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월향이 울고 갈 ‘월향합숙소’의 몰락

▲90년대 초 평양의 여성들<사진:연합>

평양시 모란봉구역 월향동은 임진왜란 당시 유명했던 애국 기생 계월향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월향동’도 그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월향동에 <평양 월향 여성독신자 합숙소>가 있다. 월향합숙소의 합숙생들은 직업과 연령대가 다양했다. 일생을 합숙소에서 보내는 여자도 몇 있었다.

비구니들이 사는 절간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월향합숙소는 남성의 출입을 절대 금지시켰다.

합숙소 접수실에는 ‘호랑이 노친’으로 소문난 직원이 낮에 근무섰다. 밤에는 호실별로 돌아가며 합숙생이 야간 근무를 섰다. 저녁 8시부터는 합숙생 면회가 일체 금지됐다.

식권 세 장으로 두 끼만 해결

▲자료제공 : NK조선

합숙소 식사는 하루 두 끼니는 밥, 한끼는 잡곡(옥수수가루 국수나 밀가루 국수)을 먹도록 식권이 나왔다. 처녀들은 대체로 아침식사 때 식권 세 장을 모두 사용했다. 한 장은 빈 도시락에 넣어 취사구로 들여보내면 반찬과 함께 밥을 채워 내주는데 도시락의 절반을 간신히 채우는 양이었다.

다음 두 장은 다른 취사구에 넣어 밥 두 공기와 반찬(배추볶음, 절인 무우 등) 두 접시를 배추 시래기국과 함께 쟁반에 받았다. 2인분을 함께 받는 이유가 있다. 밥 한 공기는 절반을 덜어내어 도시락을 더 채우고, 나머지 절반은 다른 밥 공기에 엎어 반찬과 함께 먹고 출근했다.

식권 3장으로 3인분을 받아도 실제 양은 2인분밖에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식권이 모자라게 되니 주말에는 합숙소 밖에서 사먹어야 했다.

1992년부터 반찬접시가 없어지고 기름기가 전혀 없는 배추 시래기국에 김치 몇 조각만 나왔다. 밥그릇에 찰락말락 하는 몇 술 안 되는 밥에는 샛노란 벼 알이 수북했다. 그냥 넘길 수도 없고 한 수저에 서른 개도 넘는 것을 일일이 고르며 먹다 보면 식사가 끝났어도 밥알이 위 천장에 가 붙었는지 창자에 붙었는지 기별조차 오지 않았다.

식량수매 과제와 김장전투

이런 합숙생들에게 쩍(툭)하면 식량수매 과제가 떨어졌다. 반년에 한 차례 정도 전 국가적인 식량수매사업이 벌어지는 데, 정 없으면 식권이라도 한 장 내라는 것이 합숙소 직원들의 요구였다. 여기에 복종하지 않는 합숙생은 눈치밥을 먹게 됐다.

합숙생활 중 가장 짜증나는 일은 인민반 회의였다. 평양에서 중요행사가 열리거나 중앙의 포고라도 내려오면 합숙 식당에서 합숙생 모임이 열렸다. 직장에서 수십 번도 더 교육받아 달달 외울 정도의 내용들이었다. 어떤 처녀들은 참가하기가 귀찮아 호실 옷장 속에 숨고 다른 처녀들에게 밖으로 문을 걸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러다 관리원에게 들켜 서로 언성을 높이는 일도 있었다.

월향합숙소에서 합숙생 전원이 해마다 참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합숙소 김장전투’ 였다. 아침 첫시간부터 합숙소측에서 그날 김장전투 동원자들을 동원했다. 합숙소 직원들은 작업도중 수시로 인원점검을 했다. 3일 동안 김장전투에 동원되고 나면 다음날은 직장에 출근할 힘도 없었다.

이 작업에 불참하면 그 달치 식권을 떼주지 않았다. 합숙생 다루는 일에 도가 트인 직원들은 마지막 한 명까지 잡아내어 ‘월동용 석탄 나르기’라도 시켰다.

합숙생활 십 년쯤 되면 대부분 합숙생들은 부족한 영양상태 때문에 몸이 허약해졌다. 너무 피곤하여 잠시 눈 붙였다 일어나면 6~8시간 지난다.

90년대, 몰락의 길로 접어든 월향합숙소

1998년, 평양에서 추방되기 이틀 전,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차 월향합숙소에 들러 보니 합숙소는 아주 몰락하고 있었다. 식당에선 국조차 끓여주지 못했다. 최근에는 밥만 달랑 내주고 있다고 했다. 석탄이 없는 관계로 통강냉이만 간신히 삶아주거나, 쌀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밀밥을 준다고 했다. 수저도 자기 것을 가지고 다니게 했다.

그러면서도 합숙소 직원들은 “일반 사람들은 배급도 못 타는데 너희들은 입에 풀칠이라도 하니 다행인줄 알라”며 큰소리 친다고 했다.

내가 올라간 6층 복도는 화장실에서 풍겨나는 악취로 가득 차 있었다. 세면장 바로 앞인 내 친구 방은 문이 열릴 때마다 정신을 잃을 정도의 악취가 풍겼다. 용변을 보려 문을 연 화장실은 발 내딛기가 끔찍했고, 세면장 바닥 하수구 쪽으로는 각양각색의 오물들이 널려있었다. 새하얗던 타일들은 싯누렇게 변색되고, 세숫대 하수구에서는 구역질 나고 메슥메슥한 허연 때가 성에처럼 두껍게 깔려 있었다. 용변을 보러 들어갔다가 오히려 더한 것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깨끗했던 합숙 내부는 호실마다 자체 석유 곤로를 들여 놓고(원래는 환경을 어지럽힌다고 개인들이 절대 음식을 못해먹게 했다) 능력껏 취사를 해결하도록 허락한 통에 벽면이 모두 그을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쾌하지 못한 된장내, 음식 냄새가 속을 울렁거리게 했다.

수돗물이 안 나와 물 나올 때 채워놓은 물그릇들이 신발장 주변과 창턱 위에 널려 있었다. 이불도 전에는 거죽을 벗겨 가져가면 세탁한 것으로 바꿔주곤 했는데 비누사정으로 합숙소 이불이 전부 회수하고 본인들이 능력껏 가져다 사용하는 통에 그 형편 또한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이불이 없어 솜옷을 사용하는 사람, 빨지 못해 때가 까맣게 오른 것을 그대로 덮고 있는 사람, 난방이 안돼서 이불이며 사람 피부까지 곰팡이가 생길 것 같은 살인적인 습기……

식당은 그 좋던 식탁과 의자들은 다 팔아버리고 다리 부러지고 찌그러진 식탁 몇 개와 걸상들이 되는대로 널려있어 밀려오는 절망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최진이 / 前 조선작가동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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