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1년 북한이 가입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6조 1항은 ‘사람은 누구나 생명을 누릴 권리를 가지며, 이 권리는 법률에 의해 보호 받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한 마디에 공개처형이 결정되는 초법적인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본보는 앞서 22일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당국이 지난달 초 평양시 모란봉구역에 위치한 4·25 문화회관 회의실에서 ‘현주성’이라는 이름의 인민무력성 후방국 검열국장을 공개심판한 뒤, 평양시 순안구역에 위치한 강건군관학교 사격장에서 공개처형을 집행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국제협약에 가입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북한 내부에서는 국제협약에 명시된 주민들의 생명 보호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처형은 김 위원장의 말 한마디에 단행된 것으로 북한 형법과 형사소송법에 명시된 절차가 완전히 무시됐다. 해당 군관은 김 위원장으로부터 사형 집행 비준이 내려진 뒤 공개심판 절차를 밟았는데, 이는 명백한 북한 형사소송법 위반이다.
북한 형사소송법 418조는 판결과 판정의 집행 시기에 대해 ‘판결, 판정은 확정된 다음에 집행한다. 사형은 해당 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집행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재판 이후 형이 확정돼야만 비로소 사형을 집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국이 이러한 법적 절차를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북한 주민들은 변호인으로부터 변호 받을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해당 군관은 자신의 범죄 사실에 대해 제대로 소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유영태 북한학자는 ‘공화국 형사재판에서 노는 변호인 활동의 본질’(정치법률연구, 2006년 1호)라는 제하의 논문에서 “(북한에서) 변호인의 활동은 단순히 피소자의 의사에 따라 피소자의 권리와 리익(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기된 모든 사건이 국가의 의사인 법에 기초하여 당 정책과 법의 요구에 맞게 처리되도록 재판소의 활동을 도와주는 것이다”라고 저술했다.
북한에서 변호사는 피소자의 범죄사실을 국가나 노동당의 정책에 맞춰 입증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사실상 검사와 다름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에서는 개인이 직접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으며, 예심원이나 판사가 변호사를 선정한다. 선임된 변호사들도 재판과정에 피소자를 위해 실질적인 변호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북한에서 재판을 경험한 한 탈북자는 28일 데일리NK에 “북한의 변호사는 재판 3일 전에 나타나 재판일정과 과정을 설명만했다”며 “변호사가 재판장이 ‘죄를 인정하느냐’고 물으면 인정한다고 대답하라고 말해 황당했다”고 소회했다.
현재 일각에서는 당국이 ‘핵 무력성과 오도’와 ‘자의로 배급 결정’을 이유로 군관을 처형한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질적으로는 김 위원장이 아닌 개인의 우상화, 최고지도자의 권위 침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편, 북한 형법은 ‘국가 전복음모죄’, ‘조국 반역죄’ 등 8개의 죄목을 사형대상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이밖에 ‘극히 무거운 형태의 국가재산 약취죄’와 ‘극히 무거운 형태의 국가재산 강도죄’ 등 11개 항목은 형법의 부칙상 사형 부과 대상 범죄로 분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