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출신 北3명 南가족 만나…이름 착오 1가족 발길 돌려

추석 계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 2차 행사가 30일 오전 9시 개별상봉을 시작으로 이틀째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전날 단체상봉과 만찬행사를 가진 북측 상봉단 98명과 남측 429명은 이날 다시 재회했다.

이날 이산가족들은 2시간 동안 개별상봉과 공동 중식을 갖고 오후에는 온정각 앞 뜰에서 야외상봉 행사를 갖는다. 사흘째 날인 10월 1일 오전 작별상봉을 끝으로 모든 일정을 마치게 된다.

최초 북측 상봉단 99명과 남측 431명이 만날 예정이었으나 1가족이 동명이인(同名異人) 착오가 발생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 북한에 있는 큰 형 리종성(77) 씨는 남측 동생 이종학(77) 씨와 이종수(74) 씨를 찾았지만, 29일 3시 단체상봉장에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결과 자신이 찾았던 가족이 아님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종수 씨는 “(리종성씨가) 상봉장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데 멀리서 보니까 형님이 아니더라”며 “몇 분간 얘기를 해봐도 우리 형님이 아니기에 적십자 사람들을 불렀다”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의 한 관계자는 “양쪽에서 찾는 이름이 서로 같아 남북 간에 약간 착오가 있는 것 같은데 나중에 자세히 확인을 해봐야겠다”며 당황한 모습이었다.

통일부 관계자는 “과거에도 이런 사례가 드물게 있었다”며 “양측이 준비기간이 짧아 재확인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종학씨는 “12차 상봉 때 형(리종성)이 먼저 우리쪽 가족들을 찾아서 한번 만났었는데 이번에 또 만난다고 해서 안 그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적십자 측은 “같은 사람을 찾는다고 해서 북에서 일단 신청이 들어오면 만나게 해드린다”고 설명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진행을 위해 나온 북측 관계자들은 국회의 정운찬 총리 인준문제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북한 관계자는 남측 기자들에게 “우리가 봐도 대답을 잘 못하더라. 국회통과가 됐느냐”고 물었고, 다른 관계자는 이귀남 법무장관 후보자에 백회영 여성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 “통과가 되는 것이냐”고 궁금증을 나타냈다.

이들은 남측언론이 이산가족 상봉을 어느 정도 비중으로 보도하고 있는지에 대해 묻기도 했다.

한편, 이번 상봉행사에선 ‘국군’ 출신의 북측 상봉단 3명과 남쪽 가족의 만남도 이뤄져 관심을 모았다.

00사단 출신의 석영순(78) 씨는 남측 동생 태순(74), 창순(65) 씨와, 8사단 민간보급대 출신의 박춘식(85) 씨는 남측 의 아들 삼학(67), 이학(64) 씨와 만났다. 아버지를 대신해 국군으로 징집됐던 리윤영(74) 씨는 남측의 동생 찬영(71), 대영(67), 진영(65) 씨와 상봉했다.

이들은 6·25전쟁 기간 국군으로 징집돼 전쟁터로 나갔다가 가족들과 헤어졌다. 그러나 남측에선 모두 전사로 처리된 것으로 알려져 ‘국군포로’로 잡히지 않았다.

석영순(78) 씨는 1950년 8월 동네 청년 10여명과 함께 국군으로 징집돼 OO사단에 배치됐다. 육군본부는 이듬해인 1951년 가족들에게 통지문을 보내 석 씨가 징집 3개월만인 1950년 10월 18일 전사했다고 전했다.

동생 태순 씨는 “OO사단으로부터 6·25 때 팔공산 전투에서 전멸당한듯 했다고 들었다”며 “1997년 육군본부에 위패 신청을 해서 국립묘지에도 봉안됐고 제사도 지냈다”고 말했다. 이날 단체상봉에서 영순 씨는 동생의 이런 얘기를 듣고 “살아 있는 사람을 보고 제사를 지내면 되나”라고 크게 웃었다.

박춘식 씨는 8사단 21연대에서 계급과 군번도 없는 보급대원으로 복무하다가 가족과 이별했다. 박 씨는 남측 아들 삼학 씨에게 북에서 새로 결혼해 낳은 5남매의 사진을 소개했고, 삼학 씨는 “아버지와 연세가 같으신 동네 어른들은 다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가 북쪽에 살아 계시다는 것만으로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울먹였다.

리윤영 씨는 1·4후퇴 때 서울 신당동 집에서 아버지 대신 국군에 징집됐다가 가족과 헤어졌다. 리 씨의 남쪽 동생 찬영 씨는 “동생들이 전부 어려 피난은 가야 하는 상황에서 징집대상이 된 아버지 대신 국군으로 나갔다가 소식이 끊겼다”며 “죽었다고 생각해서 호적 정리도 끝낸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동생 찬영 씨는 이날 “아버지가 살아 생전에 형님이 살아있다는 것을 들어야 했는데, 13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전하자 윤영 씨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윤영 씨는 이날 북한군 훈장 11개를 들고 나와 “북에 정착한 뒤 열심히 일해 국가로부터 인정받았다”고 동생들을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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