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조업 위해 모스크바로 날다

▲ 김찬구씨가 북한과 계약을 맺고 김책시 인근 바닷가에서 생산한 골뱅이

나의 고향은 역사와 교육의 도시 경남 진주다. 진주사범학교를 나와 1961년도에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어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최초의 원양어업회사인 제동산업주식회사에 입사했다. 남태평양 사모아 기지 참치어장에서 항해사와 선장으로 바다와 함께 살아왔다. 바다와 맺은 인연이 결국 대북사업에 나서게 된 근본적인 배경이 됐다.

미-소 강대국이 200마일 해상 경제수역을 선포하면서 약소국가들은 어장 수역이 줄어들었다. 한국원양어업계도 점점 어려워가고 있었다. 그만큼 나의 꿈을 펼치기엔 힘이 들었다. 이 어려움을 피해 나는 ‘76년 10월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 수산업의 꿈을 키워보겠다는 결심으로 몇 년을 온갖 잡일을 하면서 기회를 보다가 승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동부 뉴저지를 기지로 한 동해안 가리비(밥조개)어선, 텍사스 휴스턴을 기지로 남해안 새우어선 선장, 서해안 샌프란시스코를 기지로 한 은대구어선 선장으로 2년, 그리고 서북부 시애틀을 기지로 한 북태평양의 알라스카 베링의 험악한 바다에서 한-미 공동어업 명태잡이 어선 2년 동안 선장생활을 했다.

구 소련의 캄차카 연안어업에 진출하고자 모스크바 수산공사와 교섭하던 중 어렵게 방문초청을 받게 됐다. 88년 10월 서울 올림픽이 끝나면서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당시 구 소련과 미국과의 어업협정에는 캄차카 어장에서 생산되는 게(Alaska King-Crab)에 대한 협정만 있었고 다른 업종에 대해서는 전혀 없었다. 특히 한국과 구소련과는 외교관계가 없었고 미국과도 불편한 관계로 미국인의 구 소련여행도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한국의 원양어업계가 어장관계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즈음에 새로운 어장 학보를 위해 구소련과 교섭에 나섰다. 모스크바 수산공사의 초청을 받아 정말 신비에 쌓여있다고 생각하던 소련을 방문하게 됐다.

모스크바에 있는 소련 수산공사 측과 상담하던 중 이들이 북한정부에게 인민의 식량으로만 무상배급 해줘야 한다는 조건으로 매년 20만 톤(명태 10만 톤, 대구, 가자미, 기타 잡어 10만톤)을 정해진 어장에서 조업하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런데 북한이 매년 허가된 양의 절반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3국의 깃발로 북한이 조업하는 캄차카 어장 진출가능성에 대한 토론을 계속했다. 소련으로부터 싱가포르에 있는 한 합영회사를 소개받아 10여 일간의 모스크바 여정을 마치고 싱가포르로 향했다. 목적은 한국의 어선과 소련이 투자한 싱가포르 회사와 합작하여 소련 어장에 진출해 보자는 의도였다.

북한, 구소련 캄차카어장 허가량 절반도 못잡아

당시 나는 ‘북한이 못다 잡아가는 고기를 북한과 상담 합의하여 그 고기를 잡자! 그거면 남한의 명태물량도 해결되고 또 잘 되면 남한의 어선들이 소련어장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동안 정신 없이 모스크바와 싱가포르, 한국으로 뛰어 다녔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러던 중 모스크바 시내를 거닐다가 초라한 모습의 북한 여인 3명이 시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 가면서 인사말을 걸었다. 그들은 뒤를 힐껏 쳐다보더니 “야! 남조선 사람이야 빨리 가자 야!” 했다. 머리가 찡- 하고 약간의 소름을 느끼면서 그 자리에 서고 말았다.

그때 나는 북한 대사관에 연락을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바로 북한대사관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미국국적을 가지고 미국 로스앤젤리스에 사는 재미교포 김찬구라고 합니다. 이곳 수산공사 사장의 초청으로 캄차카 어장 진출에 대한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수산업과 관련하여 상의할 것이 있어서 대사관을 한번 방문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한동안 대답이 없더니 “대사관엔 무슨 일로 그럽니까?”라며 약간 불쾌한 어조로 응답했다.

“수산업과 관련하여 평양을 한번 방문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몰라 대사관에 일단 연락을 했습니다.”

그는 고향과 인적 사항을 꼬치꼬치 묻더니 대사관에 올 일도 없고 평양을 방문할 수 있는 조건이 하나도 안 된다면서 대사관 방문을 한번 하고 싶다는 제의까지 냉정하게 거절했다.

모스크바 방문을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온 나는 평양방문의 기회를 찾고 있던 중 미국정부에서도 한국계 미국 시민권자의 북한 방문 허가방침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평양행을 준비하고 바로 비행기에 올랐던 것이다.(계속)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LA 동국로얄 한의과대학졸업,미국침구한의사, 중국 국제침구의사.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졸업-북한학 석사. -세계화랑검도 총연맹 상임고문.-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