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11일 개성공단 실무회담에서 근로자 월급을 현재의 4배 수준인 300달러로 올려 달라고 요구함에 따라 과거 대북 경수로 제공 사업 당시 임금협상 과정에 새삼 관심이 쏠린다.
북한은 당시 과도한 요구를 제시했다가 수준을 낮춘 뒤 임금인상폭 만큼의 현물을 달라고 했다는 점에서 개성공단 관련 협상에서도 이런 양태를 보일 수 있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경수로 임금협상 경과 = 제1차 북핵위기를 봉합한 북.미 제네바 합의 이행을 위해 구성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줄 때도 북한의 요구에 따라 임금 인상 협상이 진행됐었다.
당초 KEDO는 북한과 1997년 1월 맺은 서비스 의정서와 그해 7월 체결한 `노무.물자.시설 및 서비스 사용을 위한 일반원칙 및 지침에 관한 양해각서’에 따라 북한 근로자 기본급을 월 110달러(숙련공 제외)로, 연 임금인상율을 최대 2.5%로 각각 정했다.
그러나 1999년 12월 KEDO와 한전 간에 본공사 계약이 체결됨에 따라 현장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즈음인 2000년 2월 북한은 갑자기 근로자 임금을 600달러로 인상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것이 관철되지 않자 당시 200명 가량의 인력을 공급하고 있던 북한은 그해 4월 2차례 걸쳐 근로자 절반 가량을 철수시키는 등 `벼랑 끝 전술’을 썼다.
북측은 2000년 8월에서야 임금인상 요구 수준을 600달러에서 390달러로 낮추면서 기존 임금인 110달러와의 차액은 현물로 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KEDO와 북측은 `밀고 당기기’ 끝에 2002년 10월에서야 이 같은 북의 수정안 대로 합의, 양해각서 초안을 교환했다.
북한이 임금 인상을 요구한지 2년8개월만에 이뤄진 합의였다.
당시 KEDO로서는 임금 인상은 북한과 만든 기존 합의를 변경해야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부담이 컸기때문에 현물로 임금 인상폭을 보전해주는 `절충안’을 택했다. 그러나 제2차 북핵위기 발발로 경수로 사업이 파행을 겪으면서 이 같은 합의는 이행되지 못했다.
◇개성공단 협의서도 재연될까 = 경수로 사업과 개성공단 사업은 근로자에게 월급을 주는 주체가 각각 당국과 민간으로 다르고, 고용 근로자 수도 각각 수백명과 수만명 단위로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북한이 개성공단 실무회담이라는 틀에서 우리 정부 당국을 협상 테이블로 초청한 만큼 경수로 협상때의 양태를 되풀이 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만약 북한의 목적이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며 개성공단을 닫는 것에 있지 않다면 북한이 다른 복안, 즉 추가의 대가를 염두에 두고 정부 당국자를 불러 과도한 임금 인상을 요구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14일 “북한이 우리 당국자를 불러 놓고 임금 인상을 요구한 배경을 추측해보면 경수로 사업때 임금 인상폭 만큼 현물을 달라고 했던 것 처럼 다른 모종의 대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북한은 11일 개성실무회담에서 임금 및 토지임대료 인상, 토지사용료 조기 징수 등 `현찰’ 요구 외에 ▲근로자 숙소(1만5천명 수용 규모)와 탁아소 건설 ▲근로자 출퇴근을 위한 도로 건설 등을 시급히 추진할 것을 함께 요구했다는 점에서 이 같은 분석에 설득력이 없지 않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 전문가는 “경수로 협상때도 그랬듯 이번에도 만약 협상이 전개된다면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며 “북한이 개성공단을 계속 발전시킨다는 의지가 있다면 임금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남측의 요구사항을 포함한 각종 개성공단 관련 현안이 함께 협의될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