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평화’ 파는 ‘정권 장사’ 절대 안속는다

지난해 11월 9일, 인터넷 매체 오마이 뉴스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노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뢰를 받는 핵심 인사인 A씨와 B씨는 북한 핵실험 이후인 10월 중 하순 베이징과 ‘제3의 장소’에서 연쇄 접촉을 갖고 6자회담 복귀 일정 및 정상회담 추진 등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오마이 뉴스는 그로부터 4개월 후인 지난 3월 6일, 비밀 접촉 당사자들의 실명도 밝혔다. 남측 인사는 노 대통령의 ‘동업자’로 통하는 안희정씨이며, 북측 인사는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제1부부장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접촉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사자인 안 씨도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비밀 접촉 사실을 부인했다. 그렇게 정치적 파장을 피해가는 듯했다. 그러나 28일, 이호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안희정씨가 지난해 10월 20일 베이징에서 북측과 접촉했다고 밝히면서 정치적 파장이 증폭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는 공식 통로가 가장 정확하다. 비공식적 통로도 시도해 봤지만 성과가 없었다”며 투명하고 공개적인 대북정책 원칙을 거듭 강조해 왔다. 투명한 대북정책은 대북정책의 원칙이자 국민과의 약속이었다. 노 대통령이 스스로 원칙과 약속을 깼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그러나 논란의 핵심은 ‘정상회담 추진 문제’다.

현재까지 드러난 경위와 정황을 볼 때, 비밀 접촉의 목적은 남북정상회담 추진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안 씨의 주장대로 당시의 비밀접촉이 북한의 핵실험 의중을 떠보려는 목적이었다면, 공식 대북 업무 담당자가 아닌 안 씨가 접촉에 나선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만약, 비밀접촉이 남북 정상회담 추진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그냥 덮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우선 지금은 정상회담을 추진할 때가 아니다.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마련돼야 한다.

첫째는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과 핵무기의 완전한 폐기다. 둘째는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또렷한 로드맵 수립이다. 두 가지 모두 남북한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과의 논의와 협력이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 만큼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은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에 몇 년이 걸릴지 예측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로드맵은 사실상 백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지시로 안 씨가 북한측과 비밀리에 접촉했다. 이는 꺼져가고 있는 정권연장 가능성을 되살리기 위한 ‘대선용 이벤트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왜, 음모적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하는가? 왜, 꼭 대선 이전에 정상회담을 해야 하는가?

2005년 정동영 장관이 김 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와 “김 위원장은 북한이 핵을 가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다 내놓겠다고 했다. IAEA의 사찰도 다 받겠다고 했다”며 흥분과 감격에 겨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었다. 그 뒤에 북한이 무엇을 했는가?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하지 않았는가? 벌써 잊었는가?

남북정상회담은 남북한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한 중장기적 이정표가 돼야 한다. 우선 인내심을 갖고 북핵 문제를 해결한 후, 그 때 만나도 늦지 않다. 국민은 더 이상 ‘평화’를 팔아 눈앞의 당리(黨利)를 사려는 ‘대선 이벤트용 졸속 정상회담’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