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모생활, 얼마나 서러운지 아십니까?”

▲ 평양시내를 걷고 있는 북한 여성

김일성이 죽은 1994년은 노처녀인 내가 결혼한 해였다. ‘월향독신자합숙소’ 10년 생활을 드디어 마감하였는데 그 해에 독신자 합숙소에서는 이상하게도 시집가는 노처녀들이 많았다. 모두 자식이 있는 후처 자리였다.

나 역시 성장한 아들 둘이 있는 남자와 인연이 되었다. 주변사람들은 딸이면 까다로울 텐데 아들이어서 별문제 없겠다고 나를 위로하였다. 딸이 있는 집에 들어간 여성들에 대해서는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딸보다 아들의 ‘계모 미워하기’가 더 고달퍼

그러나, 정작 내가 계모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딸보다는 아들이 더 문제였다. 딸은 성장하여 시집가기 전까지 속을 썩일지 몰라도 일단 제 남편만 따라 나가면 출가외인이라 친정 일에 간섭할 위치가 아니었다. 같은 여자로서 계모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아들은 달랐다. 딸보다는 계모를 이해하는 능력이 약했다. 집안 친척들로부터도 끊임없는 反계모의식을 주입받았다. “계모에게 집안일의 주도권을 내주지 말고 아버지의 재산과 집을 잘 관리하라”고 강요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못하면 ‘머저리’라 몰아세웠다.

아들들이 ‘머저리’가 되지 않기 위해 계모에게 기승을 부리게 되면, 아이들 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아들들에게 감정을 가지고 대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대부분 재혼 남성들은 “후처 얻자 감투 벗어지는 줄 모르는 인간‘으로 주위에 비쳐졌다.

후처를 잘 알고 두둔할 수밖에 없는 재혼남들은 후처를 이해할 의사가 없는 자식들로부터 크든 작든 원망을 샀다. 그래서 재혼한 아버지를 둔 자식들은 이 과정에서 계모와도 사이가 멀어지고, 아버지와도 사이가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콩쥐팥쥐와 신데렐라는 다시 쓰여져야

내가 평양에 있을 때, 잘 나가는 고위층 여성 한 명이 역시 고위직에 있는 상처(喪妻)한 남성과 재혼했다. 남성의 장성한 아들은 집안의 장롱이란 장롱들에 열쇠를 모조리 채우고 계모에게 일말의 권리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여성이 사회적으로 영향력도 있고 이루어놓은 재산도 있어 그나마 살림을 유지해나갈 수 있었지 그렇지 않으면 깡통 차고 쫓겨 날 뻔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남편도 자식들의 편에 서서 그녀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았다고 한다. 어느 날, 남편이 중병으로 덜컥 병원에 입원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자식들이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가 박대하던 후처만 날마다 꼬박꼬박 음식을 해들고 면회를 오자 남편은 마음이 확 변해버렸다고 하였다. ‘후처를 얻어도 감투를 벗지 않는 자’에서 ‘감투를 확 벗어버린 자’로 바뀐 것이었다.

그 남자의 자식들은 계모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심을 자기들을 밉게 보는 아버지에게까지 키우게 되었는데,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서로가 넘을 수 없는 깊은 강이 생겨 버렸다고 한다.

농업출판사 기자로 있던 한 독신 여성은 ‘신체검사’와 ‘문건요해’(신원조회)까지 마친 후 상처한 중앙당 정치국 위원의 후처로 들어갔는데, 남편은 입을 딱 봉하고 있는데다 자식들이 하도 세도를 부려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호소하였다. 그나마 나중에 중앙당에서 그 집 가정형편을 요해하고 자식들에게 집을 주어 분가시키는 통에 남편 수발은 할만 해졌다고 전해 들었다.

한창 성장 중에 있는 오누이가 있는 집에 후처로 들어간 내 중학 동창생은 후처생활의 온갖 괴로움을 후처살이로 헐떡이고 있는 나에게 울분을 담아 호소하곤 하였다. 의붓 자식들의 심리를 가만 보니 계모가 헐벗고 먹을 것도 못 먹으며 짐승처럼 살길 원하고 있더라고 하였다. 내 동창은 억장이 막힌다며 울부짖었다.

“<콩쥐팥쥐>나 <신데렐라> 이야기는 말짱 거짓말이다. 오히려 본처의 자식들이 계모를 박대하며 시시각각으로 숨통을 조이는 것 아니냐? 오늘의 신데렐라는 완전히 거꾸로 다시 쓰여져야 한다!”

2중 3중으로 설움 받는 북한의 계모들

북한 사회에 배회하는 무조건적인 계모 적대시 문화- 그것은 약자를 덮어놓고 증오하는 강자중심의 북한식 사회문화가 일찍부터 산생시켜온 한 산물이었다.

권력만능의 사고만이 판을 치는 북한 사회에서 계모는 ‘남편이 이루어 놓은 집과 재산을 하루아침에 뺏으러 온 야심가’로밖에 비추어질 수 없는 것이다.

남편의 자식들과는 ‘혈연적 연계가 없다’며 설움을 받고, 시댁식구들에게는 ‘낯설은 이방인’으로 배척받고, 친정식구들에게는 ‘불평등한 결혼’에 대한 원망과 걱정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 북한에서 살고 있는 계모들의 현실이다.

최진이 前조선작가동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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