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문가 “北 개혁개방 의지가 관건”

미국이 11일 자정을 기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지 20년만에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지움으로써 북한은 테러지원국 지정에 따른 미국의 제재조치의 철회는 물론 다른 나라로의 파급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올해 정권 수립 60돌을 맞아 “조국 청사에 아로새겨질 역사적 전환의 해”로 만들겠다고 공언해 온 북한 당국은 또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를 “미국과의 투쟁에서 승리한” 또 하나의 “전리품” 등으로 선전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 영도”를 선전하고 체제 결속에도 적극 활용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12일 “미국이 테러지원국 지정을 통해 북한에 대해 다양한 제재를 해왔으나 이번 해제 조치로 북한이 주장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이 완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일본 등 다른 나라들도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대북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내부적으로는 김정일 위원장의 선군정치를 바탕으로 한 강한 군사력으로 미국을 굴복시켰다며 그의 ‘강한 리더십’을 선전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지도력을 강화하는 호재로 활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가 북한의 당면한 경제난 해결에 당장은 별 효과가 없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의 대외 경제환경 개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로 북한은 미국의 수출관리법과 수출관리규정, 무기수출통제법, 국제금융기관법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테러관련 이중용도 품목의 수출 제한, 군수품 수출 및 재수출 금지, 국제금융기관에 의한 지원 제한 등의 제재 굴레에서 어느 정도 풀려날 수 있다.

현재 미국은 수출관리법 및 수출관리규정에 따라 군수물자 외에도 군사적 용도로 전용될 수 있는 민수용 품목(상품, 기술, 소프트웨어 포함)의 대북 수출에 대해서도 미국산 요소가 최종 가격에 10% 이상 포함된 경우 재수출로 간주, 자국기업은 물론 외국기업에 대해서까지 미 상무부 승인을 받도록 통제하고 있다.

미국의 다른 대북 제재들이 남아 있고 북한 경제가 파탄난 상황에서 테러지원국 해제만으로 단기에 경제 회생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북한의 대외 경제활동 여건 개선에 주춧돌이 될 것이라는 데는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특히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로 그동안 `재수출’ 간주 기준인 미국산 요소의 비율이 25%로 상향 조정됨으로써, 미국을 비롯한 해외 기업의 대북 수출과 투자 제한이 상당히 풀리고, 남북 경협의 걸림돌로 작용해온 컴퓨터 등 전략물자 북송 문제도 완화돼 개성공단 등으로 설비 반출이 더 쉬워진다.

북한 김일성대 교수를 지낸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통일국제협력팀장은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효과가 크지는 않겠지만, 당장 북한이 겪는 경제난에 숨통을 터주는 계기는 될 것”이라며 “외국의 대북 식량, 의료 등의 지원이 늘 수 있고 북한과 거래하는 주요 국가와의 거래 품목에 대한 제한도 없어져 교역량도 다소 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팀장은 그러나 “북한이 본격적인 경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핵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외국 자본의 투자환경 개선 노력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면서 “이런 노력들이 전제돼야 해외 자본이 들어가고 교역도 급격히 늘 수 있다”고 지적했다.

테러지원국 해제로 북한이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려 할 때 핵심 회원국인 미국의 반대라는 장애물도 크게 낮춰지겠지만, 북한이 과연 이들 국제금융기구의 의무사항을 이행할 의사가 있느냐가 문제다.

북한이 긴급 수혈성 자금이 아니라 일정 규모를 넘어서는 본격적인 개발자금을 이들 기구로부터 지원받는 것은 북한의 개혁.개방이 전제되지 않는 한 불가능해 북한의 의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려면 정책협의, 경제통계 제출 등 다양한 의무사항을 이행하고 개혁.개방 확대 요구를 감수해야 한다”면서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실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 교수는 “북한에 대해서는 아직도 종교탄압, 대량살상 무기, 인권 등과 관련된 다양한 제재가 남아 있다”면서 “무엇보다 북한의 향후 개혁.개방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