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에는 아이들이 갖고 놀 인형이 없다”

▲ 북한이 대남 경제협력사업의 창구 일원화를 위해 재미교포 박경윤 회장(오른쪽 하단 김일성 왼편)의 도움을 받아 고려민족발전위원회를 설치했다. 김일성의 박 회장에 대한 신임이 두터웠다고 한다. ⓒ데일리NK

처음 북한을 방문할 때는 관광으로 갔다. 그래서 특별히 만나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선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혹시 사업과 관련해 사람들을 만날 경우를 대비해 평범한 넥타이와 스카프, 양말과 장갑을 몇 켤레를 준비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두 번째 방문 때는 주로 사업과 관련해 당국자들과 면담을 해야 할 경우를 염두에 두고 스카프, 가죽장갑, 양말, 점퍼, 와이셔츠, 넥타이, 시계, 만년필, 돋보기안경 등을 두루두루 챙겨갔다. 이산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를 만날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누구에게나 줄 수 있는 선물을 준비했다.

문제는 선물을 줘도 다음에 다시 만나보면 선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눈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이 알아차릴 수 없는 선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사용하는 생활 필수품이나 속옷 등은 남의 눈에 쉽게 뛰지 않았다. 소화제, 모기약, 그리고 속옷 종류와 양말까지 수십 가지의 선물들을 보따리, 보따리로 힘들게 가져가서 주는 재미가 컸다. 남에게 준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이때 알았다.

선물 중에는 미국산도 있지만 생활 필수품과 속옷은 대부분 한국제품이었다. 한국산이라 표기된 상표가 문제였다. 처음 별 생각 없이 가져갔을 때는 평양 순안공항에서 미국제품이나 중국제품을 제외하고 한국산은 전부 압수당했다. 이후에는 요령이 생겨 상표를 자르거나 바꾸는 방식으로 들여갔다.

언젠가 어떤 높은 분이 요다음 올 때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을 좀 사오라고 했다. 아예 주문을 받았다. 강아지, 토끼, 곰 인형을 갖고 싶어했다.

북한에는 봉제완구 공장이 없었다

봉제완구 인형을 몇 가지 선물했더니 “우리 공화국에는 이거 만드는 공장이 없어서….이런 공장 하나만 있어도 아이들이 참으로 좋아할텐데”라며 한 고위 관리가 여운을 남겼다. 알고보니 북한에 단 하나의 봉제완구 공장도 없단다.

북한 당국이 세상에서 제일 잘 돼있다고 외국인에게는 반드시 구경을 시켜주는 창광유치원에 갔을 때도 아이들은 똑 같이 나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집 짓기, 상자 맞추기, 성 쌓기나 자동차, 손수레, 자전거 등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천 종류로 만든 봉제완구는 전혀 없었다.

당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지금 한국은 노동자들의 데모로 온갖 경공업들이 동남아로 가고 있는데 봉제완구라고 그냥 잘될 리가 없겠다” 싶었다. 알아보니 100% 손으로만 해야 하는 일이 바로 이 봉제완구 사업이었다. 한국에서도 참으로 힘들어 하는 업계였다.

1994년 하반기부터 국내 봉제완구업계가 수출가격 경쟁에서 밀려 하나 둘씩 해외로 떠나기 시작했다. 세계시장을 석권하던 한국의 고급기술이 싸구려가 돼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지로 공장을 다투어 옮겨갔다. 당시 필자는 이 업종을 북한에 진출시킬 것을 결심하고, 상대 업주를 서울에서 찾기 시작했다.

평양에 완구공장 짓기로 결정

세계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해온 봉제완구회사 “D” 산업은 년간 4,000만 달러 대미수출을 했으나 증가하는 인건비로 부도위기에 처해 있었다. 빚더미의 ‘D’산업을 인수한 신호상사의 이순국 회장을 벽산그룹 회장실 우영실 비서실장의 소개로 만나게 됐다. 이 자리에서 봉제완구의 북한 진출에 대한 실정을 소상히 이야기하고 의향을 물었다. 며칠 후 평양진출 결심을 했다는 연락을 받고 지난 날 실패했던 일들을 잊은 채 미친듯이 또 뛰기 시작했다.

아예 신호 사내에 대북 사업팀을 만들어 기술상무(김성구)를 책임자로 정했다. 이 회장은 나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해주었다. 여기에서 벽산그룹 회장의 우영주 비서실장을 알게 된 동기를 남기고 싶다. 벽산그룹은 건설 자재 중에서도 슬레트 생산만큼은 한국의 선두주자였다. 이 슬레트 생산 공장을 북한에 진출 해보려고 홍콩의 어느 회사를 통해 비밀리에 장기간 북한의 광명성총회사와 교섭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때마침 필자가 평양에 체류하고 있었는데 이 사업이 “광명성총회사”와 연결되어 사업이 추진되고 있었다. 필자도 당시 광명성총회사와 사업을 같이 하던 때라 벽산의 회장 이하 관련 사장단과 실무자 그리고 비서실장에 대한 북측의 초청장을 벽산에 직접 전달해 주었다.

앞으로 벽산과의 사업추진은 필자에게 위임할테니 사업 분석을 잘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서울에서 벽산그룹 회장 비서실장에게 직접 초청장을 전해 준 것이 인연이 되었다. 그 후 몇 가지 사업을 추진(농기계부속품)하였으나 원자재 공급, 단가조정, 기술자의 평양상주 등 기본적인 사업계획의 협상 결렬과 벽산측의 지나친 경계의식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다.

어느 날 “월간 중앙” 대북 담당 허의도 기자(현 월간중앙 편집장)의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나를 잘 찾아 연결이 되었다고 아주 기뻐하는 음성으로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당시에는 나를 찾는 신문방송 기자들이 참 많았다.

이리저리 피하다가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조건부 인터뷰를 약속하고 만났다. 조건은 다름 아닌 “재벌들의 대북경협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행동과 책임 없는 약속”에 대한 폭로 기사도 함께 기사화 해준다는 조건부였다. 폭로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만났다.

대북사업은 북한인민에게 바깥 세상 알리는 기회

“인물연구․대북 PK라인의 핵심 金燦球(김찬구)” 라는 제목의 허의도 기사는 대북 관련 나의 기사를 꾸밈없이 소상히 소개했고, 이 기사가 국내에 많이 알려지게 되어 북한 진출에 관심 있는 분들의 자문 요청에 쓸데없는 시간을 많이 소모하기도 했다.

나는 대북관계의 어떤 일이든 이 일이 “북한인민에게 즉 동족에게 바깥세상의 변화들을 간접적으로 알리는 기회라 생각하고, 또 기술도 가르쳐 외화도 벌게 하고, 그럼으로 해서 좀 잘 살 수 있는 것도 알게 하고, 동족애도 느끼게 하고,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면 남북이 화해의 필요성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이익을 먼저 계산하지 않고 희생이 따르지만 또 다른 큰 의미라는 나 나름대로의 보람이라고 여겨왔다.

그래서 나는 외화벌이를 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기술이라도 있으면 그 기술을 내가 직접 배워 가르쳐 주기 위해, 돈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닌, 우리가 하나 되고 이 땅이 하나 될 수 있도록 하는데 아주 보잘것없는 밑거름일지라도 그 역할을 내가 하기 위해 평양으로 서울로 신들린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삼천리총회사와 봉제완구 견본시작

1990년도에 북한은 대남 경제협력사업의 창구 일원화를 위해 “고려민족발전위원회(속칭 ‘고민발’. 민경련의 전신)를 만들어 중국 베이징 무역센터에 사무실을 열었다. 재미교포 박경윤 금강산 국제그룹회장의 경제적 뒷받침을 받은 것이었다. 중국 북경 무역센터내의 ‘국무(國貿)호텔’에 큰 사무실을 열어놓고 남쪽의 재벌들과 북한진출 희망업자들을 가만히 앉아서 큰소리치며 상담을 진행하던 시절이다.

평양에서 파견된 인물은 박종근이었다. 그는 남쪽에서도 김정일위원장의 김일성종합대학 동기로 잘 알려져 있었다. 한동안 ‘고민발’과 남쪽의 많은 사람들이 거래를 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현금만 많이 쏟았다는 후문이 나돌아 박경윤 회장의 명예까지 훼손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박경윤 회장은 박종근에게 대남 사업에 대한 올바른 자세에 대해 충고해줬다. 그러나 돈맛을 안 박종근은 번번이 말을 듣지 않았다. 여기에 경쟁을 부추기는 남쪽 사람들도 문제가 많았다.

이후 명칭을 더럽힌다 하여 “광명성경제련합회”라는 명칭으로 대체하여 대남 사업을 했다. 이 광명성경제련합회 산하 회사인 광명성총회사와 대등한 자격으로 대남사업을 할 수 있는 삼천리총회사가 하나 더 있었는데 경공업부문은 이 회사가 주로 취급한다.

신호와 의논한 끝에 아주 쉬운 모델 견본 3,000개를 재단해서 보냈다. 바느질만 하면 될 수 있도록 제조방법과 기타 내용을 기재한 설명서를 동봉했다.(계속)

김찬구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LA 동국로얄 한의과대학졸업, 미국침구한의사, 중국 국제침구의사.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졸업-북한학 석사. -세계화랑검도 총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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