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 점령 눈 앞에서 전우와 손가락 잃은 그날…”







6.25전쟁 당시 6사단 7연대 수색중대원 문영준씨(左), 12사단 51연대 수색중대원 박종철 씨./김봉섭 기자


6·25전쟁 당시 뛰어난 지략과 결단으로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건저낸 명 지휘관들의 공적은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총 한 번 쏴 보지 못한 채 전장에 뛰어들어 온 몸으로 대한민국을 지켰던 이름없는 청년들 또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지난 22일 6·25전쟁 참전 병사들을 만나기 위해 대한민국 참전유공자회 성남지부를 찾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적과 총부리를 겨눴던 이들의 증언은 전쟁이 남긴 뼈아픈 교훈으로 후대에게 전달될 것이다.  


12사단 51연대 수색중대원이었던 박종철 씨는 1952년 21살의 나이로 국군에 징집됐다. 4주간의 신병 교육을 마친 후 총알이 빗발치는 백마고지 전투에 곧바로 투입됐다. 60여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1952년 10월 그날의 광경은 아직도 그의 기억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백마고지에 중공군 시체들이 쫙 깔려있었다. 중공군들은 국군이 중공군으로 위장할까봐 시체들이 입고 있는 중공군복을 다 벗겨갔다. 시체는 치우지도 않았다. 벌거벗겨진 채 온 몸이 피로 얼룩지고 손 발 하나 없는 시체들을 보면 무서워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더 이상 무섭지도 않았다. 그것이 전쟁이다.”


박 씨는 “치열한 전투 후에 내가 차고 있던 반도(군용벨트) 쇠뭉치에 총알이 박혀 있는 것을 보고 간담이 서늘했다. 조금만 다른 곳으로 날아갔으면 심장에 박혔거나 차고 있던 수류탄에 맞아 폭사 당했을 것이다. 왼쪽 허벅지가 축축해서 벗어보니 피가 흥건했다. 그 때 총에 맞은 줄 알았다”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6사단 7연대 수색중대원이었던 문영준 씨는 춘천 탈환 작전에서 50여명의 전우를 한꺼번에 잃은 아픔을 털어놨다.


당시 무기라고는 소총과 수류탄 밖에 소지하지 못했던 문 씨와 동료 중대원들은 고지의 적진 참호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에 진격을 거듭했다. 8부 능선까지 올라 고지점령을 눈앞에 두고 있을 찰나, 어딘가에서 총알이 빗발쳐 날아왔고 50여명의 중대원들이 고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기관총 세례 속에서 살아남은 문 씨와 동료들은 주위에 쓰러진 중대원들을 수습할 정신도 없었다.


문 씨는 “끔찍했던 것은 한 동료가 머리에 총을 맞고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었는데, 죽지 못하고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엄폐물 밖에서는 기관총알이 쏟아지고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면서 고개를 떨궜다.


이어 “전투 후 손을 보니까 새끼 손가락 하나가 없었다. 전투 중에 총알이 날아와 손가락을 부러뜨린 것이다. 소총을 양손으로 꽉 부여잡고 있었는데 너무 긴장해서 손가락이 날아 간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겨울에 벌어지는 전투는 더욱 끔찍했다. 취사병들이 산 아래 계곡까지 내려가 국밥을 만들어 오면 아군은 이미 진격한 상태였다. 취사병들이 부대원들을 찾아 헤매는 사이 칼바람 속에서 국밥은 꽝꽝 얼어붙었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부대원들은 얼어붙은 국밥을 깨 먹으며 허기를 달래야 했다.


미군들은 이런 국군들의 모습을 보고 “한국 군인들은 전쟁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라면서 “우리는 건빵에 커피 한 잔이면 전투 한 건 뛰는데, 한국인들은 국밥을 먹여야 전쟁이 된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고 한다.


박 씨는 “이승만 대통령 생일날 나라에서 병사들한테 선물을 줬는데, 오징어 통조림이었다.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통조림을 받으니 허겁지겁 먹어댔다”며 “빈 배에 기름기가 들어가니 하루 종일 배탈이 나서 고생했다”고 했다.


6·25전쟁을 온 몸으로 겪어낸 두 명의 참전용사는 최근 젊은이들의 해이해진 안보의식 때문에 과거와 같은 비극적인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두렵다고 입을 모았다.


문 씨는 “세계에 분단국가이자 휴전국은 우리나라 뿐이다. 왜 우리나라가 이렇게 됐는지 공부하고, 생각한 다음에 ‘친북’ ‘반미’를 외쳐야 한다. 왜 그런 경거망동을 하는지…”라며 안타까워 했다.


그는 “6·25전쟁과 남북분단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면서 “좌경세력들의 주장을 무분별하게 수용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박 씨는 “친북 국회의원들 때문에 대학생들이 좌경화된 것 같다. 대학생들이 그러면 국회의원들이 말려야지, 도리어 앞에서 그들을 선동하고 있으니 나라가 어떻게 돼가는지 모르겠다”며 “말리지 않을테니 친북세력은 자신들이 원하는 북으로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6·25 참전 용사자들을 ‘극우’ ‘수구꼴통’으로 보는 시선에 대해서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인지는 모르겠다.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이 다 옳을 수는 없지만, 이 나라를 지켰다는 긍지는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면서 “6·25 때 고생하신 분들이라는 마음만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서운함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