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나무에 날짜, 이름은 왜 없는거요?”

▲ 백두산 밀영 인근의 구호나무들

평양 순안공항에서 백두산으로 가기 위해 소련제 쌍발 46인승 비행기가 이륙했다.

1시간 30분을 비행한 후 양강도 삼지연 공항에 도착했다. 삼지연 여관에 방을 정하고 ‘항일투쟁 유적지’라는 백두밀영지역 구경에 동원되었다. 여자군인 복장을 한 전문 강사가 설명을 해주는데 녹음한 그대로를 간추려 옮겨본다. 구호나무에 대한 설명이다.

『최근에 백두산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북부 국경지대의 대수림 지대와 함경남북도, 자강도, 평안남북도, 평양시를 비롯한 전국의 넓은 지역에서 항일혁명투쟁 시기의 구호나무들과 유적, 유물들이 새로 발굴되고 있습니다.

이 유적 유물들은 항일혁명투쟁을 승리로 이끄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주석님의 영광 찬란한 혁명 활동 력사를 담보해 주는 귀중한 증거물이며 (중략) 경애하는 수령님과 항일의 여성영웅이신 김정숙 동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비서의 위대성을 높이 칭송하는 ‘우리민족 3대 자랑’에 대한 구호들이 전국도처에서 발굴되고 있습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올라와 참기가 힘들었다.

“왜, 나무에 글 쓴 날짜와 글 쓴 사람의 이름이 단 하나도 없느냐?”

들은 척 만 척 하고 다른 말로 넘긴다. 옆 사람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른다.

“입장 거북하게시리 그런 질문은 왜 합니까?”

이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많은 나무들에 새겨진 글자들이 조작됐다는 증거일 것이다.

김정일 태어난 곳 부엌으로 피하자, 불호령 떨어져

▲ 김정일이 태어난 곳으로 선전하는 백두산 밀영

김정일이 태어난 곳이라는 가옥에 구경을 갔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일행들이 지붕 처마 밑으로 우루루 몰려가고, 나는 열려있는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순간 불호령이 떨어졌다. 거기가 어딘데 들어가느냐고, 전부 나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일행들은 아무 말 한마디 못하고 뿔뿔이 각자 알아서 나무 밑으로 갔다. 놀란 꿩 머리 올려보듯, 비를 피할 의지도 안 되는 나무만 원망하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화가 치밀어 한마디 꼭 해줘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데, 다행히 안내원과는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삼지연에서 백두산까지는 46km, 백 십 오리 길이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또 한번 김일성의 빨치산 시절 혁명 이야기를 들었는데, 대부분 졸고 있었다.

천지연은 그림이나 시진으로만 보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보는 순간 전신에 전율이 오르고 확 뛰어들고 싶은 순간적인 감정과 빨려드는 듯한 느낌! 누가 감히 보는 순간의 그 느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천지연을 보고 있노라면 천지연 전체를 좀처럼 볼 수가 없다. 마치 흐르는 물처럼 앞에 가는 구름을 뒤따라 가고, 그 뒤엔 안개와 비구름이 비를 뿜으며 따라 오고, 그러다가 갑자기 하늘을 뒤덮는 연한 소나기가 지나간다.

백두산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반만년 민족혼을 머금고 민족정기가 스며 있는 산! 우리민족의 한과 꿈이 고이 담긴 그 곳! 금방이라도 금빛 용이 승천할 것만 같은 큰 바다다. 반만년의 역사를 깊이 품고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천지. 일제의 억압을 피해 바람 부는 만주벌판에서 그들의 삶을 개척해나간 조선족 동포. 과거 역사가 아니다. 바로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미래인 것이다.

그런데, 김정일은 집 한 채 지어놓고 백두산을 자기 앞마당인냥 가족들의 혁명사적지로 치장하고 있으니, 이 아니 슬프겠는가? 백두산에서 겪어야 했던 착잡한 심정이었다.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LA 동국로얄 한의과대학졸업, 미국침구한의사, 중국 국제침구의사.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졸업-북한학 석사. -세계화랑검도 총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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