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가 진정 국민세금 아끼는 길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 이하 ‘인권위’)가 빠르면 내달부터 북한 내부의 인권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인권위 관계자는 25일 ‘데일리엔케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주민과 탈북자 인권보호 강화 사업의 일환으로 북한 내부의 인권 전반에 대해 현황 파악을 하겠다”고 말했다.

인권위가 출범 7년만에 처음으로 북한인권 실태조사를 공개 발표하자 탈북자들과 인권NGO들은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섣부른 기대감은 나타내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인권위가 새로운 ‘코드 맞추기’ 차원에서 북한인권 실태조사를 들고 나온 것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국가인권기구가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권력 코드 맞추기’에 충실해왔다는 사실부터가 웃기는 일이었는데, 요즘 잇따르는 인권위의 언급은 노무현 정부 시기의 발언에 비춰보면 한마디로 가관이다.

2006년 12월 안경환 위원장은 “대한민국 정부가 실효적 관할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북한지역에서의 인권침해 행위는 위원회의 조사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며 북한주민들의 인권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권리와 책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선언을 했다. 당시 안위원장의 발언만큼 북한인권 포기를 확실하게 언급한 표현도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지역은 우리 영역이 아니다’는 사실을 대놓고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인권위의 희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국내외 여론이 악화되자 인권위는 2006년, 2007년에 각 한차례씩 탈북자들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그 조사과정과 조사결과를 끝내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발표하지도 않을 실태조사를 뭐하러 했나”는 빈축을 산 것은 물론이고 인권위의 겉다르고 속다른 모습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말았다.

안경환 위원장의 입장에서는 ‘인권위원장이라는 자리(장관급)를 그만두기 아까워서 비록 지금은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법학교수로서 일말의 양심은 있다’는 쇼를 보여 주고 싶었는지는 몰라도, 국제적으로는 이미 세계적 이슈가 된 북한인권을 일부러 외면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전 지구적으로 창피를 당하고 난 뒤였다. 한마디로 인권위의 전형적인 기회주의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또 당시 인권위의 조사내용이라는 것도 ‘한국거주 탈북자의 실태’ ‘한국 거주 탈북자의 취업현황’ 등 북한내 인권실태와 별다른 연관성을 갖지도 못했다. 그냥 북한인권 문제에 ‘생색내기’에 불과했다.

게다가 당시의 조사 주체를 보면 ‘고의적으로’ 탈북자 단체나 북한인권 전문가들을 배제하고 대학연구 단위에 용역을 맡겨 ‘면피용 행정사업’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당시 17대 국회가 ‘북한인권 실태 조사’ 명목으로 인권위에 책정해준 예산은 무려 1억4천8백만원이었다.

인권위가 세금 아껴서 쓰는 방법

지난해 12월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 마자 인권위는 “그동안 국가인권위는 북한인권에 대한 지속적인 내부적 검토를 가져왔다”며 서둘러서 얼굴에 ‘핑크색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인권위는 급하게 새 정부 국가인권위 10대사업에 ‘북한인권’을 포함시켰고,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는 북한인권을 ‘6대 중점사업’으로 갑자기 승격시켰다.

북한인권 NGO들과 탈북자들이 인권위의 ‘북한내부 인권실태 조사’ 발표를 고운 눈길로 보지 못하는 이유도 인권위의 ‘진정성’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인권위가 “그동안 보수 꼴통들이 북한의 인권문제가 심각하다고 자꾸 주장해왔는데, 위대하신 김정일 장군님께서 영도하시는 공화국에서 과연 인권유린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하는 식으로, 북한인권 실태가 ‘진짜로 궁금해서’ 조사를 시작하려 한다면 적극 말리고 싶다.

왜냐하면 이미 ‘북한인권정보센터'(소장 윤여상)만 하더라도 4천명이 넘는 국내외 탈북자들의 인권실태 자료를 보유하고 있고, 지난 10여년 동안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북한인권시민연합 등이 발표해온 세미나 자료만 해도 풍부하기 이를 데 없다. 인권위가 굳이 국민세금을 또 축내가며 탈북자들 상대로 인권실태를 조사할 하등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미 다 조사되어 데이터베이스화 된 것을 다시 하겠다는 말은 ‘실태조사는 쉽게 하고 예산(국민세금)은 팍팍 쓰겠다’는 수작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덧붙여 또 있다. 대성공사와 하나원에도 1만 3천명이 넘는 탈북자들 신상자료가 확보되어 있다. 또 탈북자 단체들과 북한인권 NGO들이 보유하고 있는 실태조사 자료, 문헌, 증언 기록등 북한내부 인권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지금도 이미 차고 넘치는 수준이다. 지난 주 북한민주화운동본부(대표 김태진)는 북한 수감시설내 고문피해자 100명에 대한 자료를 언론에 발표했다.

때문에 조사결과가 이미 불보듯 뻔한 상황에서 기초 조사를 처음부터 다시 벌인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얄팍한 ‘전시행정’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국가인권위 관계자들이 ‘난독증 환자’가 아닌 이상, 기왕에 만들어져 있는 자료를 무시하며 국민의 혈세를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국가인권위가 진심으로 북한인권개선을 ‘6대 중점사업’으로 설정하고 있다면, 때늦은 ‘자료수집’으로 젯밥에 열중하기 보다는 ‘인권개선을 위한 대안’ 마련을 위해 몸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게 더 필요하다. 지금 북한주민들이 겪고 있는 인권유린을 어떻게 예방하고 구제할 것인지, 각계의 전문가로부터 열심히 듣고 메모하고 숙제를 하면서 그 ‘전략적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국민세금을 쓰는 것이 낫다.

국가인권위는 탈북자 단체와 북한인권NGO, 북한내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준비해 북한인권 개선 대책의 밑그림부터 그리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최근 시점의 북한 실태조사’를 반영하면 예산 낭비 없이 사업을 잘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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