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영사관에서 3년 넘게 있던 탈북자 4명이 1일 극비리에 입국했다. 이 중에는 국군포로 고(故) 백종규 하사의 둘째 딸 영옥 씨와 외손자, 외손녀도 포함됐다.
이들의 입국을 누구보다 반기는 이는 언니 영숙(55) 씨다. 그는 동생이 2009년 6월 베이징 한국영사관에 들어갔을 때 3개월이면 입국할 수 있을 것으로 굳게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번번이 입국이 지연돼 결국 3년이 지났다. 5일 여의도에서 그를 만났다.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동안 몇 번이나 입국할거란 얘기를 들었지만 안됐다. 동생이 나오고 안아봐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날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는 듯 했다. 그는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했다. 정부가 가족들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극비리에 입국시킨 것은 선양(審陽) 공관 등에 남아있는 탈북자 7명에 대한 입국에 절차가 진행 중이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는 국군포로 가족 2명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숙 씨는 지난 3년 동안 동생 가족의 입국을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도 내보고, 국방부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였다.
지난해 7월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방중 당시 이례적으로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에게 이들 문제를 언급하며 조기 송환을 요청했다.
김 장관 방중 이후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역시 무산됐고,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1월 후진타오 국가 주석과의 회담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지만, 중국 측의 완강한 태도 때문에 별 다른 진전을 보지 못해 애태웠다고 했다.
3년 동안 좁고 햇볕도 잘 들지 않는 곳에서 생활해 불안에 떨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심장도 약해졌다는 동생 소식에 밤잠을 설친적도 많다고 한다. 그때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동생을 만나면 무엇부터 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동생을 데리고 현충원에 계신 아버님께 가장 먼저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다”며 “아버지 소원대로 둘째 딸을 무사히 데려왔으니 이제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숙 씨는 2002년 탈북한 뒤 2004년 아버지의 유골함을 안고 입국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북한을 의식해 백 씨의 유골함을 안고 입국하는 것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비공개 입국을 요청했다. 하지만 영숙 씨는 그런 정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인천공항 입국장을 통해 당당하게 입국했다. 백 하사는 ‘국군포로 유해송환 1호’로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냐는 질문에는 “정신 차리고 살아야 아들, 딸도 키울 수 있다. 대한민국의 생활이 녹녹치 않으니 열심히 살아야 한다”면서 “아버지의 유언대로 자식 잘 키우면서 정직하고 착하게 살라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영숙 씨는 여전히 절망 속에 살고 있는 북한 내 국군포로 가족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북에 있는 다른 국군포로 가족들도 반드시 아버지의 고향인 대한민국에 올 수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말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보다 고마움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북한에서 국군포로와 자녀들은 ‘적대계층’으로 당국의 감시아래 생활하고 그 흔한 간부도 될 수 없다. 때문에 그런 국군포로 아버지에 원망하며 생활하는 자녀도 있다.
끝으로 그는 “국군포로 유해도 귀환 국군포로와 같은 대우를 해줬으면 좋겠다”면서 “국회에 제출된 개정 법률안이 가족들의 현실에 맞게 수정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국군포로 대우 및 송환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르면 국군포로 자녀들에게만 별도의 지원금을 지원할 뿐 유해는 귀환 국군포로와 같은 대우는 받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