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법학에서 정의를, 교육에서 정직을 배웠다”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말은, 부적절한 사람이 부적절한 때에 부적절한 의미로 사용한 고전적인 문장으로 남을 것 같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박명기 전 교육감후보에게 선의로 2억 원을 주었다”는 그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그를 전폭적으로 방어하고 나선 좌파진영 일부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러나 ‘곽노현 스캔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 사태의 의미는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8월 24일 주민투표 결과와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가 시간적으로 너무 가까워 뭔가 그 배경에서 겹치는 바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선명한 연관관계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10월 26일 서울시장의 선거에 여․야의 어떤 후보가 어떤 공약을 갖고 나올지도 분명하지 않고,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가 같은 날 실시될 지도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곽노현 스캔들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시도는 앞에서 인용한 그의 주장 자체에서 시작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즉 곽노현의 주장을 듣고 우리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현실감을 잃어버린 자기정당화의 황당함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 즉 ‘현실성이나 진실성이 전혀 없음에도 확신을 갖고 주장하고, 또 그 주장 자체에 스스로 감동하여 더욱 광적으로 주장하는 경우’의 한 개인적 사례가 바로 곽노현 스캔들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을 ‘자기정당화 버블’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한 번은 읽어 봤던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는 이런 자기정당화 버블이 인간의 허영심과 결부될 때 현실화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곽노현 교육감은 지금 자신의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치부를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즉 ‘선의(善意)와 정(情)’으로 미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벌거벗은 교육감>이라는 새로운 동화의 작가이자 주인공이 되었다.
II.
트위터와 인터넷에서 ‘선의캐피털의 곽노현 팀장’, 혹은 류근일 선생에 의해 ‘곽산타’로 불리는 서울시 교육감의 행색은 더욱더 초라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 민노당 등 야당, 좌파언론 및 시민단체가 곽노현 교육감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 것은, ‘●묻은 개가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 아니다. 이들이 바로 곽노현을 ‘●묻은 개’로 교육시켜 당선시킨 당사자들이고, 곽노현 교육감과 그를 옹호하고 나선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좌파의 특징적인 행태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 몇몇 예를 살펴보자.
조금 멀리 과거를 돌아보면 6․25전쟁의 발발원인과 관련하여 일개 미국학자의 편견에 불과한 수정주의 이론을 한국좌파는 일말의 비판의식도 없이 통째로 받아들였으나, 소련의 붕괴 후에 쏟아져 나온 비밀외교문서에 의해 6․25전쟁이 ‘스탈린-모택동-김일성’의 음모에 의한 것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나도 어느 누구하나 반성하는 지식인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멀리 돌아보지 않아도,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역시 진실성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몇몇 지식인들이, 시민단체, 언론, 국민, 정당과 함께 하나의 순환고리를 만들어 한때 국민의 80%가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광우병에 걸린다’고 믿도록 만들고, 그것을 ‘집단지성’이라고 극찬하였다.
그러나 광우병 촛불시위 이후 불과 3년이 지난 지금,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는 더 이상 이슈가 아니고, 미국보다 광우병 발생이 훨씬 많았던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 역시 이슈가 아니다. 따라서 지식인으로서 그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일말의 반성이나 사죄도 없이 학교와 언론계에서 ‘지성인’으로 자처하며 활보하고 있다.
천안함 폭침이 이명박 정부의 음모라며 ‘천안함의 진실 운운’하는 책을 출판한 지식인, 언론인들이 있다. 바로 이 한국좌파 지식인과 시민단체, 정당, 언론의 행태는, 독일군부와 히틀러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진정한 이유를 전력과 국력의 열세에서 찾기 보다는 유태인들이 후방에서 조국 독일을 배신하고 사보타지 하였기 때문이라는, 이른바 ‘등 뒤의 비수론(Dolchstoßlegende)’과 다를 바 없이 허구에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천안함 음모론자들의 핵심주장을 국제학회에서 검증해 보자는 보수 시민단체의 제안에 대하여 이 지식인들은 꼬리를 내리고 도망간다. 심지어 한 정치학 교수는 천안함의 진실을 형이상학에 비견하였다. ‘철학이 객지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말 이외에 이정도 수준의 무식에 대처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좌파지식인을 사로잡고 있는 자기정당화 버블의 한 예이다.
바로 얼마 전 실시된 주민투표를 보아도 한국좌파의 자기정당화 버블병이 얼마나 고질화 되었는지 확인하기 어렵지 않다. ‘일단 여유가 있는 집안의 자식보다 소득이 낮은 집안의 아이들부터 복지혜택을 주자’는 주장은 재정상황을 고려하며 시행하는 복지정책의 일반적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극히 합당하다.
‘보편적 복지’라는, 재정을 고려하는 복지정책의 원칙과 현실에 비추어 보면 거의 궤변에 가까운 주장을 하는 것은 둘째 치고, 주민투표용지의 ‘전면적 무상급식안’을 찬성하는 대표시민단체가 투표거부를 선동한 작태는 민주주의에 대한 절대배신, 절대타락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정당한 행위인양 호도한다. 아마 이보다 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자기정당화 버블은 선진화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뿐이랴, 종북주의 정당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민노당의 행태는 개선이 불가능하더라도, 북한의 처참한 인권상황에 눈감고, 민족의 망신인 수령체제의 3대 세습을 바로 민족의 이름으로 감싸며, ‘햇볕정책 이외의 모든 대북정책은 수구보수 냉전의식의 산물’로 공격하는 정동영류의 대북정책 역시 자기정당화 버블의 한 예이다. 만일 북한이라는 비정상체제가 조금 오래간다면, 그것은 이 체제의 황천길이 예상보다 길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버블의 핵심에 서 있는 한국좌파 지식인, 언론인, 시민단체와 정당이 곽노현을 서울시 교육감 단일후보로 지지하였고,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도 그의 투표거부를 지지하였다. 그리고 이제 곽노현의 버블이 터지자 한국좌파는 그를 도덕적 폐기물로 치부하려다 선거에 불리할 것으로 예상되자 다시 그를 옹호하고 나서고 있다.
곽노현 스캔들과 좌파의 위선은 별 차이가 없다. 곽노현은 ‘후보자 매수’라는 불법행위를 ‘선의와 정’이라는 허위로 정당화하여 지탄의 대상이 됐고, 좌파지식인들은 6.25전쟁의 기원, 광우병 촛불시위, 천안함 폭침 및 무상급식 주민투표 등 자기정당화의 다른 예에서는 허위의 주장들이 그냥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고 있다는 점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곽노현-박명기 후보 단일화 합의과정에서, 한국좌파의 원로 지식인, 시민단체 인사들이 과연 그 후보자 매수의 내막을 알고 있었는지(지금은 부인하고 있지만) 여부는, 이들의 위선적 행태를 폭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곽노현 개인의 범법행위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III.
버블경기에서 불확실한 점은 버블이 터지기 전에는 경기과열이 단순히 호황인지 버블인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와중에서는 버블경기의 막차를 탔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다. 다른 한편, 확실한 점은 버블은 언젠가 터진다는 점이다.
곽노현 스캔들을 통해 한국좌파의 고질병인 자기정당화의 버블이 터지기 시작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차라리 우파 서울 시장후보나 우파 서울시 교육감 후보가 오세훈 전 시장처럼 좌파의 버블병을 터뜨리려는 노력을 할 것인지가 현재로서는 더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지난 8월 24일의 주민투표 결과는 결코 우파의 패배가 아니다. 이번 주민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는 복지정책의 원칙훼손과 좌파의 기만적 투표거부 행태에 분노하여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나 권리와 의무를 행한 시민들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서울의 총 유권자 25.8%의 투표참여의 의미를 오로지 다음 총선과 대선의 승리여부에만 연관시키는 ‘잔머리 정치’를 반복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자발적으로 투표를 독려하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행한 215만명의 유권자를 얻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고 있다.
215만 명의 정당한 분노를 결집하여 옳고 그름, 진실과 허위를 결판내는 대회전을 통한 우파의 도덕성 고양이 정치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산인지를 한나라당의 잔머리 정치인들은 모르고 있다. 이들은 광우병 촛불시위부터 천안함 폭침, 무상급식 주민투표, 절망버스 시위에 이르기까지 진실을 갖고 국민을 설득하려는 적극성을 단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다. 거꾸로 허위에 오도된 국민들에게 영합하려는 것이 마치 진정한 정치인의 행태인 듯 착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곽노현 스캔들의 의미는 오세훈 후태풍의 의미와도 일치한다. 즉 한국좌파의 자기정당화 버블을 깨뜨릴 것인지 여부는 동시에 한나라당의 잔머리 정치행태를 깨뜨릴 것인지 여부와 내용적으로 일치하며, 그것이 곽노현 스캔들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