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7일 ‘전승절'(정전협정 체결일) 60주년을 기념해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개최한 열병식은 중국과의 관계 복원에 대한 김정은의 강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김정은은 이번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을 위해 방북한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국가 부주석을 극진하게 예우하는 동시에 열병식 행사에서 6·25전쟁부터 이어져 온 양국 간 ‘혈맹 관계’를 강조하며 중국에 긍정적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리 부주석은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을 찾은 중국 인사 중 최고위급이다.
이날 열병식 주석단에는 김정은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리 부주석이 오른쪽에는 북한의 2, 3인자인 최룡해 총정치국장과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위치해 있었다. 열병식 도중 김정은이 리 부주석과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자주 포착됐으며, 주석단에서 내려와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할 때도 리 부주석이 김정은의 바로 뒤에 서는 등 북측의 배려가 눈에 띄었다.
김정은은 전날 리 부주석과 아리랑 공연을 관람한 데 이어 당일 저녁에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전승기념관) 개관식을 비롯해 평양에서 열린 불꽃놀이 행사에도 함께 참석하는 등 방북 일정 동안 직접 나서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외신들도 리 부주석이 김정은의 바로 옆에서 열병식을 관람한 것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AFP통신은 “리 부주석이 26일 김 제1위원장과 함께 대규모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을 관람한 데 이어 열병식에서도 주석단에 올랐다”며 “북한과 중국이 ‘순치'(脣齒·이와 입술)의 관계였지만 최근 중국이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서 소원해졌다”고 소개했다.
이 밖에도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열병식 치사에서 “중국 인민지원국은 인터내셔널 정신과 형제적 우의를 가슴에 품고 인민군과 어깨를 나란히 해 전투에 참가했다. 이들의 희생정신은 중조우호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며 이렇게 피로 뭉쳐진 우의 위에서 중조친선은 계속 발전할 것”이라며 양국 간 전통적 동맹 관계를 강조했다.
중국 매체들은 이에 대해 북한이 피로 뭉쳐진 북중 우의를 언급하고 행렬에 중국 참전 노병을 포함하는가 하면 전쟁 당시 중국군의 구호를 쓴 중국어 표어를 내세운 것은 전통적 혈맹관계 복원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중국에 전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경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데일리NK에 “김정은 정권 수립이후 내부적으로 권력을 안정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열병식을 기획했을 것”이라면서 “중국 국가 부주석을 열병식에 초청한 것은 이를 계기로 북중 관계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말했다. 이번 열병식에 권력안정과 전통적 북중 관계 복원이라는 대내외적 목적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 연구위원은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개발에 반대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포기 하지 않는 이상 북중 관계가 김정일 시대처럼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열병식 현장은?=북한은 이날 열병식 행사를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 등 방송 매체를 통해 2시간가량 생중계했다.
북한에서 ‘전승절’에 맞춰 대규모 기념 열병식을 진행한 것은 1993년 이후 20년 만으로 과거 열병식이 신형 무기 공개 등 무력 과시를 주 목적으로 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전쟁 당시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주석단 옆 김정은의 오른쪽에 선 최룡해 총정치국장,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김정각 김일성군사대학 총장, 김영춘 정치국 위원은 흰색 군복을 입었는데, 전쟁 당시 김일성 및 장성들이 입던 복장이었다.
또한 관람석에는 북한 전역에서 평양으로 온 6·25전쟁 참전 ‘노병’들이 전쟁 시기 북한군이 입었던 군복을 복원해 맞춰 입고 행사를 지켜봤으며 열병식에서도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활동을 연상시키는 백마를 탄 기마부대 등 6·25전쟁에 참전했던 육·해·공군 부대와 여군들이 전쟁 당시 군복을 입고 행진했다.
이와 관련 북한군 출신의 한 탈북자는 “전쟁 시기 군복을 입은 것은 김일성에 대한 향수를 불러오고 특히 6·25가 승리한 전쟁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승리의 역사를 강조하며 김정은에 대한 충성과 체제결속을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1만 2천∼1만 3천여 명의 군병력이 대규모 퍼레이드를 벌였고 이어 견인포와 방사포, 장갑차 등 각종 무기와 함께 그동안 시험 발사를 해왔던 무인타격기 등 300여 종의 군사장비가 공개됐다. KN-08 장거리 탄도미사일과 KN-05(S-300)·KN-06 지대공미사일, SA-2·3 미사일 등 각종 미사일도 등장했지만 처음으로 공개된 신형 무기는 없었다.
이번 행사에는 ‘방사능표식’을 하고 배낭을 멘 부대가 등장해 관심을 끌었다. 정부 소식통은 “이 부대는 작년 4월에도 같은 복장으로 나왔으나 방사능표식을 하고 배낭을 메고 나온 것이 특징”이라며 “북한이 소형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자기들 나름대로 휴대용 핵무기도 개발했다는 것을 과시하려 한 행동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