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민주화 운동을 북한에 대입하면?

▲ 구 소련의 민주화시위

최근 북한에서 체제에 도전하는 사건에 대한 소식이 들려온다. 김정일 초상화에 구호를 적어놓고 반체제 성명서를 낭독한 사건, 공개처형 비디오를 몰래 촬영해 외부에 공개한 사건 등은 북한에서도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조직적인 ‘반체제 운동’은 거의 없다.

소련의 경험을 비추어 보면 북한에서 만주화 운동이 없다는 것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소련에서도 스탈린 시대에 반체제운동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고한 국민들을 대량으로 살해하거나 감옥으로 끌고 가는 정권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반체제운동이라는 것이 어떠한 조직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운동은 스탈린 시대에 있을 수도 없었다. 대규모 테러(공포)정책, 그리고 정치경찰의 무서운 힘 때문에 그랬다.

유감스럽지만 20세기의 역사적 경험을 보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수단이라도 이용할 의지가 있는 독재라면, 저항 세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20세기에 가장 악랄한 독재정권은 외부의 간섭에 의해 전복되었거나, 세월이 갈수록 통제력이 약해진 다음에야 국내 민주화운동에 의해 전복되었다.

현대사회에서 무자비한 폭군은 스탈린처럼 주민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적인 통제기술을 이용하고 외부와 연계를 완전히 차단하면 국내 민주화운동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폭군을 미워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고 해도 그들은 아무런 조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을 테고, 공포 속에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세기에 국내에서 전복된 독재는 모두 비교적 온건한 독재이거나 힘과 의지가 약해진 독재였다.

비밀경찰과 수용소로 유지된 스탈린 체제

국민들이 입을 열지 못하도록 스탈린 정권이 취한 방법은 주로 두 가지였다. 스탈린의 충실한 제자임을 자랑했던 김일성이나 그의 아들 김정일도 똑같은 수단을 이용하고 있다.

첫째 방법은, 수많은 밀정(密偵)을 이용하는 비밀경찰의 효과이다.

소련 사람들은 성인 수십 명 가운데 밀정이 적어도 한 명 정도는 침투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믿지 못했다. 밀정은 돈을 별로 받지 않았으나 그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공산주의 사상을 믿어서 밀정 짓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 경찰의 요구를 거절하면 체포되거나 출세에 지장이 생길 것을 우려해 밀정이 되었다. 그래서 밀정은 사회적 공포를 ‘생산하는 자’일 뿐만 아니라 공포에 의해 계속 ‘생산된 자’였다.

둘째 방법은, 엄격한 처벌을 주는 것이다.

정치범수용소로 끌려 간 사람 대부분은 반체제 행위를 하지 않은 자였지만 진짜로 정권을 비판하거나 반체제운동을 시도한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이러한 사람들은 사형이나 10~20년형 같은 극한 처벌을 받았다. 일반 소련 사람들은 정부를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경찰이 밀정을 통해 알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았고, 경찰이 알게 되면 살아 남을 경우에도 15년 동안 시베리아 어떤 광산에서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신문에 나온 의견과 다른 생각을 말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정치활동을 하는 지하단체를 만드는 것은 말도 안되었다.

1940~50년대에 몇 개의 청년학생 반체제 단체들이 있었지만, 이 단체들은 활동도 하기 전에 정치경찰에 노출되었고, 참가자들은 사형을 당하지 않으면 수용소로 끌려 갔다. 나이와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반체제 활동을 ‘의미 없는 자살행위’로 봐서 조용히 생존하려 노력했다.

1920년대 말 스탈린이 정권을 잡은 후 체제에 노골적으로 저항하는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소련 영토에 합병된 지역에서만 볼 수 있었다. 1940년대에 소련군대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소련 영토가 된 발트해 3국(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이나 서방 우크라이나에는 경찰의 밀정망이 아직 없었고 ‘공포 문화’가 뿌리를 깊이 박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의 의지가 꺾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1950년대에 들어와 이들 영토에서도 적극적인 항쟁이 없어졌다.

소련에 반체제 운동이 가능해졌을 때는 1960년 무렵이다. 스탈린이 1953년에 죽은 다음 새로운 소련 정부는 자유화 정책을 실시했다. 물론 소련이 민주국가가 된 것은 아니지만 주민통제가 스탈린 시대보다 많이 약해졌다. 정치범 수는 10년 내에 1~2백만 명에서 1~2천명 수준으로 격감했고, 비정치적 성격을 띠는 단체의 활동도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간부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정권이나 체제를 비판해도 당국자들은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나 체제의 온건화 이후에도 공포심은 아직 남아 있었다. 1960년대에 반체제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은 주로 1935년 이후 태어났기 때문에 스탈린의 학살정책이 절정에 달했던 1930년대 말을 성인으로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보다 나이가 많은 소련 사람들은 늙을 때까지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소련 민주화 운동, 중산층 중심 공산주의 개량운동으로 출발

소련 반체제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동일한 사상을 갖지 않았다. 크게 3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서양식 자유민주주의를 모방하려는 운동이 있었다. 둘째, 서양식 민주주의를 비판적으로 보고 러시아적 전통으로의 회귀를 요구한 민족주의 운동도 있었다. 셋째, 소련식 공산주의가 스탈린에 의해서 위조되었다며 ‘진짜’ 사회주의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新)공산주의’, 또는 개량 공산주의 운동도 있었다.

비(非)러시아계 지역에서 독립운동이나, 보다 큰 자치권을 요구하는 운동도 생겼지만 ‘소수민족’보다는 소련연방국가의 핵심인 ‘러시아’에 대해 언급하는 정도였다. 세월이 갈수록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과 희망이 무너짐에 따라 신공산주의의 영향력은 약해졌지만 1960년대에는 ‘공산주의 개량운동’이 민주주의 운동이나 민족주의 운동보다 인기가 높았다.

이 무렵에 공산주의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은 아직 서양식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러시아계 민족주의에 대한 거부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소련체제에 대한 실망이 커질수록 자유민주주의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반체제 단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성격을 강조하지 않았다. 자유민주와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단체들은 주로 ‘인권보호’의 원칙을 인용했다. 그들이 반복하는 슬로건은 “정부는 자신이 발표한 법률을 지켜야 한다”였다. 무슨 뜻인가 하면, 소련 헌법을 비롯한 여러 법률은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 원칙을 인정했지만 실제 국가의 운영방식이 이 법률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활동이 ‘소련 법에 의해서 허용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인권원칙을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민족주의 단체들은 주로 ‘문화유산보호’나 ‘우리의 민족적 전통’을 기치로 내걸고 캠페인을 했다.

반체제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다양한 사회계층 출신이었지만, 주로 중산층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1970~80년대에 운동을 적극적으로 했던 사람뿐 아니라 그들의 활동을 위해 유리한 환경을 마련해준 사람들이 거의 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지식인층이었다. 대학교수나 연구소 연구원, 기술자, 기자와 같은 사람들이 여러 반체제 단체에서 절대 대수를 차지했다.

초기 北민주화운동, ‘개혁’ 슬로건이 지지받을 것

이제 북한문제로 관심을 돌려보자. 북한의 미래와 관련해 소련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북한에서도 지금 당장 대규모 반체제 운동이 시작되지는 못할 것이다.

소련에서 첫 반체제 단체들은 스탈린이 죽고 정치가 많이 자유화된 지 15년이 지난 무렵에야 생겨났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죽은 지 이제 11년이 지났을 뿐, 1950년대 말 소련의 자유화와 비교할 만한 온건한 조치가 아직 없다. 북한 사람들이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 조건에서, 체제에 도전할 개인이 있을 수도 있지만 반체제 단체가 형성되기는 어렵다.

둘째, 북한에 민주화운동이 등장할 때 반정부 슬로건보다는 ‘개혁’ 슬로건이 지지받을 것이다.

평생동안 유례 없는 사상교육을 받은 북한 사람들은 원래 배웠던 것과 완전히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은 자기 의견을 바꾸며 살지만 세계관을 하루 아침에 180도 바꾸는 것은 드물다.

셋째, 운동을 지지할 사람들은 주로 중산층 출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북한의 고급 간부들은 벌써 국내외의 진실을 잘 알고 있지만, 중국이나 소련 간부들과 달리 개혁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 소련이나 중국에서 공산당 간부들은 새로 생긴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를 통해 예전보다 더욱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북한의 경우에 개혁은 흡수통일을 초래할 수 있는데, 간부들은 체제의 비민주성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런 식의 개혁은 두려워 한다. 반대로 지방 농민, 근로계층은 오직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관심도 없고,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민주화 운동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은 도시 지식인 계층이 될 것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교수, 역사학 박사

<필자 약력>
-구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종합대 유학(조선어문학과 1986년 졸업)
-레닌그라드대 박사(한국사)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저서 : <북한현대정치사>(1995)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From Stalin to Kim Il Sung 2002) <북한의 위기>(Crisis in North Korea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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