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방송은 14일 김정일이 함경북도 길주농장을 현지지도 하면서 “현 시기 인민들의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절박하고 중요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정일이 했다는 이 말은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 경제강국 건설을 강조하며 “현 시기 인민들의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절박하고 중요한 과업은 없다”라고 밝힌 것과 ‘과업’이라는 표현이 ‘일’로 바뀌었을 뿐 나머지는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같아 실제 김정일이 한 말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 선전매체 기자출신의 탈북자 김성길(가명) 씨는 “북한의 모든 선전매체들이 당국의 통제와 지시를 받는다”며 “김정일이 말을 하지 않았어도 중앙당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지시 내용에 따라 그대로 보도가 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김정일의 명의로 보도가 됐다면 직접 말을 내뱉은 게 아니더라도 북한 사회의 특성상 김정일이 한 것과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매체가 이례적으로 김정일이 인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도한 것은, 이 같은 선전을 통해 갈수록 가중되고 있는 식량난으로 혹시 모를 인민들의 동요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1990년대 중반 200~300만 명의 대량 아사자가 발생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경험했던 김정일로서는 또 다시 이 같은 대량 아사가 발생할 경우 주민들의 동요와 사회 불안이 가중돼 북한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인민들의 먹는 문제 해결’을 언급하면서도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 방식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
김정일은 이날 현지지도를 하면서 인민들의 먹는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우월성이 확증(?)된 ‘주체농법’의 요구대로 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지으며 적지적작(適地適作), 적기적작(適期適作)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며 ‘주체농법’을 해결 방안으로 제시했다.
주체농법은 김일성이 북한의 실정에 맞게 독창적으로 창시하였다고 주장하는 북한의 농사법이다. 적기적작, 적지적작 등의 용어가 있긴 하지만 뚜렷한 과학적 개념은 없다. 따라서 인민들은 ‘당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주체농법’이라고 여기고 있다.
북한 ‘조선말 대사전’에서는 ‘주체농법은 우리나라(북한)의 기후풍토와 농작물의 생물학적 특성에 맞게 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짓는 과학농법이며, 현대과학기술에 기초하여 농업생산을 고도로 집약화하는 집약농법이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우월성이 확증됐다는 ‘주체농법’”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북한의 식량난은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 이는 곧 ‘주체농법’의 실패를 반증하는 것과 같다. 사실 오래전부터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주체농법’은 실패했고 오히려 농지와 자연환경의 파괴를 야기해 식량난을 가중시켰다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주체농법’은 과거 일시적인 생산량 증산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농지의 사막화’와 ‘민둥산’의 결과만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권태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체농법 등 인위적인 요인도 농업기반을 약화시키는데 한 몫을 했다”고 말했다.
정광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데일리엔케이’와의 통화에서 “주체농법은 사실상 식량난 해결과 관계가 없는 것”이라며 “식량 문제가 심각하다는 국내외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주체농법’이라는 허상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북한은 현 집단농장체제로 확보할 수 있는 식량의 최대치를 약 450만t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해마다 부족해 식량난을 겪었다”면서 “집단농장체제로는 식량 부족분을 채울 수 없다는 점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은 정권이 불성실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집단농장체제를 개인농체제로 전환해 소유권은 부여하지 않더라도 일정부분은 주민이 자유롭게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도록 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베트남, 중국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미 시도한 너무나 상식적인 개혁 조치”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개인농체제로 전환한다고 해서 단기적으로 식량난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단기적으로는 북한이 수출산업을 키워 무역을 확대해 식량을 확보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개혁∙개방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