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는 평양시찰단 일원으로 북한行”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과 ‘천변풍경’ 등을 쓴 월북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1987)은 남조선문학가동맹 평양시찰단의 일원으로 북한에 간 것이었다는 유족의 주장이 나왔다.


구보의 장남 박일영(70) 씨는 계간 ‘대산문화’ 겨울호에 ‘구보, 남조선문학가동맹 평양시찰단 일원으로 북에 가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구보가 북한으로 올라가기 전후인 1950년의 행적을 기록하며 이같이 말했다.


구보는 6ㆍ25 전쟁 중 이태준, 안회남 등을 따라 월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구인회의 일원으로 활동한 전력이나 작품 경향 등을 고려할 때의 그의 월북 경위와 배경에 대해 의문이 제기돼 왔다.


박씨는 이 글에서 1950년 초가을 무렵 한 젊은 손님이 찾아온 후 “어머니와 아버지는 오랫동안 일본말을 섞어가며 얘기하셨다”며 “그로부터 며칠 지나 알게 된 일로, 그 젊은이의 방문은 아버지가 남조선문학가동맹 평양시찰단의 일원으로 뽑혔다는 전갈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부친 같이 매사에 고지식한 분도 없어, 구보는 없는 말은 못하는 위인이라는 게 정평이어서 그런 연고로 평양시찰단에 뽑혔을 거란 생각이 든다”며 “구보가 현지의 사정을 보고 와서 이남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한다면 대부분이 의심 없이 믿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당시 열두 살이던 박씨는 구보가 북에 가던 날 유엔군 의무병 가방에 내의와 양말, 세면도구를 챙겨 집을 나서다 다시 돌아와 아내에게 가방에 박힌 ‘UN’ 글자를 가려달라고 했던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박씨는 “아버지는 올라가시자 전세가 불리해져 곧 종군작가단에 편성되어 낭림산맥 줄기를 따라 후퇴하다가 혜산진까지 밀려 간 모양”이라며 “휴전이 되기까지 근 3년을 소좌 견장의 군관복을 입고 종군작가로서 전선을 누볐다”고 전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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