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사 교과서 채택 무산과 ‘사이비 민주주의’

역사에서는 하나의 진실만 존재하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줘야 하는 학교에선 진실에 입각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즉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해석에 입각한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교육자의 이념이나 가치가 반영된 역사교육은 중립성을 상실한 ‘세뇌’라는 메카니즘(mechanism)으로 작동할 수 있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채택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서 불거지고 있는 논란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최근 교학사 역사 교과서 반대 운동에 과거 광우병 촛불 시위와 평택 미군 기지 반대 운동을 벌였던 ‘역사정의실천연대’ 소속 465개 시민단체 중 150여 개 단체들이 적극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관점에서 집필된 교학사 한국사 고교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들에 대해 격렬히 항의하고 압력을 가해 교과서 채택을 철회토록 했다. 심지어 학생들의 균형잡힌 한국사 학습을 위해 교학사 교과서를 복수 채택한 학교에 대해서는 학교를 폭파하겠다는 협박 전화까지 걸어 관계자들을 위협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폭력행사와 그 위협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정치든 교육이든 어떤 분야에서든 관철시키고야 말고자 하는 행태가 그들이 말하는 ‘정의의 실천’인지, 그리고 그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민주적 방식인지 묻고 싶다.

이들의 역사 인식은 좌편향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들이 지지하는 일부 교과서는 천안함 피격사건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김일성의 만주항일투쟁 당시의 보천보 전투는 부각 시키는 등 균형을 잃은 서술을 하고 있다. 6·25 전쟁에 기술한 부분도 수정주의적 역사관에 함몰돼 있음을 보여준다. 일부 교과서에서는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참전 때문에 전쟁이 국제전의 양상으로 비화했다고 언급돼 있다. 이 점은 김일성과 스탈린, 마오쩌둥이 전쟁 전에 이미 치밀하게 계획했다는 기술 없이 6·25 전쟁 관련 내용을 교과서에 서술해 학생들로 하여금 전쟁의 진상을 잘못 이해하게 만들 수 있는 대목이다. 즉, 김일성이 스탈린의 비호 아래 한반도 공산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역사적 진실을 간과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 교과서는 이승만, 박정희 시대의 인권 탄압은 자세히 서술하면서 북한 인권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을 안 한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친 한국 현대사를 배운 학생들의 역사관이 어떻게 정립될 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 이 같은 교과서들의 채택을 강제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시민단체들은 도대체 왜 그런 행태를 자행하는 것일까.

필자는 이들이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절 민주 대(對) 반민주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1987년 체제 성립 이후 민주화 또는 민주주의를 지상의 최대가치로 내세워 과거 역사를 부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인권지상주의에 함몰되어 대한민국 건설과 산업화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과거 권위주의 정부들의 통치 행태만을 비난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대한민국의 수립 자체를 죄악시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들이 교과서에 온전히 실려 학생들에게 교육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자율적으로 역사교과서를 채택하려는 학교의 의사를 왜 강압적으로 철회시키는가. 그런 행태가 그들이 희구하는 민주주의라면 그것은 사이비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데 자신들의 의사만 최고의 선이라고 강변하며, 그것을 타인에게도 강제한다면 그들이 비판하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행태와 무엇이 다른가.

교과서 논쟁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은 인권을 최상의 가치인 양 받든다. 때문에 과거 권위주의 정부들의 인권탄압을 비판하고 학생들에게도 이를 가르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인권을 중요시한다면 한국 인권상황에 비할 바 없이 열악한 북한 주민들의 인권현황에 관해서는 왜 아무 말이 없는가. 북한 독재정권의 70년 독재에 관해서 비판은커녕 오히려 그것을 에둘러 미화하는 게 과거 한국정부의 독재성에 대한 신랄한 비난과 형평성을 갖추고 있는가.     

그들의 역사인식은 ‘자학적 역사관’에 가깝다. 자학적 역사관은 종북(從北)사관과 친화력을 지니기 쉽다.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며 대한민국의 성공의 역사를 부정하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미래의 ‘남조선 혁명 일꾼’으로 양성될 수 있다는 우려감마저 든다. 이렇게 볼 때 올바른 역사교육은 대한민국의 정치안보와 직결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교육은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 국가정체성과 국기에 대한 자부심을 확립한다는 차원에서 중요하다. 이 나라의 역사를 치욕의 역사, 좌절의 역사로 가르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개탄스런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는 물론 많은 굴곡이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는 성공의 역사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역사를 태생부터 부정하며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건국 대통령과 부국 대통령을 인권을 탄압했던 독재자만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성취한 과실을 함께 따먹을 자격이 있는가 묻고 싶다.

미국의 교육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에 따르면, 과거에 대한 지식은 현재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는 자신의 저서 ‘Democracy and Education'(1944)에서 과거의 사건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재와 분리할 수 없으며 과거는 현재의 의미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의 사건들은 현재를 잉태하고 있으며,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유기적인 관계속에서 파악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오늘의 영예는 과거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영글어진 것이다. 오늘의 번영은 오늘 아침에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은 오늘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