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보도문 ‘행동對 행동’ 불안한 견제

평양에서 지난달 27일부터 나흘간 열렸던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이 2일 종결회의를 열고,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와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시기를 합의한 6개항의 공동보도문을 채택하는 것을 끝으로 종료됐다.

남북이 합의한 공동보도문의 특징은 2·13 합의-대북 쌀‧비료지원-이산가족 상봉행사가 ‘행동 대 행동’에 따라 한 고리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남북은 이번 회담 내내 북핵 문제 해결과 쌀·비료 지원 문제를 놓고 맞서왔다. 우리측은 남북대화와 6자회담의 병행 추진을 원칙으로 우선 북측이 2·13 합의에 따른 초기단계 이행조치의 성실한 이행을 촉구했다.

반면 북측은 쌀과 비료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양과 시기를 못박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북측이 ‘2·13 합의’ 조속한 이행을 촉구한 우리측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대북 쌀·비료 지원 재개와 관련, 이번 회담에 임하기 전부터 내부적으로 6자회담의 진전 상황을 지켜봐가며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전략을 세웠었다.

그러나 이 장관은 평소 대북 지원에 대해선 정치적 상황과는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누누이 밝혀왔다. 이 장관의 이런 입장에 대해 국민들은 북한이 명시적인 북핵 폐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 지원을 재개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퍼주기’에 불과하다며 비판적 여론이 대세를 이뤘다.

결국 이 장관은 대북 지원 재개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뒷받침 되지 않자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보다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 쌓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측이 ‘2·13 합의’ 초기단계 이행조치 기간인 4월 14일까지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폐쇄(shutdown) 조치 등을 성실히 이행하는지를 지켜본 후, 국민들과의 최소한의 공감대를 마련한 다음 대북 쌀 지원 재개를 모색하겠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문제는 2·13 합의-대북 쌀지원-이산가족 상봉행사가 ‘행동 대 행동’으로 이어지는 고리로 연결돼 있다는 것. 우리 정부의 입장이 북한의 2·13 합의 초기단계 조치 기간인 4월 14일까지 지켜본 이후, 4월 18일 경추위를 통해 쌀 지원 양과 시기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2·13 합의 초기조치를 지켜본 이후 대북 쌀 지원을 논의하기로 한 것은 하나의 성과로 평가된다. 하지만 북한의 성실한 행동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4월 열리는 경추위도 파행될 가능성은 있다.

우리측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북측은 ‘이산가족 상봉행사 5월 중 개최’라는 나름의 안전판을 마련해뒀다. 향후 경추위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의 대북지원 재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매개로 하는 협상을 따로 진행할 수도 있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미국을 방문해 미북 관계 정상화를 위한 워킹그룹을 진행하고,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도 이달 안으로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2.13 합의는 현재로서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다. 따라서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북한이 2·13 합의의 성실한 이행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이 장관은 이번 회담 목표를 정치적 상황과 관련 없이 남북관계 정례화와 정상화에 초점을 두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를 남북관계 정례화 단계진입의 신호로 속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남북회담과 6자회담이 서로 동력을 주고받으며 선순환적 구조를 갖추겠다’는 정부 기본 입장은 보도문에 ‘2.13 합의가 원만히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문구로 반영되긴 했지만 원칙적 수준을 넘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또 이번 공동보도문에서 알 수 있듯 군사 분야 회담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빠져있다. 이날 발표된 공동보도문에는 “군사적 보장조치가 취해지는 데에 따라 올해 상반기 중에 열차시험 운행을 실시한다”고만 되어 있다.

회담 관계자는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첨예하게 맞설 가능성이 있는 이슈를 일부러 피했다는 인상도 없지 않다. 국방장관회담과 장성급회담 등 군사회담은 경협사업 진전에 필요한 군사적 보장조치뿐 아니라 한반도 긴장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번 회담에서 적극 제기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공동보도문 1항 ‘남북관계와 관련되는 모든 문제들을 민족공동의 의사와 이익에 맞게 당국간 회담을 통해 협의 해결하기로 했다’는 부분은 남북관계 정상화의 의지를 원칙적으로 담은 표현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북한이 그동안 강조해온 ‘민족’이 들어갔고 ‘모든 문제’의 범위에 국가보안법 철폐, 참관지 제한 철폐, 합동군사훈련 중지 등 북한이 주장해온 이른바 ‘3대 장벽’도 이에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와 관련해선 4월 10일 금강산에서 열기로 한 제8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물론 이전 회담에서도 이 문제와 관련한 합의를 한 적이 있지만 이번 회담에서 빠지지 않고 문제를 논의하기로 한 것은 작은 성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