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한영씨 부인 김종은씨 인터뷰

‘고 이한영’씨 피살 사건관련, 이씨 부인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재판부는 17일 “국가는 1억482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2003년 2월 처음 소송을 제기한 지 1년 10개월 만에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한 이씨의 부인으로부터 소감을 들어봤다.

– 지금 심정이 어떤가

너무 기쁩니다. 판결문 자체가 가족의 마음을 대변해 주었다고 생각돼요. 판사님께서 말씀하신 한마디 한마디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한영씨의 의문의 죽음에 대해 많은 곳에 하소연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는데 결국 법이 우리를 지켜주었습니다.

– 누가 가장 기뻐하겠는가

중학생이 된 우리 딸아이가 제일 기뻐할 겁니다.

– 이번 판결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인가

처음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한영씨의 명예회복을 위해 시작한 것입니다. 이번 판결로 우리 가족 모두가 이한영씨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소중한 의미입니다.

– 항소할 생각이 있는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명예회복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일단은 판결에 만족합니다. 그러나 정부 측에서는 이번 판결에 심기가 불편할거라 생각이 돼요. 정부 측 대응을 보고 주위 분들하고 상의한 후 결정하겠습니다.

– 정부 측에 하고 싶은 말은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해요. 지금 정부도 이러한 일에 가장 앞장서주길 바랍니다.

– 주변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도와주신 모든 분들의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은 1982년 한국으로 들어온 뒤 김정일의 사생활을 폭로한 책을 출간한 이유로 1997년 2월 북한 사회문화부 특수공작조에게 피살당했다. 이후 유가족은 피살사건에 대한 정부 책임을 묻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다음은 이한영 사건 일지이다.

▲‘이한영 피살 사건’사건 개요

1960. 4. 2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 부친 이태순(핵물리학박사), 모친 성혜랑 사이 출생
1982. 9. 모스크바 유학중 서방 탈출, 그해 10월 1일 한국도착
1995. 10. 어머니 성혜랑과 국제통화, 서방 망명 타진
1996. 2. 13 김정일 본처 성혜림 일행 서방 탈출 언론보도
1997. 2. 15 경기도 분당 서연동 아파트에서 괴한에 권총 피격
1997. 2. 16 이한영 피격사건 수사본부 설치
1997. 2. 25 피격 11일 만인 오후 9시 이한영 사망
1997. 2. 28 경찰 전산망 이용, 이한영 주소누설 경관 2명 구속영장 청구
1997. 10. 27 부부간첩 최정남, 강연정 체포, 여자간첩 강연정 음독 자살
1997. 11. 20 안기부, 부부간첩 진술토대 이한영 피격사건 북한 사회문화부 소속 특수 공작조 ‘순호조 소행, 임무 수행후 입북 확인 수사 발표
2003. 2. 24 고 이한영 씨 유가족과 피랍탈북인권연대, 고인의 명예회복 차원 국가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 제기

양정아 기자 junga@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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