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에서 북한까지…역사상의 평양

고조선, 고구려의 수도 혹은 중심지에서 현재 핵 사태의 진원지이자 북한의 수도에 이르기까지 평양은 역사상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한국사연구회(회장 노태돈)가 9일 서울대 인문대 교수회의실에서 ’역사도시 평양’을 주제로 개최하는 2006년도 학술대회는 각 시대마다 다른 색깔을 띠며 한국사의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온 평양의 위상을 점검하고자 마련한 자리다.

평양은 고려시대에는 ’서경’(西京)이라 불리며 도읍지 개경에 버금가는 위상을 자랑했고 조선시대에도 제2의 도시였다. 이를 발판으로 평양은 근ㆍ현대기에도 공업도시로 성장을 거듭하면서 지금은 북한의 도읍지로 탈바꿈해 있다.

이런 다채로운 평양의 위상을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고대-현대에 이르기까지 5개 시대로 나누어 접근한다.

서울교대 임기환 교수는 ’고구려 평양 도성의 구성과 성격’에 맞추어 고구려의 평양 천도를 계기로 평양 일대에 정치적 기반을 둔 세력 중심으로 중앙정치의 구심점이 변동하는 한편, 벽화고분의 변모에서 엿보이듯이 문화적 양태 또한 요동 및 중원지역적 요소와 고구려적 요소가 결합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김창현 성신여대 연구교수는 ’고려 서경의 행정체계와 도시구조’를 분석한 결과, 서경이 개경에 버금가는 도읍이자 동경(경주), 남경(한양)을 초월하는 위상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오수창 한림대 교수는 ’청구야담’(靑邱野談)을 주된 자료로 활용하면서 ’조선후기 평양의 문화적 특성’을 고찰한다.

오 교수는 평양이 서울을 제외하면 조선 후기의 야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도시이며 평양이 등장하는 이야기 주제는 재물과 치부, 연애와 유흥에 집중되어 그렇지 않은 지역들과 뚜렷한 대비를 보인다고 말한다.

’근대 평양의 도시 형성과 상공업 발달’에 착목한 오미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전문위원은 근대기 평양지역 공업을 주도한 주체는 일본 독점자본과 조선인 중소공업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인 공업은 제조공정이나 생산설비가 간단한 양말ㆍ정미ㆍ고무ㆍ주류 등의 특정 업종에 집중됨으로써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동직조합이나 생산조합 등의 경제단체가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이신철 성균관대 연구교수는 ’사회주의 조선의 심장 평양, 동아시아 도시로의 변화 가능성’을 점검하면서 해방 직후에는 민주기지론에 입각한 ’민주수도’로 계획된 평양이 6.25전쟁 뒤에는 전후 복구 과정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의 원조를 받게 됨에 따라 역설적이게도 사회주의 이념을 실험하는 계획도시로 변모했다고 평가한다.

이교수는 그런 평양이 북한의 자주노선 천명 이후인 70-80년대에는 주체사상을 구현하는 도시로 탈바꿈했다가 지금은 김일성의 유훈을 이어받으려는 구호와 건축물들이 등장했다며 “아직 평양이 개혁개방에 걸맞는 도시로의 변모에 성공했다고 평가하기 힘들다”고 말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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