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관 굶는다고 김정일이 충격받아 쓰러질 사람인가?

“김정일 위원장은 ‘병사를 거느리는 군관들이 식사를 하지 못할 정도이면 이건 완전히 심각한 형편이다. 모두 밥통들밖에 없다’며 크게 화를 냈으며, 일시 충격을 받아 쓰러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 등의 북한 매체에 실린 글이 아니라, 대북지원단체인 ‘좋은벗들’이 매주 발행하는 ‘오늘의 북한소식(211호)’에 실린 내용이다.

이 소식지는 “지난 9월 2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최근 식량난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며 “이날 각 지역의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운 지경이라는 보고와 함께 특히 군부에서 식량이 거의 떨어져 비상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제기되면서 (김정일이)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어 “황해남북도와 평안남북도 지역의 시.군 양정부에서는 예비식량이 거의 없으며, 군량미도 태부족이라고 보고했다. 보고를 들은 김정일이 ‘상황이 이토록 나빠지도록 다들 뭘 했는가? 양정부는 대체 뭘 하고 있는가?’라며 매우 격노했다”는 게 소식지의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은 지난 10일 국회 정보위에서 김성호 국가정보원장이 김정일이 8월 14일 이후 쓰러져 수술을 받고 회복중이라고 보고한 것과 차이가 있다. 물론 김정일이 쓰러진 시점을 정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8월 중순께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어서 ‘김정일이 9월 2일 식량난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는 ‘좋은벗들’ 주장과는 차이가 크다.

뿐만 아니라 식량부족 사정을 김정일이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다가 2일에야 보고를 받았다는 것은 김정일 체제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라면 어리둥절해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모든 보고 라인을 김정일 1인에 맞추고 있는 북한 사회 특성상 9월 들어 보고를 받고 쓰러졌다는 것은 ‘난센스’라는 것이다.

지난 5, 6월 미국의 대북식량 50만톤 지원설이 언론에 등장할 무렵 동아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들은 “현 시기 우리가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는 식량”이라는 김정일의 발언을 인용 보도한 적도 있다. 또 한국 등 국제사회가 지원하는 식량은 남포항에 도착하기 전에 김정일이 직접 수표(결재)하여 최우선 순위로 군에 분배되고 있다.

또 중앙당 조직지도부에는 화재, 폭발사고 등 북한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를 5W1H(6하 원칙)에 따라 있는 그대로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는 부서가 있다. 여기에는 아사 사건도 당연히 포함된다. 황장엽 노동당 국제비서가 한국 망명후 “95년에 50만명, 96년에 100만 명이 굶어죽었다”는 자료가 바로 이 자료로 알려져 있다.

특히 군 내부 사정과 관련한 보고는 군 내 ‘통보과’가 보고계통을 거쳐 김정일에게 직보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김정일이 군대 내부의 사정에 어둡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김정일이 아주 세세한 사정까지는 모를 수 있겠지만, ‘군관들이 식사를 하지 못한다는 보고에 충격을 받아 쓰러졌다’는 것은 의혹이 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만약 군관이 식사를 못하고 있다는 보고에 쓰러질 김정일이라면 군인들의 민간인 대상 식량 습격사건이 비일비재했던 90년대에 김정일은 아마도 수십번 쓰러졌을 것이다.

김정일이 어떤 사람인가? 그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시기 300만 명의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김일성의 시신을 영구 보존하는 데에만 8억 9천만 달러를 쏟아 부은 사람이다. 이 돈이면 강냉이 600만t을 살 수 있는 액수로 당시 굶어 죽었던 1백만 명을 살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김정일은 인민들을 사지로 내몰면서 김일성 우상화에만 전념했던 비인간적인 독재자다.

이뿐인가? 미식가로 알려진 김정일은 지난 10년간 인민들이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도 신선한 바닷가재와 캐비어(철갑상어 알), 상어지느러미 요리, 프랑스산 와인으로 식탁을 가득 채웠던 인물이다.

2001년 7월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 당시 수행한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러시아 극동지구 대통령 전권대표는 자신의 저서 ‘동방 특급열차(The Orient Express)’에서 김정일의 전용 열차에 프랑스산 와인이 가득 차 있었으며, 열차가 시베리아 도시 옴스크에 도착했을 때에는 피클이 불가리아산 오이로 조잡하게 만들어졌다며 돌려보내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한 김정일의 요리사로 일했던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일의 와인저장고에는 포도주가 1만병이나 비축돼 있고 김정일이 매주 상어 지느러미 수프를 먹었다”고 했고, “김정일의 연회는 종종 한밤중에 시작해 아침까지 계속됐으며 연회가 4일간 계속되기도 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런 김정일이 군관들이 굶는다는 보고에 충격을 받아 쓰러졌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작문(作文)성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김정일의 행적이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너무나도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좋은벗들’이 이 시점에서 소식지에 왜 이런 내용을 담았는지 궁금하다. 민간 대북지원 단체의 특성상 대북 정보를 습득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작업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북한 관련 단체 및 연구자, 언론인들이 이 단체의 소식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더 큰 문제는 제대로 여과되지 않은 ‘소식’이 언론에도 게재되고 있기 때문에 소식지 발행에 좀더 신중을 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이 소식지를 받아 보는 전문가 및 언론인들이 출처가 불명확한 정보에 대한 가치나 팩트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소식지를 받아보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평범한 시민이라면 소식지를 제작 전달하는 ‘좋은벗들’도 좀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북정보 수집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90년대 보다는 나은 환경이기 때문에, 좀더 사실관계에 근접한 소식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좋은 벗들’은 이미 국내외에서 대북지원단체로서 좋은 명성을 얻고 있으며, 노하우가 축적된 이러한 대북지원단체는 남북관계, 국제관계에 여러모로 역할이 있다.

그러나 대북지원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위해 소식지의 사실관계마저 의심을 받게 된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에 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명성을 쌓아올리기는 어려워도 한번 무너지면 빠르게 무너지는 특성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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