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대상] <진보의 그늘>을 읽고…

<진보의 그늘>을 읽고…


김기섭


지난 오월의 어느 토요일.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 녀석과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보수와 진보란 과연 무엇인가?”란 뜻하지 않은 ‘이념토론’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저녁식사 후 가족들이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TV뉴스를 보는데 4.11 총선에서 원내 3당으로 도약한 <통합진보당>이 선거 초반 관악을 선거구의 야권연대 여론조사 왜곡시도 논란으로 촉발된 부정시비가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배후세력 논란으로 이어지고 이석기, 김재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의 종북주사파 사태로까지 번지면서 진보정당의 위기를 다룬 기사였는데 화면말미에 보수단체에서 항의시위를 하는 모습이 보이자 아들 녀석이 불쑥 한마디 하더군요.


“맨날 빨갱이 타령하는 수구꼴통들!”


아직 한참 어리게만 생각했던 아들녀석이 이렇게 우리 정치현실과 이념의 현주소에 대하여 거친 말까지 써가며 부정적이고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자못 당혹스러웠습니다.


“너는 저게 무고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빨갱이로 누명을 씌우는 걸로 보이니?”


“우리나라에 진짜 보수가 어디 있어요. 친일파 후손들 수구세력들 아니에요. 뭐, 요즘 보니 진보도 진상들이지만.”


“그래? 그럼 네가 생각하는 올바른 진보와 보수는 뭐니?”


“진보는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고 보수는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것 아니에요?”


진보는 국민우선, 보수는 국가우선이라?… 거침없이 대답하는 아들녀석의 말이 올바른 이념적 정의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나름 수긍이 가는 대답이더군요. 그런데 아들 녀석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가 생각하는 진보와 보수는 뭔데요?”


“글쎄. 나라와 국민을 따로 떨어트려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보수와 진보의 정의(definition)는 바로 정의(justice)를 실현하는 방법론의 차이일 뿐 사람과 세상을 위한다는 궁극의 목표에서는 차이가 없는 것이겠지.”


아들녀석의 물음에 대충 두리 뭉실하게 대답은 했지만 기실 저조차도 진보와 보수에 대한 명확한 개념파악과 인식조차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은근히 부끄러웠습니다.


오늘날. 종북 주사파임이 명백한 사람들이 국민의 대표가 되어 국회에 입성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국민 대부분이 그들을 솎아낼 만큼의 보수와 진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빚어낸 참담한 결과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들녀석의 생각처럼 보수가 보수답지 못하고 진보가 진보답지 못하니 수구꼴통이니 종북좌파니 식으로 이 땅에 정치이념들이 도매금으로 함께 욕을 먹고 있는 우리의 정치현실이 안타깝지만 정치만 탓하기에는 그런 잘못된 정치를 방관하고 수인해온 국민들의 잘못도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종북좌파 논란으로 야기된 진보진영의 위기는 보수진영에도 기회가 아닌 위기란 생각이 듭니다. 훌륭한 라이벌이 나를 키우는 최고의 스승이라는 말처럼 진보와 보수는 서로를 긍정적으로 자극하고 발전시키는 촉매적 상승작용을 할 때 그 나라의 정치와 이념이 균형감을 가지고 건강하게 뿌리내리고 안정적인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진보의 위기는 보수에게도 위기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의 불행한 그늘로 다가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진보와 보수… 그리고 이러한 이념적 틀 안에서 암세포처럼 불순하게 자라난 종북좌파. 단지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제대로 생각해볼 겨를조차 없었던 것은 저만의 구차한 변명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이제 마냥 무관심하고 외면할 수는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저주하는 종북좌파가 국회에까지 진출했으니 국가적 위기상황이라 단정 지어도 과한 말은 아닐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아들이 거리낌 없이 내뱉은 <수구꼴통> 발언은 그저 철 없는 아이의 말 정도로 치부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지나치리만큼 반공을 교육에 최우선으로 삼았던 우리 어린 시절에도 종북좌파의 싹은 자라났는데 제대로 된 이념교육조차 없는 요즘의 교육현장에서 입시준비에만 여념이 없느라 사상적으로 더 무방비 상태의 우리 아이들은 종북좌파의 사탕발림에 놀아나기 쉽겠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청소년의 상당수가 6.25전쟁 그리고 북한체제의 모순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최근 일부 종북인사들의 잘못된 국가관과 안보관으로 인해 국가정체성이 도전을 받고 있어 청소년들은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의 청소년들 가운데는 근/현대사를 왜곡한 좌편향 교과서에 의한 교육을 받고 있는 경우도 있다니 더더욱 우려스럽습니다.


지난해 논란이 되었던 좌편향 교과서는 근대화와 민주화를 연이어 이룩한 우리의 자랑스런 근현대사를 외면한 채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강변하고, 남로당에 의한 폭동을 민중봉기로 미화하는가 하면, 최소 3백만 명 이상을 굶겨 죽인 북한 김정일 집단의 인권말살과 핵개발, 식량난 등을 대한민국과 미국 탓으로 전가 시켰다니 기막힌 노릇입니다. 이런 교과서로 배우는 아이들이 자라나서 나중에 국가에 대한 어떤 사관(史觀)을 가질지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을 지경입니다. 이 모두가 친북, 종북세력들이 뿌려놓은 씨앗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는 걸 알아야합니다.


불과 수 십 명의 공산당원으로 시작된 소련의 공산화작업이 한순간에 거대한 대륙국가 러시아를 하루아침에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어 버렸다는 역사적 교훈을 허투로 들을 일이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 내에 기생하고 있는 종북세력을 뿌리 뽑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구(舊) 소련처럼 공산주의 체제로 더 심하게는 북한처럼 공산주의의 허울 속에 인권이 완전히 말살당하는 공포적 전제주의체제로 탈바꿈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걱정 속에서 아직 가치체계가 완숙되지 못한 우리 아들녀석이 이 땅에 진보와 보수에 대한 바른 변별력과 보다 긍정적 국가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과연 이 땅에 진보가 왜 이토록 변질되고 왜곡되었는지 저조차도 너무 궁금했기에 그에 대한 답으로 찾게 된 책이 바로 <진보의 그늘>입니다.


아들녀석과의 진보와 보수에 대한 짧은 토론이 있은 후 정말 오랜만에 서점나들이를 위하여 광화문까지 나가게 되었습니다. 내년이면 고3이 되는 아들녀석에게는 올 해가 그나마 편한 마음으로 여유 있게 책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인 것 같아서 한참 달게 낮잠을 자거나 거실 소파에 누워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릴 여유로운 토요일 오후에 아들녀석을 앞세우고 모처럼의 서점나들이를 했습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책과는 담쌓고 인터넷게임에만 매달린다고들 걱정이지만 그래도 서점에는 많은 젊은 친구들이 서점 안 코너마다 몇 명씩 옹기종기 열심히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거나 읽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좋아 보였습니다.


아들녀석이 필요하다는 몇 가지의 참고서를 먼저 고르게 한 후 처음 서점나들이를 나설 때부터 아이에게 “진보의 그늘”을 사 줄 요량이었기에 저는 그 책이 있는 코너를 찾았습니다.


“진보의 그늘? 오호! 이석기, 김재연! 이 책 저 사주실려구요?”


읽기 싫다 하면 어쩌나 했는데 이석기와 김재연 두 사람의 모습이 있는 빨간 띠로 둘러진 책을 든 아들녀석이 호기심을 보이더군요. 연일 뉴스마다 단골로 나오는 이석기, 김재연 이라는 뜬금없는 인물들이 아들에게도 무척 궁금했었나 봅니다.


“진보와 보수를 싸잡아 무조건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단정할게 아니라 과연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고서 비판을 하던 비난을 하던 하는 것이 옳지 않겠니. 이 책이 그런 판단력을 갖추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저의 뜻을 알았는지 아들녀석은 알듯 모를 듯 미소를 지우며 책을 받아들더군요.


애초에 아들녀석을 위해서 “진보의 그늘”을 사리라 작정했었지만, 그동안 매스컴과 인터넷검색을 통하여 어렴풋이 알게 된 “진보의 그늘”을 찬찬히 읽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저도 기분이 좋더군요.


책들을 안고서 무겁다며 투덜대며 따라오는 아들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차장까지 걷는 제 걸음이 가볍게 느껴질 만큼 그것은 흥겨운 설레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아들을 위하여 산책이니 그 책을 읽는 1순위는 당연히 아들의 몫이겠지요.


저를 닮아 그런지, 녀석도 한 번 마음에 드는 책을 잡으면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보는 스타일이라 책을 펼친 지 사흘이 채 못 되어 책을 다 읽었다고 하더군요.


제가 가끔씩 방문을 열어보면 녀석은 책상에 앉아 형광펜으로 줄까지 그어가며 흡사 시험공부 하듯이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글쎄?.., 독서는 공부와는 달라서 편하게 가끔은 방바닥에 배도 깔고 드러 누어 읽기도해야 제 맛 일텐데 저렇게 공부하듯 보면 질리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아들녀석의 학습형 독서습관을 제가 뭐랄 수는 없겠지요.


아무튼 줄까지 쳐가면서 정독을 해서 책을 읽은 아들녀석에게 책을 읽은 느낌은 어떤지 물어봤습니다.


“그래… 다 읽었으면 책값으로 읽은 소감을 얘기해줘야지. 어떻든?”


“우리나라의 진보와 북한과의 끈끈한 관계에 대하여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근데 솔직히 눈으로는 다 읽었는데 아직 머릿속은… 그냥 초벌구이 삼아 읽은 거에요. 짬짬이 다시 읽고 말씀드릴께요.”


초벌구이?… 무슨 도자기를 굽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는데도 여러 차례 거듭 읽어야겠다는 아들녀석의 대답이 재미있더군요. 유약을 다시 발라가며 가마에서 몇 번을 정성스럽게 구워 고려청자를 만들듯 책을 오롯이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겠다는 아들녀석의 말이 제법 기특하게 들렸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고려청자를 만든다면 애비는 질박한 항아리라도 만들어야 되겠기에 아들녀석이 한 번 더 책을 읽은 후에 베란다의 빨래 좀 걷어달라는 아내의 잔소리도 용감하게 못 들은 척 꿋꿋하게 저도 읽었지요.


밝은 곳에 있다가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면 잠시 동안 맹인처럼 앞에 하나도 보이지 않는 암흑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통하여 이제야 어렴풋이라도 종북좌파의 어두운 실체들이 국민들의 눈에도 보여 지기 시작했지만 자유민주체제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종북의 그늘이 덧씌어진 진보의 문제점들을 그동안 제대로 알기에는 진보의 그늘이 너무도 어둡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이른바 ‘486 NL 출신 운동가”로 진보 진영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북한 인권 운동에 투신한 분이시기에 누구보다도 종북의 어두운 그늘을 밝히는데 적임인 길잡이와도 같은 분이십니다. 단순한 관찰자 그 이상의 깊은 통찰과 경험에서 비롯된 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정성을 책의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지하당 출신 가운데 자신의 이념과 국가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투명하게 밝히지 않고 공직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우리 정치가 종북의 강력한 파장 아래로 들어가고 있는 이상 ‘종북’의 정점에 있었던 지하혁명 조직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진보의 그늘> 출간 동기로 2011년 작년에 발생한 왕재산 간첩단 사건과 통합진보당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들고 있습니다. 북한의 대남 지하당에 연관되어 사법적 심판을 받았던 사람들이 공당에 들어가서도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과 같은 명백한 북한의 도발행위에 대해서도 북한의 주장과 논리만을 옹호한다면 국민들은 국가 정체성 문제에 심각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정당한 이의제기조차 색깔론으로 뭉개버리려는 종북세력들의 실체를 알기위해서는 그들의 종북 나이테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확장되어 왔는지 살펴보아야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은 크게 1부 1990 ~ 2000년대 NL 계열 지하당 운동의 역사와 특징 (민혁당 사건, 중부지역당 사건, 구국전위 사건, 일심회 사건)과 2부 1960 ~ 1970년대 좌익 지하당 운동의 특징 (통혁당 사건, 인혁당 사건, 남민전 사건) 그리고 부록 – 북한의 지하당 조직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의 내용을 살을 빼고 뼈대만 간략하게 추리자면, <진보의 그늘> 1부에서는 1990년대 이후 신(新) 좌익이 중심이 되어 결성되었던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중부지역당>, <구국전위>, <일심회> 등 지하혁명조직을 다루었습니다. 이들 사건은 1980년대 대학가에 NL계열에서 활동하면서 북한 주체사상의 영향을 받고 성장한 인물들이 주도한 것으로 80년대 학번인 저에게도 직간접적으로 이해가 되는 부문이었습니다. 민주화시위가 한창인 시절에 저도 대학교를 다니면서 당연히 시위에도 참여했었지만 지금 기억으로도 NL계열의 독선과 위선은 그 시절에도 어렴풋이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상당한 이상 징후들을 많은 학우들이 느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이 NL계 조직들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북한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활동하다 우리 대공수사기관에 포착되어 사건화됩니다.


1990년대 들어 발생한 구국전위와 민혁당 사건을 통해 1980년대 자생 주사파들이 북한과 연계해 활동해가는 과정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강철서신의 김영환이 밀 입북해 김일성을 만나고 북한을 직접 보고나서야 역설적으로 사상적 전환을 하게 된 과정과 하영옥, 이석기 등이 이러한 김영환의 해체 선언을 따르지 않고 당을 재건하기 위해 활동한 사실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남파간첩이 직접 포섭해 조직한 중부지역당 사건은 지하당 중 최대 규모라 할 수 있는데 북에서 내려온 이선실은 민중당과 여러 루트의 관계를 맺고 있던 김낙중, 손병선, 황인오를 포섭해 이들을 중심으로 3개의 간첩망을 운영하면서 400여 명의 조직원을 모아 중부지역당을 결성합니다. 발각 직전 북한으로 도주한 사건의 핵심인물인 북한노동당의 거물급 인사인 이선실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이 특히 흥미롭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는 시기에 대규모의 아사 사태가 발생하고 탈북자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처참한 삶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보면서 김일성, 김정일 북한체제에 충성을 맹세하며 적화혁명을 꿈꾸던 일심회 조직원들의 동요와 이탈도 드러나지만 일심회 사건은 1980년대 주사파들이 2000년대 들어서도 북한에 대한 미망을 접지 못하고 여전히 남한 혁명의 환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과거 1980년 이전 지하혁명당이 일정 부분 북한과의 연결고리를 가졌던 것과 달리 이들 NL계 조직들은 독자적이고 자생적으로 출발한 것이라 말합니다. 익히 잘 알려진 대로 주사파의 시작은 강철서신으로 그야말로 운동권의 신화적 존재였던 김영환입니다. 그는 1985년부터 북한의 ‘구국의 소리’ 방송과 주체사상 비판 서적을 통해 주체사상을 독학했고, 이어 주위 운동권들에게 전파했던 주사파 1호였던 셈입니다.


그전까지 고답적으로 맑스 레닌주의 원전에 의지해서 단절적이고 소규모 조직 형태에 머물렀던 운동 방식에서 ‘한국사회의 미제식민지론’과 ‘운동가의 품성론’ 등을 주창하며 학생운동 전반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지하혁명조직 형성에까지 지대한 역할을 수행한 것을 저자는 알기 쉽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NL운동이 학생운동 전반에 메인스트림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이유를 1979년 <남민전> 사건 이후 10여 년간 지하당 활동이 공백상태였던 이유 등을 저자의 경험적 관찰에서 비롯된 해박한 지식과 논리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진보의 그늘> 2부는 일제시대나 해방 공간에서 활동했던 구(舊) 좌익이 주도한 1960년 4·19 이후 1970년대 말까지의 <통일혁명당(통혁당)>, <인민혁명당(인혁당) 및 인혁당재건위>,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준비위> 등을 다루고 있어 저에게도 생소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통일혁멱당(통혁당) 사건은 김종태 등 구(舊) 좌익인사들이 북한과 연계를 맺어 활동하는 과정, 검거와 재판 과정 그리고 통혁당의 2인자였던 김질락의 사형까지 사건의 개요를 담으며 1960년대 북한을 동경하고 추종했던 이 땅의 진보엘리트들의 회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민혁명당(인혁당) 및 재건위원회 사건은 얼마 전에 법원에서 가혹행위 등으로 인해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인혁당 관련 재심에서 관련자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려 자칫 조작된 용공사건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조직이 실재하였음을 증언하는 원로 인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수사기관의 무리한 강압수사와 처벌의 부당성은 있었지만 조직이 실존했음을 재건 조직의 성격과 규모 등으로 부분적으로라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은 남한민족민주전선(남민전) 사건입니다. 창당부터 중앙위원 체포 시기까지 긴박한 이야기 전개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남민전은 북한에 직접 연결을 시도하며 공작금까지 요구했지만 실제 활동은 독자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남민전 중앙위 위원들은 남로당부터 이어지는 구 좌익의 마지막 세대들과 1970년대 운동가들이 폭넓게 망라되어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들 가운데 현재에도 우리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오늘의 모습이 정치적 진화 또는 정치적 변신 또는 정치적 위장인지는 앞으로도 살펴볼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러시아 혁명 이후 사회주의 혁명을 이룩하는 데 있어서 계급정당의 건설은 혁명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이자 필요충분조건으로 여겨졌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남한에서 <남로당>의 수뇌였던 박헌영, 이승엽 등이 북한에서 미제의 스파이로 몰려서 처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정권과의 연계를 추진하는 데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이 요즘말로 하자면 ‘글로벌’한 국제주의적 성격을 표방했기 때문에 먼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북한 김일성정권을 연대의 대상이나 사회주의 혁명의 우군이라 당연시하고 남한 내에 지하혁명당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북한추종의 성향을 보인 것이 1960~70년대에 이르는 남한 내 좌익 지하당 운동의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부록으로는 ‘북한의 지하당 조직론’을 참고로 실었는데 독자들의 이해의 편의를 돕기 위해 사건 관련 밀입국 경로 및 수 십장의 현장 사진 등과 사건 관련 조직체계도 및 도표 등을 다수 수록하여 보다 객관적인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책의 전반에 걸쳐 사실관계에 바탕을 둔 객관적 서술을 통해 진정성 있게 서술한 작가의 노고가 크게 느껴졌고 공식적으로 남아있는 수사기록과 판결문, 그리고 해당 사건 관련자들의 다양한 진술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주장이 아닌 진실 그 자체를 전달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가 책을 읽는 내내 느껴졌습니다.


책에 대한 어줍잖은 서평은 이 정도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미력한 식견의 제가 저자의 심혈을 기울인 역작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길게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진보의 그늘>을 통해 제가 내심 얻고자 했던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책에 대한 감상문으로서 보다 적절하리라 생각하니까요.


“어? 아빠도 읽으셨네요. 어땠어요?”


“뭐가 어때?”


“책을 읽은 소감이요.”


“마!~ 너는 줄까지 처가면서 읽고도 잘 모르겠다며 다시 읽고서는. 네가 먼저 말해야지.”


“히히히. 줄치면서 책 읽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요. 처음에는 낯선 말들도 많아 조금 읽기가 어려웠는데 부록이 있어 줄 쳐 놓은 것을 찾아서 볼 수 있어 두 번 읽을 때에는 내용을 어느 만큼은 이해할 수 있겠더라구요.”


아닌게 아니라 아직 어린 아이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는 담론을 다룬 책이지만, 사건별로 목차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부록으로 자료보강이 충실하게 되어있어 읽고자하는 열의만 있다면 고등학생 정도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종북좌파에 대하여 걱정을 하고 그들을 경계하는지는 이제 알겠니?”


“네. 그렇게까지 뿌리 깊게 진보 속에 북한과 연결되어 있으리라곤 생각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심각성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심각성을 알았는데?”


“진보정치 속에 숨은 종북세력들은 결국 북한의 적화통일을 위해 종노릇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북한체제가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보다 우월한 체제라면 도덕적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 그 막장 북한정권을 동경하고 충실하게 종노릇을 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래? 책을 허투루 읽지는 않았구나. 그런데 아직도 보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니?”


“보수는 좀 늙고 고리타분하고 진보는 뭔가 새로운 그런 느낌이잖아요. 막연하지만…”


“그렇게 보수와 진보를 피상적이고 단선적으로 그리고 대립되게만 생각해서는 안돼. 어차피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거로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진 시간적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해 왔고 달리 말하면 그것이 곧 발전이고 진화인 셈이지. 그런데 보수와 진보는 쉽게 말하자면 보수는 지킬 것은 지켜가면서 서서히 변화해가자는 것이고 진보는 지키는 것보다는 변화를 더 중시하는 세상을 사는 방법론의 차이 일뿐 세상의 발전이라고 하는 목표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이지. 따지고 보면 속도의 완급의 차이 일뿐 둘 다 상반되고 대립적 개념이 아니라 서로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인데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종북사상이 진보를 대표하고 자처하는 바람에 이념적 질서에 혼란이 온 것이지. 이런 이유에서 누가 보수적 이념을 가지고 있건 진보적 이념을 가지고 있건 전혀 비난받을 이유가 없지만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 체제에 반대하고 심지어는 국가전복까지 꾀하는 종북주사파라는 일그러진 사이비이념을 추종한다면 그것은 비난받고 제재 받아 마땅한 것이지.”


“그런데 우리나라 진보가 그런 종북주사파에 의해 많이 오염이 되어서 문제라는 것이겠군요.”


“그렇지. 종북주사파의 오물들을 털어내고 온전한 진보의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국민들이 바로 보고 바로 지적해야 하는 거야. 국민들이 깨어있어야 진보도 보수도 바로 설 수 있는 것이겠지.”


제가 <진보의 그늘>을 통해 아들녀석에게 깨우쳐주고 싶었던 것들을 녀석도 어느 만큼은 알게 된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부터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되어서 아이들에게 영어 단어 하나, 수학 공식 하나라도 더 가르치는 것에만 급급했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진보와 보수에 대한 균형 있는 교육 같은 것에는 무관심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가치관의 정립과 사고의 틀이 형성되는 청소년들에게 진보와 보수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정립시켜주어야만 자칫 그들이 종북주사파와 같은 얼토당토않은 사이비 주술에 빠져들어 인생을 허비하는 불행을 겪지 않도록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은 저를 포함한 모든 부모들의 공통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가 지금의 내가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어떤 과정과 희생에 바탕위에 서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행복과 평화를 지켜가기 위해서 건전한 가치체계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은 영어 단어 하나, 수학 공식 하나보다도 더 값진 가르침임에 틀림없습니다.


<진보의 그늘>… 자칫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진보의 불행은 보수의 행복이라는 식의 적대적 접근이 아니라 대한민국 오천만 국민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이 땅의 행복공동체를 위하여 잘못된 진보의 과오를 바로잡고 진보가 진보다운 모습으로 바로 서서 보수와 함께 대한민국이라는 희망의 파랑새의 건강하고 튼실한 좌우의 날개로 힘차게 세계와 미래로 날아오르게 하는 희망을 <진보의 그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로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대한민국 진보에 오랫동안 드리워져있던 암울하고 음습한 종북의 짙은 그늘이 반드시 걷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큰 희망과 책 한 권을 놓고 아들과 의미 있는 교감의 시간을 선사해 주신 한기홍 대표님께 감사드리며 끝까지 어설픈 저의 글을 읽어 주시느라 고단하셨을 독후감 담당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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