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픔의 연속이지만 ‘원족’만큼은 즐겁게…

이곳에 와서 어느덧 두 번의 봄을 맞았다. 주말에 모처럼 딸과 함께 벚꽃이 가득한 ‘윤중로’라는 곳을 다녀왔다. ‘만수대의사당’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국회의사당 뒤편에 있는 곳인데 아름드리 벚나무가 가득했다.


하얗게 반짝이는 벚꽃을 길잡이 삼아 딸의 손을 가만히 잡고 거닐며 따스한 봄 햇살을 만끽하던 중 문득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딸아이가 눈시울이 붉어지는 날보고 “또 그곳 생각하는 거지?”라고 물었다. 나도 모르게 “응? 으응”하고 대답하고 살짝 고개를 떨어뜨렸다. (2011년 4월 어느 봄날)


봄을 맞아 꽃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북한도 이맘때면(4월) 유치원, 소·중학교에서 원족(소풍)을 간다. 보통 유치원·소학교 원족에는 부모도 함께한다.


이날 하루만큼은 어려운 식량사정도 잠시 잊을 수 있고 국방위원장 추대일(9일), 태양절(15일), 조선인민군 창건일(25일) 등 각종 정치행사에 들볶였던 심신(心身)도 풀어줄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음식 등을 준비하며 기쁜 마음으로 기다린다.


김일성·김정일을 위한 정치행사는 틀에 매여 정숙하고 따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지만, 원족은 자유롭게 체육과 오락, 노래 등을 하고 소박하지만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는 날이다. 그래서 교원들과 학부모들은 원족 며칠 전부터 행사 준비를 위해 장마당으로 바쁜 걸음을 옮긴다.


평안남도 순천시에서 교원을 했던 탈북자 한성옥(38) 씨는 “봄 원족 때에는 모든 학생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었고 아이들의 밝은 웃음은 나에게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었다”며 “봄놀이를 즐겁게 보내기 위해 놀이 기구와 요리준비로 밤을 새도 학생들이 좋아할 생각으로 즐겁기만 했다”고 회상했다.


교원들은 봄놀이 장소를 정하기 위해 하루나 이틀 전에 현지를 답사하고 원족 당일 전체 교원과 학생들, 학부모들이 정해진 장소로 떠난다. 북한의 평양과 개성, 남포, 청진을 비롯한 큰 도시를 제외한 지역은 교통도 불편하고 특별한 놀이시설이 따로 꾸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가까운 산이나 강으로 원족 장소를 정한다.


원족을 가는 발걸음은 가볍고, 학생·학부모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양강도에서 살았던 탈북자 이형석(24) 씨는 “정치교육, 지식교육으로 딱딱하게만 느껴지던 선생들도 그날에는 다정하고 살뜰한 모습이어서 여느 명절(김일성·김정일 생일)보다 봄놀이 날을 기다릴 때는 즐거웠고 지나보내고 나면 무엇을 잃어버린 것처럼 마음이 허전했었다”고 말했다.


집집마다 아이들의 등산 준비로 명절 분위기다. 탈북자 강명옥(32) 씨는 “봄놀이 준비로 많은 엄마들이 힘들다가도 애들의 밝은 웃음을 보면 힘든 줄 몰랐다”며 “봄놀이 등산이 애들과 부모들에게는 정말 좋은 명절이었다”고 말했다


밀가루로 만든 꽈배기, 고추순대, 감자순대 등의 별식 및 교원들을 위한 도시락도 준비한다. 북한에서는 등산을 가는 날 선생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은 의례히 해야 하는 일로 여긴다.


함경북도 보위부원 출신 탈북자 황명남(41) 씨는 “도시의 부모들은 여선생인 경우에는 화장품, 미원 등을 주었고 남선생들인 경우는 술, 담배, 돈을 주는 것을 응당(당연)한 일로 생각했다”며 “일부 생활이 어려운 집 아이들은 도시락으로 성의를 표했다”고 설명했다.


양강도 출신 탈북자 송미향(20) 씨도 “선생의 도시락을 살 형편이 못되는 아이들은 돈을 모아 간식을 사서 주었다”며 “온 학급이 선생을 위해 도시락을 사오면 선생의 집에서는 한동안 명절을 쇨 정도이지만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원족 장소에 도착하면 학교장의 간단한 인사말 이후 각 학급별로 경기를 진행한다. 공 빼앗기, 보물찾기, 요리경연, 학급별 공연, 알아맞히기 등 다양한 놀이들이 열린다.


원족에서 반드시 빠지지 않는 경기가 ‘미국X 까부수기’다. 두 편으로 나눠 미군 형상을 한 허수아비를 막대로 치고 오는 릴레이 경기다. 즐거운 소풍날에도 어김없이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학과목 문제를 알아맞히는 경기도 진행된다. 반 대항으로 진행되는데 보통 김일성·김정일의 우상화 관련 문제들이다. 예를 들면 “정일봉의 높이는?”라는 질문이 나오면 “216.42m”라고 답한 학생이 이기는 경기다.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단연 ‘보물찾기’다. 교원들이 하루 전 현지에 보물이 적힌 쪽지를 곳곳에 감춰 놓는다. 보물쪽지에는 갖가지 학용품들이 적혀 있어 아이들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닌다.


여학생들만 참가하는 요리경연도 진행된다. 보통 요리경연은 지역의 특성에 맞게 특산물로 된 음식을 준비한다. 요리경연에서 등수에 든 학급은 당선된 요리의 소유권이 주어지는데 대체로 모두 함께 모여 먹는다.


상품으로는 학습장, 소년단 휘장, 볼펜, 축구공, 배구공과 함께 족자(‘총폭탄’ ‘자폭정신’ 등의 구호가 적힌) 등이 있다. 상품들은 학급별로 분담돼 준비되며 담임교원은 학부모자위원장(부모들을 대표함)과 사전에 합의해 학부모들로부터 거둔 돈으로 마련한다. 


모든 경기가 끝나면 학급별로 노래모임이 진행된다. 가족이 함께 부르기도 하고, 독창 또는 장기자랑이 이어지며 끝나가는 원족의 아쉬움을 달랜다. 공연이 끝나면 모든 종목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고 총화를 간단히 하고 헤어진다.


비록 내일의 삶은 고달플지 몰라도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집으로 가는 부모들과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한가득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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