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권력이 친구 사이의 우정을 갈라놓기도 하지만, 그 신뢰에 기반한 우정(友情)이 큰 권력의 충돌을 예방해 주기도 한다.
국가의 자율성(autonomy of state)이 상대적으로 많이 침해되는 성숙되지 않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권신(權臣)들이 자신들의 권좌를 공고히 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붓지만, 국가를 위한 일에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하는 경향이 보인다.
고구려의 마지막 황제 보장왕이 그 당시 강성한 중원의 강국 당(唐)나라에 맞설 수 있는 배짱이 있었던 것은 국가의 권력을 독점한 연개소문의 강력한 국가를 수호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당태종 이세민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중원의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과 대치하였을 때, 양만춘이 후방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었던 것은 연개소문 같은 그 시대의 영웅이 국가의 생존전략을 상당부분 고민하고 있었기에, 기적 같은 안시성 싸움의 승리를 이룰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고구려 귀족들의 상징이었던 5부족 출신 권신들은 아마도 연개소문의 강력한 통치력이 없었다면, 침략자 당과의 화합을 외치면서 불가능해 보이는 싸움을 피해서 국가는 망해도 개인들의 일신의 영달(榮達)은 지키려는 수순으로 처신을 했을 것이다.
연약한 영류왕과 중원과의 화친만이 고구려 멸망의 길을 비켜간다는 논리를 주장한 권신들 100여명을 칼로 살상하고 권좌에 오른 연개소문 이후에, 그 기상과 저력이 온전한 고구려의 후계자에 의해서 오랜 시간 그 지도력이 보존되었었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요동과 만주는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어서 우리가 동아시아 강국(强國)의 반열에서 더 씩씩한 국가의 모습도 갖추고 있을 것이란 가정을 해본다.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고 국가의 기개(氣槪)를 세우는 일은 이만큼 중요한 것이다.
권력을 사유화하는 가부장적 주체놀음에 이러한 논리가 잘못 씌여진 북한의 경우도 있지만, 역사를 보건데 잘 씌여진 이러한 논리는 국민들을 단합시키고 국가의 구성원들에게 자긍심을 주는 국가의 단합노선을 만들기도 했던 것이다. 독재를 합리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시대상황에 맞는 명분이 잘 반영된 리더십의 힘은 그만큼 대단하다는 논리인 것이다.
비록 정확한 비유는 될 수가 없다고 할지라도, 지금 대북노선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에서 권력구조 내의 정리되는 않는 노선이 보이기도 한다. 필자는 바로 이러한 문제에 관한 한, 연개소문 같은, 양만춘 같은 원칙주의자들이 국민들의 뜻을 담은 국가적 의지를 갖고 북한이 하루빨리 민족을 진실로 소중하게 여기는 정상국가로 나오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무엇인가 우리가 아쉬워서 전전긍긍(戰戰兢兢)하는 것 같은 이러한 대북노선 갖고는 우리는 앞으로도 북한의 무모한 행동에 의해서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들이 계속 생길 것이다.
저들은 말로는 항상 같은 민족, 동포를 이야기하지만, 행동은 우리를 무시하고 애써서 고의적으로 과거의 원수를 하루아침에 친구라고 치켜세우면서 외세와 연합하여 우리를 압박하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노선을 걷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대목은, 우리 국민들도 생계를 위해서 절실하게 필요한 우리의 혈세(血稅)가 아무런 조건 없이 그들의 호주머니로 갈 수 있는 ‘대한민국의 묻지마 지원’이 계속될 수 있는 대남전략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정부가 이러한 북한에게 먼저 조급하게 나서서 대화를 요청하고 사과를 받으러 북한에 간다는 논리는 마치 무슨 큰 책이라도 잡힌 것 같은 부당한 자세만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도 아니고 아무런 명분도 없어 보인다.
고구려가 왜 그 토록 강성한 국가를 이루었는지에 대한 우리들의 연구가 더 필요한 시점이다. 그 당시 자신들의 영달만 탐하는 소인배적인 스타일의 권신들은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기에 앞서서 충신(忠臣)들인 정적을 제거하고 자신들의 영욕(榮辱)을 위한 원칙과 명분이 적은 소인배의 길을 걸어갔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러한 역사적 진실 앞에서 더욱더 겸손해지고 원리원칙(原理原則)에 더 충실한 대북전략을 고대해 보는 것이다. 진정한 응답이 없는 공허한 장식용의 대북(對北) 대화제의가 대한민국의 진정한 전략이 될 수가 없다는 국민들의 공감대가 이렇게 크게 형성된 적도 없는 것이다.
고 박왕자 씨의 영혼이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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