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자활터전’ 시급

탈북자들이 원활한 새 출발을 위해서는 국내외에 자활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서는 하나원 같은 지원시설이 확충돼야 함은 물론 해외에서 떠돌며 최종 정착지를 찾을 때까지 자활을 준비하며 머물 수 있는 임시거처와 인권보호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탈북자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한국행이나 미국행 등 다른 정착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관련제도의 정비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제3국 ‘자활 발판’ 마련 시급 = 지금도 최종 정착지를 찾지 못하고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의 주변에는 놀랄 만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중국과 북한 국경에서의 강도 높은 감시와 단속이 ‘강제 북송’ 악몽을 떨치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여성들은 중국 내지나 다른 나라로 떠도는 과정에서 성폭행이나 감금 등 각종 인권 유린에 노출돼 있다.

탈북자들은 ‘배고픈 인민’의 권리를 던져버리고 난민 행세를 하고 있지만 국제법적으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난민 지위마저도 얻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태국에서 적발된 175명의 탈북자들 가운데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서 ‘여행 보호요청서’를 발급받아 사실상 난민 대접을 받고 불법체류자 수용을 피한 경우는 10여명에 불과했다.

이들이 난민 지위를 받기 어려운 것은 첫 경유지인 중국이 북한과의 국경지역에서 UNHCR의 활동을 제한하고 있어 UNHCR지부가 있는 베이징(北京)이나 태국 등으로 가서 면담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탈북자들을 돕는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재중(中) 탈북자들이 국제법상 난민의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과 일정 지역에 임시 난민촌과 같은 자활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북 인권단체인 두리하나 김윤태 이사(백석대 교수)는 “탈북자들이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채 불법체류자 신분으로는 아무런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면서 “불법체류자로 있는 한 신고 위협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인권 유린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를 낳을 경우 아무런 국적도 없이 숨겨서 길러야 하고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할 길이 없는 실정”이라며 “이들이 정착지로 옮길 동안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난민촌을 동남아나 유럽 등 가능한 곳에 건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천종 미주반석장로교회 담임목사도 “탈북 난민들을 강제 북송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정부가 간접적인 방법을 쓰거나 민간단체가 나서 중국 이외의 제3국에 임시 안전거처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UNHCR로부터 신속하게 난민 인정을 받아 자신의 정착지를 찾아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행 등 ‘선택권’도 확대될 듯 = 탈북자들은 북한땅을 벗어나 중국을 비롯한 각국을 전전하다 정착지를 선택하는데 있어 자유로운 선택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탈북자들의 대부분은 동포애를 바탕으로 정착지원금 등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는데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는 한국행을 목표로 삼고 있다.

정부가 탈북자 전용 수용시설을 운영하고 있고 시설에서 나온 뒤에도 원만한 정착을 돕기 위해 기초생활 보장은 물론 주거지 제공, 직업훈련, 취업알선 등 다양하게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북지원시설 운영에 한계점이 노출되고 탈북자들의 남한 사회 부적응 사례들이 증가하자 국내 입국을 앞둔 탈북자들의 발길도 주춤하고 있다.

최근 태국에서 수개월 동안 머물다 불법체류자로 적발돼 대량 검거된 탈북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미국행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탈북자 신병인도에도 새로운 고려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04년 제정된 미국의 북한인권법이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다가 지난 5월 탈북자 6명이 처음으로 미국 망명에 성공한 데 이어 지난 7월에는 중국 선양(瀋陽)의 미국총영사관에 체류하던 탈북자 4명 가운데 3명의 미국행도 성사됐다.

미국 정부는 평소에도 연간 수만명에 이르는 해외 이민자들은 받아들이고 있는 가운데 일부 탈북자들을 수용하며 ‘인권국가’의 면모를 과시하는 동시에 북한의 열악한 인권문제에 대한 압박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일부 인권단체들은 탈북자 전용 수용시설 건립까지 계획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앞으로 미국행을 선택하는 탈북자들이 증가할 전망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탈북자들의 자유로운 선택 문제’라고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미국행 탈북자가 더욱 늘 경우는 정치적으로 부담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실 반영한 입법 시급 = 북한이탈 주민들에 대한 제도와 정책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지만 최근에는 급변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이탈 주민에게는 ‘국가유공자 및 월남귀순자 특별원호법'(1962∼1977), ‘월남귀순용사특별보상법'(1978∼1992), ‘귀순북한동포보호법'(1993∼1997) 등에 이어 1997년 제정된 ‘북한이탈주민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현행 법률은 제3국에 체류하는 탈북민과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들을 모두 포괄해 지원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중국을 비롯한 제3국 체류 탈북자들은 사실상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은 “제3국 체류 탈북자와 새터민을 분리해서 지원할 필요가 있으며, 새터민 여성과 청소년 등 새터민의 가족 형성을 도와주는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외국에서 체류 탈북자들의 한국 입국과정에서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개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은 “새터민의 이혼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새터민들이 결혼을 통한 새출발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으며 상속이나 자녀문제 등도 유발되고 있다”면서 “새터민의 가족 안정화를 위한 지원에서 이혼문제를 우선 고려해 합법적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