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유해 봉환 생중계 마다한 공중파 방송들

6.25 전쟁 당시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우리군 유해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봉환(奉還)됐다. 1950년 12월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 등에서 전사한 국군 유해 12구가 전날 공군 C-130 수송기 편으로 하와이를 출발해 26일 오전 마침내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이날 열린 유해봉환식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관진 국방장관, 김상기 육군참모총장, 제임스 셔먼 한미연합사령관이 참석했다.


전사자 유해 12구 가운데 6.25 당시 미군에 배속돼 카투사로 근무한 고(故) 김용수 일병과 이갑수 일병의 신원만 확인됐다. 미국은 6.25전쟁 당시 미군 최대 피해지로 꼽히는 장진호 전투 지역에서 발굴한 유해들을 하와이 미 합동전쟁포로실종자사령부(JPAC)로 보내 신원확인 작업을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12구가 아시아 인종으로 밝혀지자 우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합동으로 감식을 벌여 국군 유해로 최종 확인한 것이다.


나라를 지키다가 숨진 순국선열들의 유해를 찾아 가족과 후대 앞에 모시는 일은 한 나라의 국격(國格)을 유지하는 첫 번째 과제로 꼽힌다. 선열들에 대한 예우를 다하지 않는다면 후대들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살아가도록 가르칠 근거를 잃게 된다. 이날 귀환한 전사자 유해는 우리군의 힘으로 찾아낸 것이 아니라, 미국이 북한지역에서 자기 군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국방부는 6.25 전쟁 당시 사망한 국군 전사자와 실종자를 13만여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북한지역과 비무장 지대 내 미발굴 유해는 약 3, 4만여 구로 추정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힘으로 북한지역 내 국군 전사자 유해를 찾아온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6.25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관련 “통일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국군 전사자 유해 봉환이 무엇 때문에 ‘통일 이후’라는 먼 미래로 미뤄야 하는지 이해하는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북한의 최대 적성(適性)국가인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과 압박을 병행하며 1990년대 이후 430여구의 미군 전사자 유해를 송환했다. 물론 미군이 남한보다 유해발굴에 덜 부담스러울 가능성도 있지만 지난 10년 좌파정권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각종 합의문, 천문학적 지원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통령 재임 기간 북한 도발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것은 사실이지만 화해 무드가 조성됐다고 해서 유해발굴 노력을 벌였을지는 의문이다.


국군 통수권자의 발상이 이처럼 안일한 탓인지 이날 열린 유해봉환식은 YTN과 일부 종편들을 통해서만 생중계 됐다. 공중파 방송 그 어느 곳도 국군 유해봉환식을 중계하지 않았다. ‘공정방송 사수’를 외치며 파업을 벌이고 있는 MBC에서는 한 여배우의 남자관계를 추적하는 내용이 방영되기도 했다. 심지어 공영방송인 KBS에서는 평소처럼 아침드라마와 토크쇼 프로그램이 편성됐다. 60여년 만에 봉환된 호국영령의 유해는 방송사들의 안일한 인식 때문에 국민들에게 조차 외면 당한 것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어제의 순국열사들이 피로써 쟁취해 물려준 소중한 유산들이다. 자신들이 이사회와 국가를 움직이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역사 앞에 더욱 고개를 숙이고 겸손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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