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갈종합세트’ 들이민 ‘김정일 깡통’에 무엇을 담을까?

지난 3월 27일 개성공단 남북경협사무소 남측 직원 추방에서 시작된 김정일의 협박종합세트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서해상에서 ‘미사일 쏘기’부터 ‘군사적 대응선언’에 이르기까지 빠진 것 없이 골고루 구색을 갖추고, “지금 리명박과 그 패거리들은 그 무슨 ‘북핵위협’을 제창하면서” “이명박이 그 무슨 ‘개방’을 입에 올리고 있는 것은…”이라는 등, 낯술에라도 취한 듯 연일 목청을 높였다.

그렇다면 이 ‘협박 종합선물세트’는 ‘그 무슨 목적’으로 발송된 것일까? 총선개입? 이명박 정부 길들이기? 그런 측면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김정일의 이 썰렁한 ‘공갈 개그’들은 하나의 주된 목적이 있다. 그것은 남측의 돈과 물자다. 김정일이 면전으로 침을 튀기며 내뱉는 말보다는 그가 지금 등 뒤에 감추고 있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김정일의 깡통이다.

김정일 정권은 지난 친북좌파 10년 동안 내밀기만 하면 이것저것 수북이 채워 주던 깡통을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라는 조건부 지원정책으로 더 이상 당당히 내밀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은 선군정치를 통해 강성대국을 만들겠다는, 좀더 정확히 말해 핵을 갖기만 하면 남쪽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조공을 바칠 것이라고 내부적으로 장담해 왔다.

실제로 친북좌파정권들은 6자회담의 성사를 위해서는 북한을 자극하지 말고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에 퍼주기를 계속해 왔다.

만약 친북좌파들이 계속 정권을 잡고 북한에 퍼주기를 계속했다면 북한은 6자회담을 끝없이 끌고 나가려 했을 것이다. 아니, 설사 6자회담이 깨지더라도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깡통만 내놓으면 언제라도 채워주는 남쪽의 “우리민족”이 있기 때문이다.

‘협박 종합세트’와 김정일의 속내

물론 김정일의 전략은 핵을 포기하지 않고 개혁개방도 하지 않으면서 깡통으로 받던 것을 드럼통으로 받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김정일의 이 전략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반세기를 꿈꿔오다 드디어 거머쥔 핵을 쉽게 포기할 수도, 또 수령독재 파라다이스에서 김정일은 내려올 수도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김정일은 지금 ‘장마당’이라는 자생적 시장경제로 인해 자신의 통치 기반이 결정적으로 잠식되는 것을 그냥 놔 둘 수도 없다.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 즉 김정일 정권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스스로의 피땀으로 삶을 영위하는 북한인민을 더 이상 방치하였다가는 수령세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노무현-김정일 회담 직후 강화된 장마당 통제와, 올해 신년사에 밝힌 “우리식 사회주의 경제”로의 복귀는 김정일이 지금 애타게 바라는 것이 시장경제로의 개혁개방은 커녕 통제경제로의 회귀임을 노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같은 관점에서 북한이 개성공단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개성에서 북한은 노동자를 국가가 통제하고 그들의 임금을 가로챔으로써 통치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에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지금 애타게 원하는 통제경제로의 복귀는 망가진 공장을 고쳐서 돌리기 위한 막대한 자원을 요구한다. 여기서 김정일은 일단 미국과의 핵신고 협상에서 우라늄농축과 시리아로의 핵기술 이전에 관한 사실들을, 아마도 축소되고 왜곡된 형태이겠지만, 비밀문서를 통해 미국에 자복하는 방식을 선택한 듯하다.

물론 3단계 핵폐기가 순조롭게 진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고, 다만 그럴듯한 시늉과 완성된 핵무기는 핵 프로그램에 속하지 않는다는 억지를 통해 또 뭔가를 뜯어낼 궁리를 할 것이다. 김정일에게 현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점은 깡통에, 그것도 아주 큰 깡통에 물자를 지원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비핵·개방에서 ‘비핵’이라는 한 가지 조건은 충족되었다고 한국의 친북좌파들은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조건인 (개혁)개방도 전 통일부장관 정세현과 같은 사람은 각 나라마다의 사정에 맞추어야 하며, 그 정도도 상대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한국의 햇볕정책 추종자와 종북파들이 “북측은 민족의 명산 금강산을 우리에게 이미 오래전에 개방하였고 개성공단을 통해 남과 북의 합작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게다가 개성 시내 전체의 관광도 허용했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개혁개방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차라리 북한이 극도로 혐오하는 ‘개혁개방’이라는 조건으로 북측을 모욕해봐야 남북화해 협력에 그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라고 주장할 것이다.

다른 한편 북한은 비밀리에 자복한다지만 이미 공개된 비밀인 우라늄농축과 시리아와의 핵거래를 “원쑤” 미국에게 자복한다는 것,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을 비록 친북좌파들을 통해서라도 인정하는 것이 체면을 구기는 것은 물론 대내외적으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여기에 지금 북한이 공갈종합세트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있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도, 시리아와의 핵거래도, “그 무슨 북핵위협”이나 “그 무슨 개혁개방”도 모두 표면적으로는 단호히 부정하지만 테이블 밑으로는 적당히 뭉갬으로써 이명박 정부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즉 실제적으로는 네가 요구하는 조건이 만족되었으니 더 이상 “비핵·개방”이라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내가 등 뒤에 감추고 차마 내밀지 못하고 있는 깡통에 알아서 수북이 담으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덧붙이자면, 김정일은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바라지도 않고 견디기도 싫어하는 한국 국민들의 배부른 평화주의와 햇볕정책 추종자들인 통합민주당과 같은 정당의 “얼쑤~”하는 추임새도 기대하였을 것이다. 공갈이란 먹혀 들어가야 공갈이기 때문이다.

李대통령이 ‘국가 지도자’로서 판단해야 할 시기 온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협박에 부드럽고 점잖게 대응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말보다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북한의 협박은 “자, 깡통을 채우라!”는 말을 대신하는 것이므로, 필요 이상으로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인다거나 할 말을 못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짧고 단호하게 결기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점은 김정일의 깡통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이명박 정부 스스로가 북한에 조건을 내밀며 원칙을 지킨 것이 무조건 퍼주기 보다 북한을 조련시키는 데에 훨씬 큰 효과가 있었다는 점을 이제 자신해도 좋다고 본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김하중 통일부장관을 통해 다시 한번 천명할 필요가 있다.

첫째, 남북교류와 지원의 조건은 공개적이고 명시적으로 양측이 동의한 후에 시행되며,
둘째, 북한에 대한 통상적 지원은 인권 및 인도주의 문제와 연계시킬 것이며,
셋째, 북한의 비핵화는 핵프로그램 및 핵무기의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폐기이며,
넷째, 개혁개방은 반드시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다섯째, 북한의 통제경제로의 복귀 시도에는 절대로 지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지원을 할 때 위의 조건을 북한정권이 공개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을 요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김정일이 이번에 공갈협박쇼를 한 이유가 바로 이명박 정부의 지원조건을 감추거나 없애기 위함인데, 깡통을 내미는 자는 ‘갑’이 아니라 분명 ‘을’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측의 지원이 북한의 시장경제로의 개혁개방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를 양적으로 계량할 수 있는 척도를 마련해야 하며, 북한이 현재 시도하는 통제경제로의 복귀 시도에 도움이 되는 지원, 예를 들어 국영기업체를 돌릴 에너지와 경공업원자재 등은 시장경제로의 확실한 전환약속 없이는 도와주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김정일 정권의 최대 약점인 깡통경제를 적절히 이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봄철이면 절기 행사처럼 시행되는 “쌀주고 비료주고 욕먹기”를 “쌀과 북한인권 개선” “비료와 국군포로·납치자 해결”로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럴 경우 그냥 퍼주기만 하는 것보다 인도주의가 2배, 4배로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러한 조건을 용납할 것인가? 친북좌파들은 분명 “아니다!”라고 대답하면서 막다른 골목으로 북한을 밀어붙이면 김정일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북한은 군사적 움직임을 강화하거나 “군사적 대응을 하겠다”는 협박을 때맞추어 하고 있다. 부창부수(夫唱婦隨)가 따로 없다.

이때가 이명박 대통령이 그냥 기업가형 대통령인지, 아니면 국가 지도자(statesman)인지 판별되는 시기일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하지 않는 한 북한의 군사위협은 어떠한 정당성도 없다. 이럴 때 국가지도자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