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은 美제국주의 방식이라 싫다”

▲ 평양에 최초로 만들어진 순평완구공장 내부 모습 ⓒ데일리NK

평양에 진출한지 6년 만에 필자가 투자한 공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생산한 제품을 처음 만져보게 됐다. 전편으로 바로가기

북한에서 보기 힘든 원단을 가지고 서투른 솜씨로 여성 노동자들이 많은 고생을 했다. 한 달 동안은 원단 낭비가 심했다. 그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가면서 ‘곰 인형’ 시제품을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하얀 곰과 밤색 곰, 맹꽁이와 강아지, 고양이 인형들이 연속 출시됐다. 살아서 곧 움직일 듯한 눈동자들이다. 참으로 신기할 뿐이며 모두가 생명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어린이도 아닌 필자가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여기서 생산된 인형들이 한국으로 가고, 또 북한 아이들에게 가서 그들의 동심을 자극해 줄 것을 상상하니 여간 기쁘지 않았다. 아이들은 인형을 품 안에 품고 말을 하고 어루만지고, 볼을 비비며 사랑을 나눌 것이다. 생각만 해도 짜릿한 기분이다.

지금처럼 생산이 이루어지면 국내 업자들 간에 평가가 좋아 계속 주문생산이 이뤄지고, 제품생산에 필요한 기술과 노하우를 북측에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남북을 드나들면서 비디오, 사진을 통해 직접 기술을 가르쳐 일차적인 목표인 제품생산에 대한 이해능력을 스스로 습득하게 하는 능력을 올려야 한다.

다음 목표는 생산량을 늘려 가는데 필요한 집중교육을 시켜 매월 평균 십 만 개까지 생산 능력을 올리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까지 달성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이제부터 머리와 손의 속도가 따라주면서 이 십만 개는 무난히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까지 가게 됐다.

“우리는 자본주의 방식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북한 특유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임금은 고정돼있기 때문에 생산량이 적으면 원가가 상승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생산량을 늘리면 불량품이 많이 나왔다. 공장 지배인이나 공원들이 원가개념이 없었다.

생산량을 늘리고 제품도 불량률을 떨어뜨리라고 강조하면서 일을 빠른 속도로 추진하면 “우리는 자본주의 방식으로 일 하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에게 일을 많이 해서 수익이 남으면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되는 의식이 없었다. 그저 맡겨진 일만 하면 되는데, 힘들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일을 더 강하게 추진하자고 독려하면, 이들은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과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께서 말씀하신 생산공장에 대한 교시는 따로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따르지 사장선생지시에 따르지 않습니다”라고 말을 했다.

이렇게 말하면 나는 어안이 벙벙해 아무 할 말이 없었다. 따로 지배인을 불러 별도로 주의사항이나 기술을 가리켜 현장에서 재교육을 하도록 하면서 어려운 순간들을 넘기곤 했다.

이 봉제완구공장의 회사 이름인 ‘평양 순평봉제완구공장’도 필자가 지었고, 외국인 입장에서 현지법인 회사를 만들려면 당시에는 정무원 의결에서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허가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것 역시 만장일치로 동의를 해 줘 영업허가증도 받았다.

또한 이러한 인형공장이 북한에서 처음 생겼고, 신용도 좋았기 때문에 당의 관심이 매우 컸다. 단독공장 건설에도 합의하여 공장부지 2만 5천평도 받았고 신축공장의 설계도에 의한 건설도 착수했다.

여기에는 사무실, 제품연구실 및 제도실, 공장, 공원 기숙사, 체육시설, 혁명 교양실, 생활관(음악시설, 오락시설, 독서실, 목욕시설, 리발소 등) 식당 기타 편의시설을 겸비한 새로운 공장을 설계하여 당국의 건축 허가도 받았다.

“경쟁은 미 제국주의 운영방식이라 싫다”

대외경제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완구공장의 회사(상호)이름과 회사영업허가증(기사하단 설명 참조)을 정무원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발급 받았다. 참고로 회사 영업허가증은 단순히 국가에 신청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정무원 회의에서 각료들이 전원 찬성해야 허가증을 받을 수 있다.

첫 1년을 숙련기간과 북한정부 측 협조 반응을 보기 위해 다각도로 운영을 했다. 자본주의적 생산방법으로 생산직 총 240명중 한 개의 반을 60명으로 만들어 완전 독립생산 시스템으로 생산라인을 편성하여 반끼리의 경쟁을 시키려고 했다.

상여금 제도를 도입 4개조를 동일한 제품을 만들게 하여 생산량에 대한 합격품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 상여금조로 1등은 밀가루, 2등은 빨래비누, 3등은 설탕, 4등은 사카리, 이런 상여제도로 하여 생산능력을 올리는데 최선을 시도해봤다.

그러나 이 방법을 시행하자 “미 제국주의 자본주의적인 방법이라 조선은 싫어한다”고 했다. 그래서 중단했다고 다시 실시 해 보기도하고 많은 충돌과 많은 시비와 많은 거절을 당하면서도 꾸준히 설득 노력을 했다.

공장에 중형 라디오 카세트까지 설치하여 일 하는 시간에 씩씩한 혁명가와 휘파람을 교대로 틀어주었다. 그리고 생산량에만 치중 한 것이 아니고 전체적인 분위기 조성에도 신경을 써 가며 계획대로 차질 없이 순조롭고 재미있게 일을 시키려고 노력했다.

완구에도 동물에게는 살아 있는 듯한 모습의 생명을 넣어 만들어야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인형과 많은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살아 있는 듯한 모습으로 만들지를 못하니까 많은 경험이 필요했다. 그런데 일하는 공원들이 어렸을 때 인형을 가지고 놀아본 적이 없어서 이런 감각을 살리라는 요구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가슴 아픈 일이기도 했다.(계속)

김찬구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LA 동국로얄 한의과대학졸업, 미국침구한의사, 중국 국제침구의사.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졸업-북한학 석사. -세계화랑검도 총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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