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左편향 없다”…교과부 ‘권고안’ 거부당해

지난달 30일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가 좌편향 문제와 대한민국 정통성 문제를 거론하며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권고안을 제시한 것에 대해 ‘한국근현대사교과서 집필자협의회(협의회)’측은 “교과서 검인정제의 취지를 훼손하는 교과부의 수정 권고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순권 동아대 교수, 한철호 건국대 교수, 주진오 상명대 교수 등 3명은 4일 세실레스토랑에서 협의회 대표로 기자회견을 갖고 “교과부가 한국의 교육을 책임지는 주체로서 책임을 망각하고, 정권의 성향에 맞춰 교과서를 수정하겠다는 것은 교과서 검인정제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처사”라며 이같이 반발했다.

이들은 “현재 6종의 교과서들은 모두 1997년 김영삼 정권에서 마련한 교육과정에 입각해 집필됐고 합법적으로 교육부의 검인정 과정을 통과한 것”이라며 “장관은 물론 대통령까지 나서서 현재의 교과서가 ‘좌편향’이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규정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발표에 나온 50개 수정권고안 중 절반 이상은 숫자 채우기식의 ‘첨삭지도’ 수준”이라며 “나머지 쟁점이 될 수 있는 부분들도 어디까지나 검인정제도 하에서 다양성의 측면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북한과 관련해 교과서가 발행된 시점 이후에 발생한 상황을 서술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북한정권의 실상과 판이하게 달리 서술된 부분’이라고 지적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교과부의 수정권고안 일부에 대한 해명도 덧붙였다.

이들은 “이번 수정권고는 앞으로도 정권이 바뀌면 제도를 무시하고 교과서를 수정할 수 있다는 전례로서 ‘역사의 오점’”이라며 “역사교육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는 시도를 당장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홍순권 교수는 “교과서에 보면 조선 총독부가 항복 조인식을 하면서 일장기 대신에 성조기가 올라갔다고 돼 있는데, 교과부는 이 대목에 대해 태극기가 아니라 성조기가 올라간 게 우리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서술에 적합하지 않다며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며 “그건 엄연히 역사적 사실로, 해방 직후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도움을 주기 위한 참고 자료”라고 말했다.

주진오 교수도 교과부의 현 교과서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한다는 지적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인데 대한민국 정통성을 왜 부정하겠냐”며 “(교과부가) 역사학자나 역사 관련 분들의 의견 수렴은 않은 채 정치적 성향 띤 단체들 입장을 받아들여 수정을 요구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교과부는 “일단 집필진을 일일이 만나 거부 사유를 듣고 논리적으로 따져본 뒤 수정권고를 수용하도록 설득해 나간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교과부는 그러나 일부 집필진이 수정을 거부해 해당 출판사의 교과서에 반영이 안 될 경우 일선 학교에서 수정권고 된 내용으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교과서 지도자료 등을 내려 보낼 계획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한 출판사에 집필진이 여러 명 있으며 이 중 일부만 거부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정권고 내용에 공감하는 집필진도 많지만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회견을 개최한 협의회에는 교과부가 수정을 권고한 5개 출판사의 9명의 교수가 참여하고 있다. 금성출판사의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홍순권 동아대 교수, 김태웅 서울대 교수, 대한교과서의 한철호 동국대 교수, 김기승 순천향대 교수, 법문사의 김종수 군산대 교수, 중앙교육진흥연구소의 주진오 상명대 교수, 천재교육의 한시준 단국대 교수, 박태균 서울대 교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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