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 형 감격의 화상상봉

남측 김동진(74)씨는 9일 서울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화상 상봉실에서 국군포로 출신인 형 동수(79)씨와 감격의 상봉을 했다.

남측 가족들에 따르면 형 동수씨는 1950년 10월 국군에 입대한 뒤 한번 집으로 편지를 보내고는 연락이 끊겼다. 가족들은 전사통지서가 집으로 날아오고 국립현충원에 위패까지 봉안된 동수씨를 위해 그간 제사까지 지냈던 것.

동진씨는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형님이 살아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얼마나 놀랐는지 오늘 형님을 상봉하기 전에 부모님 산소를 찾아가 통곡을 했다”고 말했다.

북측의 형 동수씨는 남측 가족들의 모습이 중계되는 화면이 뜰 때부터 시종일관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가족들의 안부를 확인해갔다.

부모님의 기일은 물론이고 여동생 동주(71).정자(65)씨의 혼인과 나이까지 확인을 끝낸 동수씨는 “내가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으면 너희들이 더 반가워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이어 “내가 죽은 줄 알고 너희들은 제사도 지냈을 것”이라며 자신이 북에서 살아왔던 얘기를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풀어 나갔다.

1950년 10월 국군에 입대했던 동수씨는 의용군에 다시 입대했다. 더이상 설명은 없었지만 1951년 1.4 후퇴 무렵에 포로로 잡혀 의용군에 편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수씨는 1952년 군복무 중 ‘화선(火線)’ 입당 형식으로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고 56년까지 인민군에서 복무했다.

56년 7월 군에서 제대한 그는 협동농장에 배치받았다. 동수씨는 “그때는 농촌을 협동화하던 과정으로 제대군인 핵심들이 농촌으로 많이 배치됐다. 어떤 사람들은 탄광으로도 가고 공장으로 갔다”고 회고했다.

농장에서 일한 지 2년쯤 되자 그는 당세포 비서로 농장의 회계 및 출납을 담당하는 부기원으로 발탁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수씨는 군당위원회의 지시로 황해남도 평선군의 봉천협동농장 부기장으로 발령이 나 88년에 은퇴했다. 이 농장은 농장원 가구수가 350호에 달하는 큰 협동농장이었다. 일종의 승진이었던 셈이다.

동수씨는 그곳에서 일하면서 결혼식을 올리고 슬하에 아들 4명과 딸 1명 등 5남매를 낳아 전문학교와 대학까지 보냈다. 그는 “아이들 기르는 맛을 혈육들과 나누지 못하는 게 아쉽기는 했어도 그렇게 잘 지냈다”고 말했다.

남측 동생 동진씨는 형님의 말을 듣고 안심이 됐는지 상봉장에 나온 북녘 조카들을 불러 “형수님께 꼭 ‘고맙다’고 말을 전해주고 훗날 만나면 내가 업어도 주고 선물도 준다고 전해달라”고 신신 당부했다.

북측 조카 재환(45)씨는 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가 선산에 직접 가지 못하시니까 남쪽에 있는 삼촌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도 잘 보살펴주기 바란다”고 부탁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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