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 창건일 ‘9·9절’, 北주민들에겐 고달픈 명절

진행 : 언론은 사실을 보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정권을 위한 선전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는데요. 노동신문이 보도한 내용을 사실과 대조해서 짚어보는 시간 <노동신문 바로보기> 시간입니다. 9월 14일 이 시간에도 북한민주화위원회 서재평 사무국장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1. 국장님, 지난 9일자 노동신문을 보면요. 이른 바 북한정권 수립일인 9.9절을 맞아 노동신문이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위대성을 강조하면서 체제선전을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9월 9일을 김일성, 김정일 생일 다음으로 성대하게 기념해오고 있다는데 왜 그런가요?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의 날을 가장 큰 민족최대의 명절로 기념하고 있고 그다음으로 노동당 창건일인 10월 10일도 큰 명절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큰 명절이 9월9일 공화국창건일입니다. 사실 일반 국가에서 가장 큰 명절은 국가를 건립한 건국절이죠. 그러나 우상화의 나라인 북한은 김일성이나 김정일 그리고 북한의 가장 큰 전의조직인 노동당 창건일을 크게 기념하고 있고 그 다음으로 공화국 창건일인 9·9절을 기념하고 있있습니다. 북한에서도 1948년 9월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짓고 김일성이 창건한 공화국을 세운 날이라서 가장 크게 기념하고 있고, 늘 선전하듯이 일제의 의해서 나라를 뺏기고 망국의 설움을 가지고 있다가 이날에 공화국이 창건되면서 국호를 가진 가장 자주적인 국가를 만들었다고 선전하고 있어요. 노동신문에는 반만년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주체사상을 구현했다고 나왔는데 그때 당시에는 주체사상이 없었는데 주체사상을 구현한 나라가 됐다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는 겁니다. 어쨌든 당이 창건되고 건국을 해야 되는 입장에서 9·9절 북한으로서는 가장 큰 의미가 있는 날이라서 성대하게 기념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2. 실제로 북한에서 9월 9일을 전후로 분위기가 어땠나요?

통상 9·9절은 명절 중에서 가장 날씨도 좋고 활동하기도 좋은 시기인데 정주년(꺾어지는 해, 5년 주기)때는 여러 가지 각종 행사들이 준비돼요. 열병식도 9·9절에 한적 있어요. 여러 가지 축제도 하고 9월이어서 공화국 창건을 맞아서 진행하는 체육대회도 많이 열렸어요. 또한 주민들은 선전활동에 많이 참여를 해요. 북한의 명절은 쉬는 날의 수에 따라서 명절의 중요성이 나타납니다. 이번 9·9절은 하루만 쉬었더라고요.

2-1. 추석이랑 겹치는 경우는 어떻게 쉬나요?

추석이랑 겹치는 경우에도 그냥 9·9절 다음에 추석이라고 하면 이틀을 쉬지만 그 외에 정주년 외에는 보통 하루만 쉬어요. 이번 분위기는 정주년이 아닌 분위기라서 보통의 명절로 보낸 것이고 또 이번 9·9절이 북한으로서는, 김정은 정권으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10월10일 당 창건 기념일을 아주 성대하게 기념해야 되는 입장에서 9·9절에다가 국가재원을 넣기에는 아주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명절봉급도 없었고 그냥 하루 쉬기만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3. 특히 재일동포를 언급하며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충성심을 부각했습니다. 조선총련과 재일동포를 내세우는 건 어떤 의도에선가요?

조총련이 지금 지난 1990년대 후반 2000년대를 거치면서 특히 북한하고 일본인 납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부분들이 나오면서 또 시기적으로 북한의 실체가 많이 알려지게 되면서 조총련의 많은 사람들이 (조총련에서) 떨어져 나왔어요. 조직을 이탈해서 민단계(재일본대한민국민단)로 다 넘어가 버리고 민단계에 안 간 사람들도 조총련에서 떨어져 나왔어요. 조직의 90%가 소멸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에요.

조총련은 오사카 중앙본부에서 행사를 하면 그전에는 10만, 15만이 모였다고 자랑했는데 지금은 만 명도 겨우 모일정도로 조직이 아주 취약해졌어요. 그래서 지금 북한은 제일동포를 언급하면서 충성심을 부각할 수밖에 없고 격려를 통해서 그들의 충성심을 높이기 위해 이번에 조총련을 지칭하고 재일동포들의 충성심을 부각시킨 것이 아니냐하는 말도 나왔습니다. 안 그러면 조총련은 거의 망하기 직전이에요.

얼마 전에 신문에도 나왔지만 일본경찰이 불법문제 때문에 조총련 중앙본부를 압수수색 했어요. 그래서 조총련 중앙본부 건물자체가 매각될 뻔 했었죠. 그런데 어떻게 해서 매각을 막았어요. 이런 마당에 지금 북한의 가장 큰 해외우군인 조총련이 거의 소멸단계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번 노동신문을 통해서 충성심을 부각시키고 그들의 열의를 북돋아주려고 재일동포, 조총련을 내세워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4. 2일자 신문에서는 올해 9·9절을 앞두고 <조국찬가>를 제2의 애국가로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일성은 사향가라는 노래를 굉장히 애창한 것으로 나오고 김정일도 연상할 수 있는 노래가 꽤 많아요. 당을 따라 천만리, 동지 등 많은데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김정은을 대표할 수 있는 찬가라든가 특별한 노래가 없어요. 그래서 2013년에 조국찬가가 창작이 됐고 신문을 통해서도 굉장히 선전을 했었죠. 신문내용을 보면 제2의 애국가라고 아주 띄어줬어요.

이 의미는 조국찬가를 통해서 김정은을 더 부각시키려는 우상화의 단계라고 보고 조국찬가를 떠올리면 김정은을 떠오르게 하고, 김정은을 떠올리면 조국찬가를 떠오르게 하기위해, 주민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조국찬가를 추켜세우는 과정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4-1. 조국찬가에 대해서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2013년 9·9절 65돌을 맞아 <조국찬가>노래 창작을 직접 지시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창작지시를 안 했어도 창작지시를 했다고 할 수 있어요. 북한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김일성, 김정일과 아무 상관없이 (노래가) 다 만들어졌던 것인데 갑자기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서 그런 업적이 이루어졌다는 내용들이 상당히 많아요. 물론 직접적인 창작지시를 내리긴 했었겠죠.

지금 북한에서 불후의 명작이라고 불리는 조국찬가는 김정은의 지시에 의해 직접 지어졌다고 해야 이 노래가사와 곡의 의미가 북한주민들에게 크게 인식되는 부분입니다. 때문에 이런 조국찬가를 통해 김정은의 업적 내지는 공적을 만들기 위해서 김정은이 직접 지시했다고 신문에서 밝힌 것 같아요. 

5. 또 북한에서는 정권 수립 기념일을 앞두고 함경북도 청진시에 김일성, 김정일 동상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정권수립일에도 김 씨 일가의 우상화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인민들에게는 특별배급이라든지, 어떤 혜택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나요?

올해 9·9절에는 특별공급은 없었다고 들었어요. 주민들도 올해 당 창건 70주년이라는 큰 행사가 있어서 이번 명절은 알아서 쉬라고 해서 그냥 농태기 술 한 번 마시면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우울한 명절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지금 함경도 쪽 라선에서 홍수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는데 들려오는 소식은 라선만 피해를 본 것이 아니고 그 아래 두만강, 무산, 회령도 상당히 큰 피해를 봤어요. 회령도 시냇물이 일정하게 찼었고 특히 농촌지역은 도로가 굉장히 파괴돼가지고 지금 한창 복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엊그저께 통화를 했었는데 회령 같은 경우에는 복구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해요. 그런 복구도 안 된 상태에서 9·9절은 주민들한테 별로 즐거운 명절이 아니었고 고달픈 명절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6. 이런 우상화 강조에 이에 대해서 주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과거 1970년대, 80년대, 90년대 전까지만 하더라도 지금의 우상화교육에 비해서 과거에는 우상화교육 강도가 훨씬 높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우상화작업도 한창 북한전역에 걸쳐서 선전화를 만들고 유화판을 만들고 김일성 동상을 만들고 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때는 주야(晝夜)로 새벽별보기 운동을 농장에서만 한 게 아니고 도시에서도 우상화 선전물을 건설하는데 주민들이 전부 동원됐었어요. 그래서 그때 우리 부모님세대, 선배세대들이 우상화작업을 하는데 많은 동원이 됐었고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이 나온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김정일이 공식 노동당 조직비서 후계자로 선정된 80년 노동당 창건 제 6차 당 대회 때도 그랬었죠. 지금도 물론 외부에서 볼 때는 주민들이 전부 우상화 작업을 하는 것 같지만 그때에 비해서는 세기가 약해졌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 당시 주민들의 경제생활을 보면 주민들은 밥이라도 먹고 배를 곯지 않았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국가가 주민들에게 일체식량공급을 못해주고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되는 조건에서 주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기보다 우상화와 권력안정화 작업으로만 내몰고 있으니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일에 맞지 않게 인민공화국이라는 것은 빠지고 김정은의 공적에만 몰두하고 있는 부분이 인민을 위한 정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볼 수도 있죠.

7. 또한 실제로 북한 주민들은 9월 9일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요?

북한의 교과서에서 9월 9일을 뭐라고 주장하는가하면 남한이 먼저 두 개의 조선, 자신들의 국가를 수립했다고 그래서 북한도 어쩔 수없이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을 세웠다고 주장합니다.
주민들의 9·9절 개념은 그냥 오늘이 공화국 창건일이구나라고 느끼는 정도고 노동당창건일도 김일성·김정일의 생일에 비해선 중요하게 세지 않습니다. 사실 주민들 입장에서는 9·9절이나 노동당창건일이나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국가에서 공급이라도 하나 더 해주면 좋아하죠. 이건 늘 해마다 반복되는 행사고 또 공화국 창건일 기념일을 맞아 노동신문에서는 공화국의 역사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가지는 해라고 하거나, ‘김일성은 영원한 공화국의 시조이고 수령이시다’라고 말하는 선전뿐이잖아요.

제가 북한에 있을 때 노동신문과 지금의 노동신문은 차이가 없어요. 그러니까 주민들은 작년이나 올해나 공화국 창건에도 (그들에게는) 큰 변화가 없으니까, 늘 태어나서부터 공화국 창건일은 하루 쉬는 기념일로 인식이 돼있고 특별한 의미를 주는 부분은 없다고 봐야죠.

8. 그런데 이번 신문 내용을 살펴보면서 조금 낯선 느낌을 받은 부분이 있었는데요. 로씨야나 꾸바의 정권수립일 기념 축전을 1면에 소개한 것과 달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보낸 축전 내용을 노동신문 2면에 배치했습니다. 소위 혈맹이라는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이례적인데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은 등장이후에 남한을 먼저 방문했었죠. 시진핑 주석이 이 전통을 깬 첫 총서기이에요. 김정은 입장에서는 굉장히 기분 나쁜 부분이죠. 그리고 얼마 전에 있던 9월3일 열병식 행사에서도 김정은이 시진핑의 옆자리를 요구했는데 중국에서 안 준다고 하니까 열병식에 가지 않을 정도로 중국에게 서운한 것이 많이 쌓여있겠죠. 노동신문을 통해서도 그런 부분이 많이 보여 집니다. 실제로는 중국이 러시아보다 더 큰 우방국이에요. 그래서 노동신문에서 기분이 좋으면 아주 띄워주고 상황이 안 좋으면 뒷면에 실음으로써 우리는 중국을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 중국의 처사가 못마땅하다고 드러내는 거죠.

또 북한은 80년대 중국이 개혁개방을 했을 때도 사회주의노선을 져버렸다고 마구 비판을 했어요. 중국이라고 직접적으로 말을 하진 않았지만 일부 사회주의 나라들은 이라면서 중국이나 러시아를 간접적으로 비판했거든요. 그런 곳이기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를 어른처럼 생각하지 않고 마치 초등학교 아이들처럼 너 하나주면 나하나 줘야 되고 이런 부분들, 철없는 외교적인 관례를 벗어난 일들이 많죠. 그래서 시진핑이 나왔을 때만 해도 북한은 노동신문에 시진핑에 대한 많은 것을 실어줬는데 최근에는 노동신문에서 시진핑에 대한 발언을 안 하고 있어요. 그만큼 북중관계 사이가 벌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9. 또 주목할 부분이요. 정권 수립을 기념하는 중앙보고대회 주석단에 박영식 인민무력부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뢰도발과 포격도발에 책임을 지고 ‘경질됐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물론 총 책임은 인민무력부장이 지긴 하는데 이번 사건의 책임은 현지에 있는 군단장과 총참모장인 리영길이 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리영길 총참모장이 박영식 인민무력부장보다 더 우선순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인민무력부장 박영식이 이것 때문에 경질됐다고 하기 에는 섣부른 주장일수도 있어서 좀 더 지켜봐야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됩니다.

10. 그동안 북한은 정권 수립일에 한국을 비난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8·25 합의’ 이행과 민족 단합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했는데요. 9일자 신문에서도 “올해를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놓는 일대전환의 해로 빛내야 한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이런 주장,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지금 8·25합의문이 발표되고 바로 남한을 향해서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가 말았다가 하지만 9·9절에 특별히 이런 기사를 강조한데는 북한이 관계개선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신문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9·9절 공화국 창건일이라고 해서 자기네가 통일에 더 큰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보여주기 위한 의도도 깔려있어요. 북한은 항상 남한을 비판하는데 9·9일이라고 해서 특별히 남한에 비판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날만큼은 큰마음을 먹고 통일에 대한 기사를 실음으로써 이미지를 개선하고 북한이 그래도 통일할 의지가 있구나, 남한과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구나를 보여주기 위한 일환이 아닐까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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