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행군’ 이후 北에는 김치○○도 생겨났다

겨울 추위가 찾아오면 살림하는 여성들은 먼저 김장 걱정을 하게 된다. 김장철이 되면 올해 배추값은 얼마인지, 몇 포기를 담궈야 하는지, 들어가는 돈은 얼마인지 이러저러한 셈을 해본다.

이맘때 쯤이면 북한에서도 김장준비로 여념이 없다. 북한에서는 김장도 전투다.

한국에서는 김치를 담궈서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북한에서는 김치를 보관하기 위해 김치움(김칫독을 파묻는 구덩이와 이를 덮는 움막)을 따로 준비해야 한다.

북한에서는 김치가 ‘반 철 양식’이라고 말할 정도로 주민들의 식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남에서는 김장이 배추 몇 십 포기 수준이지만 북한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양을 담그기 때문에 훨씬 더 수고롭다.

원래 김치움을 만들게 된 목적은 위생을 보장하고 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북한에도 지역마다 기온차가 있기 때문에 김치움을 만드는 방식이 각이하다.

비교적 날씨가 따뜻한 강원도와 황해도, 평안도 사람들이 만드는 김치움과 함경도와 양강도, 자강도 사람들의 김치움은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도시와 지방도 다르다.

함경도 이남 사람들은 날씨가 북쪽보다 덜 춥기 때문에 김치움을 너무 깊이 만들지 않는다.

큰 도시들에 고층건물들이 많이 들어선 요즘 밖에 창고가 있는 집들에서는 따로 김치움을 만들지 않고 인근 창고 안에 땅을 파서 김칫독을 묻는다. 창고가 없는 사람들은 그냥 아파트 배란다에 김칫독이나 또는 플라스틱통을 놓고 그곳에 김치를 담아 놓는다.

시골집과 시외 거주하는 사람들, 시내에 집이 있지만 부업이라도 할 정도의 땅이 있는 가정들에서는 김치움을 따로 만든다.

보통 준비한 김칫독의 3분의 2정도가 묻힐 수 있는 깊이로 구덩이를 판다. 이 자리에 김칫독을 들여놓고 먼지나 흙이 들어갈 수 없게 잘 덮어놓은 다음 덮개를 만들기 시작한다.

황해도보다 조금 추운 평안도 지방의 일부 사람들은 김칫독자리를 독보다 조금 넓게 파고 독을 넣은 다음 옆공간에 벼짚을 두툼하게 넣어 혹한에 김치가 얼지 않도록 대비한다.

김칫독 주변의 흙을 너비 ㏐, 깊이 20㎝ 정도 되게 삽으로 판다. 다음 판자를 가로 4개 정도 놓은 다음 그 위에 세로로 틈이 없이 판자를 촘촘히 놓고 가마니나 벼짚, 또는 천으로 된 마대를 겹으로 놓고 다시 비닐로 씌운다.

그 다음 독 입구만 내놓고 흙으로 잘 묻어준다. 이렇게 되면 평안도를 비롯한 앞쪽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김치움이 준비된다. 김치를 담그어 독안에 차곡차곡 넣은 다음 독 입구에 다시 기름종이와 비닐을 씌우고 잘 묶어 놓는다.

그리고 독 뚜껑을 씌우고 비닐로 잘 덮은 후 다시 가마니를 덮어두었다가 한달 후 가마니를 열고 김치를 꺼내 먹기 시작한다.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만드는 김치움은 한 해밖에 쓰지 못한다. 다음해 봄에 김치를 다 먹게 되면 김칫독을 파내어 깨끗이 씻은 다음 땅바닥에 뒤집어 놓아 안을 소독시킨다.

이에 비해 함경도나 양강도, 자강도 사람들의 김치움은 손길이 더 가야 한다.

북한에서도 가장 추운 지방인 양강도 함경도 주민들은 김치가 쉽게 얼수 있어 김치움을 대충 만들 수 없다.

봄에 날씨가 풀리면 얼었던 김치도 자연히 녹지만 한 번 얼어버린 김치는 제맛을 잃기 때문에 김치찌개를 해먹을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은 시장에 나가면 김치를 비롯해 없는 것이 없다. 김치를 사먹는 사람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가진 사람들에게 해당할 뿐이지 하루 한 끼 밥 먹기도 힘든 서민들에게는 생각조차 해볼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없는 사람들일수록 양념을 묻히지 못한 백김치라도 꼭 해놓아야만 다른 찬감이 부족한 겨울에 김치를 곁들어 밥을 먹을 수 있다.

함경도나 자강도, 양강도 사람들의 김장움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추위를 막기 위해 많은 품을 들여 든든하게 만든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비슷한 점은 외장 덮개 막이 돌출된다는 점이다. 가정들마다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널판자나 벽돌, 브로크, 돌로 만들기도 한다. 일부 집들은 이렇게 만든 김치움 문에 자물쇠까지 채운다. 요즘은 김치도둑을 막기 위해 창고안 땅을 파고 김치움을 만드는 가정들이 늘어났다.

일단 움안으로 들어가면 2m 정도의 깊이로 구덩이를 파는 사람들도 있고 시골집들에서는 아예 3m 정도의 깊이로 파고 들어가 사다리를 이용해서만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만드는 집들도 있다.

김치움의 넓이는 보통 2.5m 정도, 땅속에 김칫독을 3분의2 정도 되게 묻는 집도 있다.

이렇게 품을 들여 든든히 만든 김치움들은 해마다 수리만 하고 다시 짓지 않는다. 일부 가정들에서는 국거리, 찬거리용 무와 배추, 감자, 파 등을 이 김치움 한쪽에 잘 묻어 두고 겨울내 먹는다. 감자농사를 많이 지어 감자가 주식이 돼있는 양강도와 자강도 가정들에서는 김치움과 감자움을 따로 짓는다.

북한 주민들에게 시원하고 진한 맛 나는 김치를 내게해주는 김치움 문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김치움이라도 결국 김치를 위해 필요한 것인데 하루 벌어 하루를 연명해가는 극빈층은 김치움은커녕 김치독을 채울 김치조차 장만할 수 없다.

북한 주민들은 함남도를 기준으로 남쪽 사람들은 대체로 11월 10일 경부터 김장을 시작하고 함남도 이북 사람들은 빠르면 10월 말, 늦으면 11월초까지 김장을 끝낸다.

1990년대 중엽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부터는 북한 전체를 휩쓰는 굶주림에 못견뎌 온갖 도둑이 창궐하면서 김치도둑까지 생겨났다. 그러니 창고나 밖에 김치 묻을 자리가 있으면서도 마음 놓고 묻지 못하고 배란다에 독을 놓고 김치를 보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김치도둑들이 활동을 시작하는 것은 집집마다 김장이 끝난 11월 말이나 12월 초 경이다. 도둑들은 김장이 바로 끝난 김치를 대상으로 한다. 김치는 북한에서 한겨울 중요한 양식이기 때문에 김장 김치를 도둑 맞으면 겨울 내내 남보다 배를 더 곯아야 한다.

김치도둑과 관련해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1997년 경에 중국 밀수꾼들이 김치와 쌀을 바꿔준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평북도 신의주와 그 주변지역들에서는 바깥에 있는 김치움과 창고안에 묻어둔 김치들을 훔쳐가는 도둑이 들끓었다. 어느 마을은 마을 전체가 김치를 도둑 맞기도 했다.

매일같이 김치를 도둑 맞았다는 소문이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는 안기부 공작이 있다는 말까지 돌았다. 북한에서 가져온 김치들을 중국 밀수꾼에게 넘겨주면 입쌀로 바꿔주는데, 밀수꾼들이 김치를 압록강에 바로 버린다는 것이다.

남조선의 안기부가 조선(북한) 사람들이 김치를 못먹어 영양실조에 걸리게 하려고 그런 짓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김치도둑 이야기가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삶이 10년 전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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