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불출마 대선구도에 `충격파’

범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였던 고 건(高 建) 전 총리가 16일 대선을 11개월 앞둔 시점에서 전격적인 불출마 선언으로 정치권 전반에 충격파를 안겨주면서, 여야의 대선구도도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고 전 총리의 대권포기로 인해 유력주자 부재현상이 심화되면서 한나라당 후보군에 대한 유권자들의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여권 내부에서는 새로운 대안후보를 물색하기 위한 움직임 속에서 잠룡(潛龍)들의 용틀임이 본격화되는 등 군웅할거식 경쟁이 점쳐진다.

또 고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은 열린우리당이 추진해온 통합신당 논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고, 민주당과 정치권 외곽의 정계개편 논의도 지금까지 그려왔던 그림을 대부분 수정하고 새 판을 짜야 할 상황에 처했다.

◇한나라당 독주체제 굳어지나 = 고 전 총리가 대선후보 경쟁대열에서 중도하차함에 따라 이미 양강 체제를 굳혀가고 있는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 쪽으로의 쏠림 현상이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고 전 총리는 신년 초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평균 12-13% 정도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3위로 고착화되는 현상을 보여왔다.

정책노선에 있어서 고 전 총리는 범여권 후보군 가운데 보수적으로 분류돼 왔고, 주요 지지층이 호남과 중도보수 성향 유권자, 안정적 국정운영 능력에 기대를 걸었던 세력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한나라당이 `출마 포기’의 1차적인 수혜자가 될 공산이 크다.

또 그동안 고 전 총리를 지지해왔던 유권자의 상당수가 상실감을 느낀 나머지 특정 후보쪽으로 옮겨가기 보다는 한동안 중립지대에서 관망태도를 보이게 될 경우, 무응답층이 급속히 늘어날 개연성도 충분히 상정해 볼 수 있다.

범여권의 새로운 후보 찾기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범여권의 대선후보 결정 시기는 상당기간 늦춰질 수 밖에 없고, 이에 따라 한동안 한나라당 후보들이 대선 가도를 독주하는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나라당내에서는 `예선이 곧 본선’이라는 식의 인식이 확산되면서 최근 불거진 검증 논란과 맞물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손학규(孫鶴圭) 전 경기지사 등 후보군들의 내부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은 고 전 총리의 불출마에 따른 유불리를 예의주시하면서도 일방통행식 대선구도가 그다지 달갑지 않다며 경계심을 보이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여당에서 후보가 나와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구도가 짜이면 모든 관심이 한나라당쪽에만 집중돼서 오히려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범여권 후보경쟁 오리무중 = 고 전 총리의 갑작스런 불출마 선언으로 범여권의 대선후보 경쟁구도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혼미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비록 고 전 총리는 전체 대선후보군 가운데 3위였지만 반(反) 한나라당 지지층을 결집하는 중요한 축이었을 뿐만 아니라 범여권 대권경쟁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상수’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우리당 오영식(吳泳食) 의원은 “중장기적으로는 전략적인 손실이고 여권 입장에서는 대선주자 카드 하나가 날아가 버린 것”이라며 “자칫 잘못하면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단 열린우리당 김근태(金槿泰) 의장과 정동영(鄭東泳) 전 의장 등 여당내 대선주자들은 고 전 총리의 중도사퇴를 계기로 구심점을 상실한 호남과 중도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끌어들이려 시도하면서 총력전을 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 전 의장의 경우 그동안 고 전 총리와 전북이란 지역기반이 겹치는 바람에 적잖은 `피해’를 입었던 만큼 ‘호남권 대선주자로의 부활’을 기대할 만한 상황이다.

김 의장과 정 전 의장의 지지율 반등 노력과 함께 범여권 잠룡들의 경쟁도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우선 여당내에서는 최근 산자부 장관직을 마치고 복귀한 정세균(丁世均) 의원, 천정배(千正培) 전 법무장관, 영남권 예비주자인 김혁규(金爀珪) 의원, 한명숙(韓明淑) 총리, 김두관(金斗官) 전 행자부 장관, 강금실(康錦實) 전 법무장관, 진대제(陳大濟) 전 정보통신부 장관 등의 물밑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정운찬(鄭雲燦) 전 서울대총장, 박원순(朴元淳)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 문국현(文國現) 유한킴벌리 사장 등도 고 전 총리의 몰락에 따른 공백을 메워달라는 범여권 지지층의 요구가 거세질 경우 대선 무대에 재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본인이 성명서를 통해 부정한 만큼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지만 고 전 총리가 범여권의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고 나설 경우 대선구도에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여당 신당논의 기로 = 고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등에서 진행중인 신당 창당 논의가 기로에 서게 됐다.

특히 선도 탈당을 공개적으로 언급해온 염동연(廉東淵) 의원 등 통합신당 강경파 의원들은 당초 예정대로 행보를 계속해나갈 지, 아니면 당내에 남아 상황 변화를 더 지켜볼 지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섰다.

고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이 신당논의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친노(親盧) 그룹 등 사수파 쪽은 선도 탈당 움직임이 주춤할 것이라고 내다본 반면 통합신당파 측은 애초부터 고 전 총리를 염두에 두고 신당 창당을 추진한 게 아니기 때문에 별 영향이 없을 것이란 반응이다.

사수파 초선 의원은 “선도 탈당 그룹은 아마 당황스러울 것”이라며 “`고건파’가 없어져서 이제 통합대상으로 민주당만 남는 데 민주당과의 통합은 100% 지역당이기 때문에 명분이 없어서 주춤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신당파 양형일(梁亨一) 의원은 “당내에 고 전 총리를 대선주자로서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통합신당파의 대다수가 고 전 총리를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여할 여러 후보중 한 사람 정도로 생각해왔기 때문에 신당 추진에 차질이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는 고 전 총리의 중도하차로 탈당파 의원들이 `고 전 총리쪽에 안주하려는 것 아니냐’는 정치적 오해에 대한 우려없이 홀가분하게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는 해석도 있다.

또한 신당파가 고 전 총리 및 민주당과 결합, ‘도로 민주당’을 도모하는 게 아니냐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견제도 약화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해석과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결국 여당의 신당 논의가 어떤 궤도를 타게 될 지는 선도탈당파 의원들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분석이 많다.

어떻든 간에 고 전 총리 중도하차에 따른 득실계산과 신당파의 전열정비 등에 소요되는 물리적 시간이 있는 만큼 여당내 신당 논의가 다소 지연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에 따라 우리당 전대준비위의 활동도 시한인 오는 20일 이후까지 연장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민주당 역시 당내의 친(親) 고건파 인사들의 원심력이 사라지면서 여당내 탈당파 의원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전당대회를 통해 내부 전열을 가다듬는 각개약진 전략을 택할 것으로 전망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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