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북(恐北) 의식을 버리자

“(북한)인권도 중요하고 (대북관계에서) 국민의 자존심도 중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최우선을 두고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관리해 나가는 것”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8 ∙ 15 경축사를 들으며 뿌리 깊은 공북(恐北 ; 북한을 두려워하는) 의식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햇볕정책은 정형화된 이론 체계가 아니지만, 청와대와 정책 담당자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대체로 두 가지 대북 인식을 기둥으로 하고 있다.

하나는, 남한이 경제력, 군사력, 국제적 지위 등에서 북한을 압도하는 ‘맏형’으로서 너그럽게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일종의 자신감이다.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처럼 한없이 베풀고 감싸 안아주다 보면 지도부가 감동하던지 내부가 요동치던지 무언가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기다림의 철학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은 함부로 대했다가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집단이라는 일종의 불안감이다. 외부로부터의 컨트롤이 잘 되지 않는 집단이기 때문에, 깨질라 터질라 계란 다루듯 매만져야 한다는 조심스러움의 철학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초기 햇볕정책에는 대북 자신감의 기둥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살펴보면, 대북 불안감의 기둥이 보다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우선, 참여정부의 브레인을 형성하고 있는 386 참모들의 잘못된 대북인식을 꼽을 수 있다. 북한은 자존심이 센 나라이기 때문에 건드리면 정말로 터질 줄 모른다는 북한의 주체성에 대한 과도한 인식, 흔들리는 것 같이 보여도 북한 정권과 주민은 유기적으로 잘 결합되어 있다는 북한의 체제 통합에 대한 과도한 인식, 그리고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한 과도한 무지 때문이다.

이처럼 굴절된 대북 인식은 그들의 오래된 반미 의식과 결합하더니 이윽고 9.11테러 이후 변화하는 세계 질서와 맞물리면서 기묘한 스펙트럼을 낳고 있다. 반미 의식은 정권을 잡고난 후 “이제 우리가 주도하여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옮겨졌다가, 미국의 대테러전쟁을 보면서 “미국은 뭔 짓을 할지 모르는 나라”는 별종의 공미(恐美) 의식으로 변질돼 뒤섞였다. 대북 자신감과 불안감, 친북, 공북, 반미, 공미가 뒤죽박죽돼 난마처럼 얽힌 것이다.

참여정부의 그간 대북정책, 노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경축사, 전시 작전통제권을 둘러싼 논란 등은 이러한 야누스적 사고관을 각각 다른 색깔로 혼란스럽게 내비치고 있다.

북한을 ‘혁명적’ 관점에서 대해야

한편, 북한을 기다리면서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는 햇볕정책의 기저에는 오용된 안보주의와 대북 보수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북한 내부의 주민이 고통을 받든 말든, 혹은 고통을 받는 것이 좀 안타깝기는 하지만, 일단 중요한 것은 평화와 안정이라는 관점이며 급격한 변화를 싫어하는 자세이다. 우리라도 잘 먹고 평온해야지 같이 어렵고 혼란스러워서야 되겠냐는 이기심마저 섞여있다.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표현에는 이러한 이기주의가 여과 없이 채색되어 있다. “감당 못할 북한, 괜히 건들었다가 당신들이 책임질 거냐”고 호통치며 “우리는 지켜보며 ‘관리’만 하겠다”는 일종의 북한 포기 선언과 다를 바가 없다. 실제로 노 대통령의 ‘정치적 친위대장’으로 불리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원시절 “(북한이 붕괴될 경우) 하루는 즐겁겠지만 다음날부터 불행의 시작이 될 것”이라며 급격한 북한 변화에 반대한 바 있다.

북한의 전쟁 도발을 두려워하는 것만이 공북이 아니다. 북한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또한 반사적 공북이며, 이것이 오늘날 심각한 정책상 오류를 낳고 있다.

현실적 손익 계산에 몰두하는 정치인들에게 “북한 인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주문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수중다이빙을 부탁하는 것만큼 어려운 제안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살펴보면 아래로부터든 위로부터든 ‘혁명적인 방법’ 이외에는 그곳의 현실을 개선시킬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재삼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적극 나서는 것만이 인민의 고통을 더는 실질적 길이다.

반대로 김정일 체제 하에서 북한을 합리적인 사회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접근이 스스로의 주관적 의지와는 관계없이 오히려 북한인민을 더욱 더 큰 고통속으로 밀어넣는 반인륜적인 정책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가 최소한 북한 내부에서 직접 민주화 활동을 할 수 없다하더라도 외부에서 이를 지원하는 활동은 매우 소중하다. 이것이 과거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고 하는 사람들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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