전원, 남한의 ‘경찰관’에 해당)들은 여자들이 자전거 타는 것만 보면 가차없이 몰수해 버렸다.

비싼 자전거를 뺏긴 경우 뇌물을 들고 호안과(교통과)에 찾아가면 겨우 돌려 받을 수 있었는데, 뇌물이 자전거 가격의 절반을 넘기도 했다. 낡은 자전거라면 아예 찾아가는 것을 단념했다.

자전거 한 대는 노동자 10년치 월급

자전거는 보안서(안전부, 남한의 ‘경찰서’에 해당)에 등록하고 번호판을 받아야 탈수 있다. 사적 소유제도가 없는 북한에서 자전거는 유일하게 사적인 재산으로 ‘등록하는’ 물건이다.

그런데 가격이 꽤나 비싸다. 1995년경 북한 일반 노동자들의 월급이 100원 가량이었는데, 그때 ‘제비’라는 상표의 국산 자전거가 3,000~5,000원이었다. 국산자전거 중에 품질이 좋은 ‘갈매기’는 10,000원 가량 했다. 갈매기는 함경북도 청진에 있는 정치범수용소에서 만들어낸다.

농촌과 지방에 사는 주민들은 보따리 장사를 많이 하기 때문에 적재량이 큰 국산과 중국산 자전거를 선호하는 반면, 도시 사람들은 소규모의 깔끔한 장사를 많이 하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고 깔끔한 일제(日製) 자전거를 선호한다.

일제 중고 자전거 가격은 성능에 따라 다른데, 일단 자전거 체인을 덮는 커버가 있으면 가격이 높다. 일반 노동자들의 월급이 2,500원 정도하던 2003년에 체인커버가 달린 자전거는 50,000원 이상, 체인커버가 없는 것은 30,000원 정도였다.

또 자전거에 라이트(전등)가 많으면 가격이 높다. 라이트 한 개짜리는 30,000~50,000원, 쌍(雙)라이트는 100,000원까지 했다.

▲ 바구니에 아이를 실어도 괜찮다.

요새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자전거 가격이 폭등해 일제 자전거 한 대에 200,000~300,000원에 거래된다.

이처럼 자전거는 10년 이상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살 수 있는 ‘귀한 물건’이다. 그래서 자전거 도둑이 많아 ‘자전거 등록제’라는 것이 생겨난 것이다. 등록제를 하는 데도 ‘자고 일어나면 없어지는’ 식으로 자전거 도둑이 극성을 부리니, 밤에 잘 때 아예 자전거를 방안에 들여놓고 자는 사람도 있다.

또 전문적으로 자전거를 도둑질 해 부자가 된 사람도 있다. 한탕만 성공해도 목돈을 벌 수 있으니 이런 사람들은 지역에서 ‘돈 잘 버는 사람’으로 조용히 소문이 나 있다. 영악하게도 절대로 자기 지방에서 도둑질을 하지 않고 다른 지방에 한달 쯤 살면서 ‘한탕’해 귀향(歸鄕)한다. 자기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니 주민들이 신고하지도 않고, 돈이 많으니 평소에 보안원들에게 바친 것도 많아 ‘심증(心證)’은 있어도 잡아가지 않는다.

800원으로 30,000원짜리 자전거를 사는 사기꾼

1990년대 중반 평안북도 정주에 살던 장씨 성을 가진 남자는 자전거만 전문적으로 ‘해치우는’ 유능한 사기꾼이었다. 장씨의 사기 수법은 귀신도 울고 갈 정도였다. 여러 가지 수법이 있지만 하나만 소개해보자.

먼저 장씨는 일반종이를 지폐와 똑 같은 크기로 여러 장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100원짜리 지폐가 최고액권이던 시절, 10,000원 정도로 보이는 두께의 ‘종이다발’을 만든다. 여기에 앞 뒤로 진짜 100원짜리를 몇 장 덧붙이고는 포장 해 ‘돈다발’로 둔갑시킨다. 100원짜리 3~5장으로 10,000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다발을 3~5개 만들어 속이 들여다보이는 가방이나 투명한 비밀봉투 같은 것에 넣어 가지고 자전거 시장에 나간다.

시장에 갈 때는 예쁜 아가씨를 꽁무니에 달고 나가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가씨에게 선물이나 식사대접을 시키고 ‘나는 ○○외화벌이 기관의 사장이다’는 식으로 환심을 산 뒤, 데리고 다니다가 저녁쯤에 갑자기 선심 쓰듯 “자전거나 한대 사줄까?”하고 시장으로 유인한다.

남한으로 말하면 처음 만난 남자가 “스포츠카 한 대 사줄까”하는 식인데 어떤 아가씨가 마다하겠는가.

장씨는 값이 꽤 나가는 일제 자전거를 골라가지고 “여보, 이거 어때?”라고 아가씨에게 묻는다. ‘여보’라는 표현에 아가씨는 당황하지만 ‘이 남자가 나에게 벌써 그만큼 마음이 있는가’하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지면서 수줍게 웃기만 한다. 그러면 자전거 주인은 둘 사이를 부부로 착각하고 열심히 설명을 한다.

장씨는 “이 자전거를 사려고 하는데, 한번 타봐야 되지 않겠는가?”하면서 돈다발이 든 가방을 아가씨에게 안겨주고 자전거 주인과 함께 있도록 한다.

돈도 있겠다, 아내도 같이 있으니, 자전거 주인은 마음을 놓고 “타보라”고 승인한다. 자전거 시장마당은 꽤 넓은데, 사람도 적지 않다. 장씨는 자전거를 타고 시장을 한 두 바퀴 돌다가 갑자기 사람들 사이로 잠적해 쏜살같이 도망친다.

장씨가 한동안 돌아오지 않자 자전거 주인은 그제서야 ‘아내’의 가방을 빼앗아 돈다발을 헤쳐본다. 그 안에는 겨우 800원 가량밖에 없다. 800원에 30,000원짜리 자전거를 판 것이다. 자전거 주인은 “당장 자전거를 가져오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을러대지만, 억울한 것은 ‘아내’가 됐던 아가씨도 마찬가지다.

자전거를 훔친 장씨는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자전거행군’을 해서 다른 지방으로 이동, 다시 팔아 버린다. 물론 자기도 그런 방식으로 당할 리는 없다.

있으나 마나 한 등록증 제도

이런 형태의 도둑과 사기꾼을 통제하기 위해 북한에서는 자전거 등록제를 실시하고 있다. 보안원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주민들에게 임의로 등록증과 번호판 제시를 요구한다. 남한에서 운전면허증을 보듯이 말이다.

그런데 설사 등록증이 있다 해도 북한에서는 전산시스템이 되어있지 않다 보니 정말 본인 것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냥 자전거 주인의 거동이나 말씨를 보고 당당하면 도둑이 아니고, 우물쭈물하면 도둑으로 몬다.

자전거 등록증은 주민들의 ‘재산보유현황’을 밝히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기도 하다. 북한은 국가에서 배급한 것 외에는 모두 불로소득(不勞所得)으로 여겨 재산의 출처를 밝힌다. 보안서와 인민반에서는 ‘누구네 집에 TV 한대를 샀다’는 말이 들리면 금방 그 집으로 달려가 그런 돈은 어디서 났는지부터 따진다.

만약 출처가 불분명하면 감시를 붙이고 나중에는 법 기관에서 압수한다. 자전거를 등록할 때도 가격은 얼마며 누구한테서 샀는가를 일일이 등록해야 한다.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나라는 서로 잡아먹기를 잘하니 요렇게 못산다”고 개탄한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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