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 리근 씨 “北가족 생사라도 알고 싶어”

북녘에 두고온 6남매를 그리는 98세의 부정은 절박했다.

1950년 10월 평안북도 신의주에 아내와 6남매를 남겨 두고 단신 월남한 지 어언 58년여. 남한에서 두 번 째 결혼해 나은 아들 태헌 씨 부부가 정착한 미국으로 이민온지 17년째.

리근 씨는 1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통일이 돼 고향에 간 다음에 그 다음날 죽을거야. 아이들 배불리 먹이고 용천군 내중면 선산에 묻히는 게 소원이지”라며 생전 가족상봉에 대한 간절함을 토로했다.

100살을 목전에 둔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리씨는 “내년에 한국에 다시 역이주(逆移住) 해서 휴전선 부근 민통선 영농단지를 다시 운영하면서 농사전문학교를 세울 계획”이라며 “그렇게 해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해줄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힐 정도로 정정했다.

가는 귀가 먹어 남의 말이 잘 들리지는 않지만, 자신의 생각을 막힘없이 말하고, 기술하는 리 씨는 기자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이산가족 찾고자 합니다’라는 세 쪽 짜리 메모를 건넸다.

메모엔 가족들의 이름과 나이 뿐 아니라, 친가.처가의 가까운 친척 이름과 경력 나이가 빼곡히 기술돼 있다. 또 “나의 선친 리정학(당시 57세) 씨는 마음 정직하고 선량한 성격 소유자입니다. 그런데 동네 불량담(불량배로 몰렸다는 뜻인듯)으로 6.25 당시 가족 모두 총살당하였다고 합니다. 외정(왜정, 즉 일제 식민기를 뜻함) 당시 동네 이장을 10여년 지낸바 있음”이라고 씌어 있다.(괄호 안 설명은 편집자가 첨가함.)

리근 씨는 5.16 직후 큰아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조총련을 통해 들은 뒤 이후 어떻게 해서든 가족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아들 태헌 씨는 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는 어떻게 헤어지게 됐나.

▲ 1950년 10월 21일날 내가 (운영) 하던 압강면점에서 헤어졌다. 그때 폭탄이 쏟아지는데 미군들 따라서 그냥 내려왔다. 족히 한 달이면 다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벌써 58년이 지났다.

— 월남하기 전에 식당을 하셨나.

▲ 원래는 철도 공무원을 했지. 그러다가 압강면점이라고 냉면집을 했다. 하루에 천 그릇을 넘게 파는 유명한 냉면집이었다. 지금도 신의주 쪽에서 온 사람들은 옛날 압강면점 하면 다 안다.

— 월남해서 무슨 일을 했나.

▲ 경찰에서 일했다. 경감을 지냈지. (태헌 씨에 따르면 전남 도경 수사과장을 역임했다고 한다). 감찰에 있을 때 한 300명 목을 잘랐지. 와이로(부정한 돈)를 먹어서. 경찰 그만둔 다음에는 파주에서 실향민들하고 같이 민통선 안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었다.

— 연세가 많으신데 만약 북한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가실 수 있겠나.

▲ 살아 있으면 가야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은 고향에 가는 것이 목적이다. 걸어서라도 가야지. 가게 되면 일착으로 보내줘. 내가 장손인데 선산을 돌보지도 못하고…선산에 묻혀야지.

— 북에 있는 자녀들 소식은 들은 적 있는지.

▲ 누가 그러던데 큰 애는 죽었다는 얘기도 있고.. 생사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생사라도 알아야지. 아마 살아있는 녀석들이 없을지도 몰라. 두고 나온 애들한테 미안하고 불쌍해서 빨리 가고 싶다. 먹지도 못하고 고향에 가면 죽는날까지 일할 거다. 내가 농사가 전문이다. 92년에 미국 오기 전까지 민통선에서 농사를 지었다. 1년에 100가마니가 넘었다.

내년에 한국에 다시 돌아가서 민통선 영농단지를 다시 운영하면서 농사전문학교를 건립할 생각도 갖고 있다. 그렇게 해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해줄 생각이다.

— 여러 차례 가족 상봉을 시도했다고 들었는데 왜 성사되지 못했는지.

▲ 모르겠다. 5.16 직후에 조총련 통해서 큰 애가 살아있다는 얘기를 들었다.(옆에 있던 아들은 ” 2003년 실향민들이 북한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아버님 모시고 갔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이복형님.누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갔는데 못만났다. 북측에서 “못찾겠다”, “찾았는데 동명이인이더라”고 하더라. 아무런 소식조차 알 수 없었다. 아마 아버님이 과거에 자본가 계급이고 거기에다가 월남까지 했고, 경찰 공무원을 지내서 북에 있는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으며 살았을 것이라는 추측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자녀들을 만나게 된다면 무슨 얘기를 가장 먼저 하고 싶나.

▲ 잘있었냐고 해야지. 미안하지. 나 혼자 내려와서. 무슨 할 말이 있겠나. 미안하다는 말 밖에..(노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제 다들 60이 넘었는데. 나만 이렇게 오래 살았지 60이 넘으면 사람은 죽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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