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단지에 빙두(마약) 들여와 마피아에 판다”

‘러시아 드림’을 꿈꾸던 북한 임업대표부 산하 러시아 파견 벌목노동자들의 탈출이 늘고 있다. ‘3년 벌이 10년 살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던 그들은 북한 당국의 과도한 ‘임금 착취’와 열악한 생활·작업 환경에 탈북을 결심하게 됐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러시아 내 북한 임업대표부에서 행정업무를 했던 탈북자 김경철(가명·52세.2010년 입국) 씨도 비슷한 이유로 탈출, 최근 한국에 정착했다. 김 씨는 자신이 겪은 임업사업소의 실태와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알리고 싶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임업사업소 생활은 어땠나.


=2002년 이전에는 간장, 된장을 비롯한 기초식품과 노동보호 물자(장갑, 작업복 등)들은 북한에서 일괄적으로 보내졌다. 운임을 내더라도 북한 내에서 공급하는 것이 쌌기 때문이다. 그러다 7.1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생필품은 노동자들이 벌어들인 돈에서 해결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벌목공들의 생활비가 늘어났다. 때문에 벌목공들은 부업형태의 사냥과 농사를 통해 생활비 부족분을 해결했다. 사냥은 보통 3~4명이 조를 이뤄 나간다. 사냥의 결과물은 간부들에게 받쳐야 한다. 때문에 당 간부들은 사냥을 내보낼 때 당성이 좋고 아첨하는 이들을 선발, 내보낸다.


농사를 해서 벌어지는 이윤은 사업소 전반 생활비용으로 쓰인다. 때문에 벌목공들은 몰래 술을 빚어 돈을 모으기도 한다. 만들어진 술은 주변 러시아 사람들이나 사업소안의 노동자에게 판다.


-임금은 어떻게 되는가.


=1인당 노동능력에 따라 다르다. 벌목이나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100달러, 검척(나무를 자로 재며 검사하는 사람)이나 경리부분의 사무직은 40~50달러로 되어있다.


그러나 노동자에게는 임금의 30%정도의 현금과 ‘노임명세표’가 쥐어진다. 표에는 100$로 적혀있더라도 충성의 당자금과 주요대상건설지원, 벌목노동자의 사고·사망부조 등 여러 가지로 돈을 떼인다. 따라서 한 달에 100달러를 탄다고 해도 실제 지급액은 30달러도 채 안 된다.


-북한 내 가족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돈을 전달하는가?


=임업대표부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당중앙위원회에서 관리를 하는데 이마저도 종이(문서)로만 가능하지 현금거래는 김정일의 수표(사인)가 있어야 된다.


해외 노동자들이 돈을 아껴 쓰면서 저금을 해놓고 필요할 때 찾으려고 하면 은행에서는 ‘돈이 없다, 승인을 받아야 한다’ 등의 구실로 돈을 잘 내주지 않기 때문에 저금 자체를 안 한다. 노동자들은 휴가로 집에 가는 사람들을 통해 적은 양을 내보내고 나머지는 본인이 가지고 있다가 귀가할 때 가지고 간다.


-현재 1개 임업사업소의 인원구성과 해외노동 연한은?


=북한 노동자가 파견된 러시아내 임업사업소는 총 17개다. 사업소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사업소별로 1500~2000명 정도가 파견돼 있다. 1500명 규모의 사업소 당 위원회 구성을 보면 통상 지배인, 당 비서, 기사장, 보위지도원, 보안원이 1명씩 배치되고 그 아래 행정간부 15명 정도가 기업소를 관리한다. 북한의 3급기업소의 행정 보안능력과 같다. 해외노동 연수는 일반적으로 3년을 기준으로 한다. 간부들과 관계를 잘 맺으면 연수기간을 늘릴 수도 있다. 


-벌목노동자들의 탈출이 느는 이유는 무엇인가.


=2002년부터 북한 당국의 ‘돈 빨아들이기'(해외 자본 착취) 전략이 광기를 띄고 진행됐다. 그 때 탈북을 시도한 사람들의 수는 임업대표부 산하 임산(벌목)사업소 전역을 놓고 보면 한해에 무려 30~40명 정도였다.


특히 2000년대 말부터 돈벌이가 잘되지 않는다며 월급을 대폭 감소하면서 노동자들의 사상적 동요가 일어났다. 또 러시아에서 비교적 쉽게 남한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김정일 체제에 반감을 가지게 됐다. 해외생활 과정에서 탈북이 안전하다는 판단도 탈출을 부추기고 있다. 


벌목공들은 러시아에 거주하려면 1년에 한 번씩 100달러를 지불하고 ‘임시거주 증명서(거주증)’를 갱신해야 한다. 이 증명서가 있으면 러시아 어디를 방문해도 제지를 받지 않는다. 따라서 벌목공들이 외부로 쉽게 나갈 수 있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임업사업소 당 위원회는 당국에 탈출 인원에 대해서는 ‘행방불명’이라고 거짓보고를 한다. 사실대로 밝히면 현지 지도원인 자신들에게 책임을 물어 처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건, 사고나 가혹한 처벌로 노동자들이 사망했을 경우는 시신을 태워서 유골을 휴가를 가는 사람들을 통해 북한으로 보낸다.


-임업사업소에서 마약거래가 성행하고 있다는데.


=임업사업소에서의 마약거래와 유통은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90년대 말 임업대표부 산하 국가보위부 기통수(기밀문건을 나르는 사람)가 마약 10kg을 두만강세관을 통과해 밀매하던 중 러시아 경찰에 잡혀가던 중 자살을 한 사건이 있었다.


이미 김정일의 당 자금 마련 목적으로 마약을 여러 번 전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기통수는 자신했다. 북한 국경을 넘을 때 세관검사가 꼼꼼하게 진행되지만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두만강세관에서는 ‘특수기밀문건’으로 취급돼 정밀검사가 진행되지 않고 마약이 넘겨지게 된다. 그런데 북한 세관은 문제없이 통과했지만 러시아 세관에서 검거된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마약거래가 일반 노동자들에게도 확산되면서 마약범죄는 상당히 광범위해졌다. 노동자들은 휴가차 집에 갔다가 러시아로 다시 들어올 때 고추장속에 다량의 아편이나 빙두(필로폰)를 넣어 들여왔다. 무사히 세관을 통과하면 그 마약은 러시아 마약단체들과 거래됐다.


임업노동자들은 ‘당(김정일)에서도 마약밀수를 하는데 우리가 하면 안 된다는 게 말이 아니다’며 마약밀매를 했다. 마약 밀매를 하던 중에 보위원이나 보안원에게 들키게 되는 경우 뇌물을 주면 해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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