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넘는 6자회담…협상동력 유지 ‘관건’

“미리 설정해놓은 수순을 밟고 있지만 협상 동력을 굳건하게 유지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북핵 현안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은 14일 북핵 6자회담의 현 상황에 대해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 변수가 교차하는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10.3합의의 기본 얼개인 불능화와 신고, 이에 상응한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과 정치.안보적 조치(테러지원국 해제 등)를 이행하기 위해 최근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의 평양방문과 6자회담 경제.에너지 실무그룹회의, 북.일 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 등이 잇따라 열려 성과를 도출했지만 6자회담의 궁극적 목표인 비핵화 3단계(핵폐기)로 나아가는 여정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특히 임기 말로 몰리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협상 동력이 시간이 갈수록 약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레임덕이 본격화되는 8월 말 이전에 쉽사리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 로드맵을 마련할 수 있느냐가 최종 관건이 될 것이라고 이 소식통은 내다봤다.

◇ 6자회담 재개 발판 마련 = 최근 잇따라 진행된 각종 회담을 통해 일단 6자회담 프로세스를 재개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북한이 지난 10일 이른바 반(反)테러 성명을 공식 발표한 데 이어 13일에는 일본인 납치문제를 재조사하고 요도호 납치범 인계에 협력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것은 미국과의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과정으로 읽히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협상파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싱가포르와 평양, 베이징에서 협상 파트너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만나 10.3합의 이행을 위한 큰 틀의 합의를 도출했으며 이에 따라 북한의 행동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기 위해 필요한 두가지 조치(반테러 천명과 일본인 납치자 문제)에서 북한이 성의를 보인 만큼 조만간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 절차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시간 순으로 배열해보면 미국 정부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위한 의회통보,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 6자회담 재개 등 일련의 조치가 향후 수주안 또는 적어도 6월 내에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시리아 핵협력 의혹 등을 ‘간접시인’ 방안으로 우회하기로 한 힐 차관보의 협상 결과에 불만을 품은 미 의회 일각과 강경파들의 반발 강도 등이 변수가 될 가능성은 있지만 일단 임기 말에 몰리는 부시 대통령이 북핵 협상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만큼 테러지원국 해제와 불능화와 신고 매듭이라는 2단계까지는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미국이 한때 갖기로 한 전문가 협의는 지난주 성 김 과장의 평양 협의를 통해 현 단계에서는 수습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 김 과장의 수차례에 걸친 방북을 포함한 북.미간 협의 등의 결과로 추후 6자회담이 재개되면 6자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신고 내용 검증과 확인을 위해 별도의 협의채널을 구축하기로 의견이 모아진 상태다.

미국측은 북한이 제시한 1만8천822쪽의 핵 관련 자료를 1차 분석한 결과 ‘완전한 내용’이라는 판단을 내렸으며 이른바 핵 신고 내역의 검증을 위해서는 정밀하고 전문적인 체계 확립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점 등을 고려해 가급적 시간을 아끼는 방안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미국내 강경파들의 견제가 거세지지 않을 경우 조만간 테러지원국 해제절차 착수를 기점으로 6자회담 프로세스 재개가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6자 수석대표회담에 이어 6자 외교장관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6자회담의 중심축인 북.미 관계의 급진전을 상징적으로 알리는 동시에 북한과 일본간 관계개선 가능성, 동북아 차원의 평화체제 구축 문제 등도 부각시키는 효과를 강조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암초도 산적..시간과의 싸움 = 북핵 협상의 특성상 언제든 판이 흔들릴 요소는 상존해있다.

일단 10.3합의의 한축인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의 불일치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지난 5일의 남북 협의에 이어 11일 진행된 6자회담 경제.에너지지원 실무그룹회의에서 북한은 10.3합의의 이행원칙(행동 대 행동)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의 불능화 속도에 비해 지연되고 있는 에너지 지원에 대한 강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산술적으로 볼 때 북한과 나머지 5개국 간 10.3합의 이행 상황에는 속도 차가 분명 존재한다.

북한은 불능화 진척을 수치로 환산해 전체의 80% 정도가 이행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대북 에너지 제공은 중유로 환산하면 총 95만t 중에서 33만여t(설비자재 계약분까지 포함하면 39만t)만 이뤄졌다.

특히 북한은 지난 5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사전협의에서 경제.에너지 지원의 속도가 더딘데 대해 강하게 불만을 제기하면서 “지원 속도를 높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판문점에서 열린 경제.에너지 실무그룹회의도 진통 끝에 가까스로 ‘잠정적 합의’를 도출했지만 북한이 언제든 속도차이를 이유로 6자회담 전체 협상 틀을 흔들고 나올 가능성은 남아있다.

에너지 지원과 관련해서 일본의 변수가 주목된다. 일본은 이른바 일본인 납치문제를 이유로 대북 에너지 지원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만일 한.미.중.러 등 나머지 4개국의 에너지 지원이 완료된 이후에도 일본이 지원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6자회담의 존립 근거는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일본 변수는 일단 지난 11-12일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산하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회담에서 북한이 납치문제에 대한 조사를 재개하고 일본은 대북 경제제재 일부를 해제하는 방안에 전격 합의함으로써 매우 긍정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북한에 대한 중유 제공에는 동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점은 여전히 불안한 요소로 지적된다.

만일 북한이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를 이끌어내기 위해 형식적으로 ‘납치자 문제 재조사’에 합의했다면, 그리고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한 뒤 이를 철회할 경우 일본내 반발 정서는 더 커질 수 있다.

이 경우 일본 변수는 다시 부각될 것이고, 이는 곧 6자회담의 진전을 막는 장애가 될 것이라는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북핵 협상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게 되는 가장 요인은 역시 북한의 의지에 대한 불투명성이다.

특히 미국 내에서 현재의 국면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고 이 때문에 테러지원국 해제 등의 일정이 계속 미뤄질 경우 북한도 결국 핵신고를 미국의 11월 대통령 선거 이후로 미룰 가능성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을 면담한 맨스필드 재단의 고든 플레이크 원장은 지난 6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 신고가 지금 이뤄지고 6자회담 등이 내일 열린다 가정하더라도 미국이 이에 상응해 취해야할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나 적성국 교역법 해제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미 의회조사국(CRS)의 래리 닉시 박사도 “6월중 북핵 신고가 마무리되고 북한의 테러해제 등 미국의 상응행동이 취해지지 않으면 미국내 정치 일정상 북핵 과정의 동력이 완전히 상실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부시 행정부 1기 때 대북 특사를 지낸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지난 4월 평양을 방문한 뒤 북한이 비핵화 3단계에 가서도 핵무기 등을 폐기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라거나 ‘핵보유국’ 지위를 추구할 것이라는 등 미국내 부정적 여론확산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결국 북한은 자신들이 이 단계에서 도달하려는 ‘테러지원국 해제’ 목표가 미국내 강경파들의 반발로 끝내 물건너갈 경우 6자회담에 대한 기대를 거둬들이고 차기 미국 정부 등장을 기다리며 시간끌기에 돌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현재의 6자회담은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협상파들이 마련해놓은 협상구도가 6월말까지 가시화되고 적어도 8월말까지 비핵화 3단계 로드맵 마련에 성공할 경우 6자회담은 부시 행정부의 임기에 구애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가동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서서히 동력이 떨어지면서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오면 의미없는 교착국면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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