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통합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군사분야 통합은 비교적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동서독 간에 군사적 적대감이 거의 없었고 동독 군 간부들의 구체제 수호 의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군사통합은 동독의 군사조직을 통일독일이 인수, 개편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서독 무기체제에 적합하지 않은 동독군의 무기는 대부분 폐기되었다.

군사통합이 동독 군부의 반발 없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동독시절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이 미약했던 데다, 통일독일이 동독 군인연금 제도를 인수하여 동독군 출신자들이 연금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군사통합 과정

군사통합 작업은 통일직전부터 시작되었다. 서독정부는 1990년 8월 17일 군인과 민간인 20명으로 구성된 연방 국방부 “통합 대비단”을 동독 국방부 내에 설치했다. 동독은 9월 24일 바르샤바조약기구(WTO)에서 탈퇴했으며, 에펠만 동독 국방장관은 모든 동독 장군과 제독들에게 10월 2일자로 전역명령을 내렸다. 또 10월 3일 0시를 기해 국방장관 일일명령으로 103,000여 명의 동독군의 근무해제를 명령했다. 5만 명의 장기복무 군인 가운데 대령 1명, 중령 수명을 제외한 모든 고급장교들이 전역한 반면, 그 이하급 직업군인 10,800명은 연방군에 편입되었다.

동독지역의 군사조직 재편

통일과 더불어 동독으로부터 1,500여 개의 단위부대와 9만 명의 군인 및 장비를 인수한 서독 연방군은 국방부 직할기관으로 “동부사령부”를 설치했다. “동부사령부”는 9개월 동안 동독군 재편작업을 완료한 후 1991년 6월 30일 해체되었다. 장기복무 군인과 직업군인 50,000명은 3단계에 걸쳐 인수여부를 결정했다. 먼저 과거 계급대로 연방군 임시계급을 부여하고 1990년 10월 2일 현재 동독 인민군 봉급규정에 따라 봉급을 지급했다. 이때 전역을 원할 경우 전역을 허용했다. 2단계로 2년 시한부 근무희망자를 심사하여 18,000명을 연방군에 배속시켰는데 국가보안부(Stasi) 등 정보업무 종사자와 정치장교 출신들은 전원 임용에서 배제했다. 3단계로는 이들의 근무실적을 평가하여 최종적으로 10,800명을 직업군인으로 임명했다. 이들 시한부 근무자들은 군사통합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독지역 군부대의 운영을 위해 통일초기에는 2,000명의 서독군인들을 동독으로 파견하여 연대장 급은 모두 서독출신으로 보직했으며, 대대장이나 중대장 급은 동독출신과 서독출신이 반반씩 차지했다. 동독군의 전차 2,337대, 장갑차 5,980대, 대포 2,245문, 항공기와 헬리콥터 479대, 군함 71척, 차량 10만대, 개인화기 120만 정, 탄약 30만 톤을 인수하여 일부 장비와 탄약 10%정도만 활용하고 대부분은 1993년까지 폐기하거나 매각했다.

순조로운 군사통합의 배경

군사통합 과정에서 군부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①통일이 동독주민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통해 평화적으로 이루어져 법률적, 도덕적으로 정당성을 갖추고 있었고, ②동독군의 운용은 소련주둔군이 주도하는 구도여서 동독군으로서는 소련과 서독 간의 합의사항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③동독 고급장교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통일독일에서 군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④통일독일 정부가 퇴역군인들의 사회적응 교육과 취업알선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고, ⑤동독장교들에게 전역식을 갖도록 해 주는 등 명예로운 은퇴 기회를 마련함으로써 반감이나 저항감이 싹트지 않도록 배려했고, ⑥전역 후 연금혜택으로 비교적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동독 민주정부에서 국방장관이 된 라이너 에펠만이 첫 지휘관 회의에서 ①군 간부들을 인간답게 대접할 것이고, ②옷을 벗더라도 취업알선에 최대한 노력할 것이며, ③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통일독일군에 통합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동독 군인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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