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정 ‘123정’의 도착시간과 초기 구조과정 재구성

I. 123정의 초기구조 작업 재구성의 필요성


세월호 참사 현장에 구조함으로는 처음으로 도착한 100톤급의 경비정 123정은 정장 포함 14명의 승무원이 6000톤급 대형여객선 세월호의 승객을 구출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큰 빌딩이 물에 드러누운 채 돌면서 가라앉고 있는 상황이었다. 123정이 자신에게 부여 받은 임무를 제대로 이행하였느냐에 대해서는 극과 극으로 의견이 갈리고 있지만, 현재 언론과 검찰은 초기대응 부실의 주역으로 123정의 구조 작업을 들고 있다. 검찰은 사고 당일의 123정의 구조작업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였고, 감사원도 감사를 하였다.


검찰은 123정의 김○○ 정장이 퇴선 방송과 선내 진입 지시를 한 것처럼 조작했다는 이유로 ‘공용서류 손상 및 허위 공문서 작성·행사 혐의’로 체포하여 구속영장을 신청하였다. 그러나 광주지법 영장전담부 권태형 부장판사는 “증거인멸과 도주 염려가 없고 영장에 기재한 피의사실만으로는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하였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검찰은 김 정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 글의 목적은 123정이 목포해경 상황실로부터 사고 현장으로 출동지시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시각을 밝히고, 확정된 도착시간을 통해 과연 123정의 초기구조 작업을 재구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왜냐하면 123정이 제대로 구조작업을 하였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런 재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지금까지 언론과 검찰은 이 재구성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II. 123정의 도착시간: 9시 30분 vs 9시 35분


4월 16일 JTBC가 “침몰한 세월호에서 먼저 구조된 박 모씨는 JTBC와의 전화 통화에서 ‘해경이 너무 늑장을 부렸다. 한 시간 만에 왔다’며 ‘배가 절반 넘어간 뒤 오니 구조가 되겠나’라며 격분했다”고 보도하자, 해경은 당일 “목포해경은 119로부터 08:58경 사고신고를 접수(승객→119→해경 전화신고)한(08:58) 즉시, 해경 가용함정 및 헬기에 사고현장 출동지시” 하였다고 해명하였다. 이 해명에 따르면 123정은 물론 목포해경 구조헬기인 B511호도 8시 58분 출동명령을 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4월 28일 123호 김 정장은 승무원 몇 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면서, 출동시간을 8시57-58분, 도착시간을 9시 30분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5월 16일 뉴스타파가 “해경도 세월호 상황보고서 수정…부실대응 은폐의혹”이라는 보도를 하자, 해경은 상황보고서는 다른 기관에 전파되어 사후 조작할 수 없으며, 내용을 정정한 것은 “1일차 상황을 시간대별로 정리한 문서”라고 해명하였다. 여기서 123정의 출발과 도착시간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123정의 비상출동 당시 위치가 세월호로부터 10해리 떨어진 곳으로 기록돼 있었다. 당시 해경 123정이 현장에 오는 데 걸린 시간은 32분, 그렇다면 평균 시속 18.8노트로 운항” 관련.
-123정은 08:58분에 사고지점으로부터 12해리 떨어져 있었고  09:30분 사고 현장에 도착했음을 선박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확인함.


즉 해경은 4월 16일의 최초 시간대별 상황 문서에는 없었던 출동시간과 도착시간을 보완하였고, 123정과 사고지점과의 거리도 2해리 정도 차이가 나게 정정했다. 123정의 출동 및 사고해역 도착시간은 감사원이 7월 8일 발표한 중간보고서에 나와 있는 시간과도 일치한다.


그런데 123정 김 정장이 출동명령을 8시 57-58분에 받았고, 목포해경이 동일한 시각에 출동명령을 내렸다는 것과 배치되는 자료가 있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이 작성한 “골든타임의 재구성-해경전파상황을 중심으로”라는 문건에 의하면, 목포해경 상황실은 신고 접수 이후 8시 57분에 ‘해경 상황정보문자시스템 대화방’을 개설하여 상급관청에 보고함과 동시에 유관기관과의 정보 공유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긴급 지시사항과 보고사항을 담은 상황보고서 1보를 09시 02분에 진도VTS를 포함한 19개 상황실에 발송”하였다. 


이 상황보고서에서 목포해경은 세월호 침몰의 정확한 위치를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방 1.8해리”로 파악하였다. 이어 9시 3분에 해경 주파수공용통신(TRS, 090324파일, 33초)을 통해 “모든 국 모든 국 여기는 목포타워(목포해경 상황실) 현 시간 전남 관매산 전라남도에 ‘관매산(전라남도에 관매산이라는 지명은 없다. 관매도를 의미하는 것 같다)’ 남동 2.7마일에서 여객선 침몰 중 모든 선박은 그쪽으로 집결해 주기 바랍니다. 여기는 목포타워. 수신여부”라고 출동명령을 내리고 수신여부를 묻자 곧바로 123정이 ‘수신완료’로 응답하였다. 몇몇 언론은 8시 58분에 출발한 123정이 굳이 9시 3분에 다시 수신 완료 메시지를 보낼 이유가 없다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목포해경 상황실은 9시 3분에 ‘상황정보문자시스템’을 통해 123정의 출발소식을 관련기관에 전파하였다. 만일 123정이 9시 3분경에 출동명령을 받고 약 32분 걸려 사고지점에 도착하였다면 도착시간은 9시 35분경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세월호에 가장 먼저 도착하여 구조작업을 한 해경 B511 박○○ 항공구조팀장(경위)은 헬기가 목포 상황실로부터 출동 명령을 받은 시각이 9시 3분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또 박 팀장은 B511호가 11시 27분경에 세월호 상공에 도착하여 구조작업을 시작하였다고 밝혔다. 









▲목포해경이 사고일 9시 2분 팩스로 전파한 상황보고서.





위의 해경 B511호에서 촬영한 동영상의 시간 스탬프를 보면 도착은 오전 9시 17분 57초, 123정의 도착은 9시 25분 13초로 되어 있지만, 박 팀장의 진술과 비교하면 10분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B511호가 9시 3분 출동명령을 받고 9시 10분 이륙하여 목포로부터 사고 해역까지 74km되는 직선거리를 최대 속도 296km로 비행하였을 때 15분 정도가 소요되니, 이것은 도착 시간이 9시 27분경이라는 박 팀장의 기술과 현실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즉 오른쪽 사진의 123정의 도착시간은 9시 35분경이다.








▲왼쪽 사진: 123정 도착 직전 B551 구조 장면, 오른쪽 사진: B551호에서 두 번째 배스킷 구조 장면.


123정이 9시 35분경 사고지점에 도착했다는 증거는 또 있다. 위 왼쪽 사진은 123정이 세월호 근처에 도착하여 두 번째로 배스킷을 이용하여 승객을 헬리콥터로 올리는 장면이다. 이때 시각은 B511호의 사고해역 도착시간(시간스탬프 1:00추정)과 영상의 시간 스탬프(8:26), 그리고 박 팀장이 진술한 9시 27분 도착을 종합하여 계산하면, 123정의 도착시간은 대략 9시 34분 30초 내외로 추정된다. (두 번째 승객을 기준으로 삼은 이유는 승객의 옷이 검정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구조된 식당아주머니는 하얀 옷을 입었고, 123정에서 찍은 영상으로도 희미하지만 구별이 가능하다. 식당아주머니는 두 번째 승객보다 약 1분 전에 헬리고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123정의 도착시간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진도 VTS가 공개한 레이더 영상이다.









▲왼쪽: 123정이 도착할 때 촬영된 B511호(구조 중)와 B513호(선회 중). 오른쪽: 진도VTS 레이더 화면, 시간 스탬프는 9:35:43, 붉은 사각형 내에 123정과 해경 헬기 B511, B513의 모습도 보인다.


위 레이더 화면에서 분절된 녹색 궤적 앞에 주황색 형체가 123정이다. 붉은 사각형 내에 이미 두 대의 헬기가 도착하였고, 9시 32분에 도착한 B513은 B511호의 구조작업을 기다리며 선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도 VTS의 레이더에 의하면 B511호의 도착시간은 9시 28분 30초경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오른쪽 레이더 화면의 시간 스탬프에서 1분 30초 정도를 빼면 9시 34분 13초로 이전의 B511호의 두 번째 배스킷 구조 사진으로 추정한 시간과 대략 일치한다. 박 팀장이 사고 해역에 9시 27분 도착했다고 하였으나 약 1분 정도의 오차가 있다고 보면 123정의 도착시간은 9시 35분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즉 123정의 도착시간은 9시 30분이 아니며, 이 시각을 전제로 한 123정의 구조작업에 대한 평가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123정의 출발시간은 언제인가. 목포해경의 공개자료에 의하면 123정이 출동명령을 받았던 지점에서 사고지점까지 32분 걸렸다고 한다. 123정이 명령을 받고 즉각 출동하였다면 출동 시간은 9시 3분경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한 편 명령을 받을 당시 123정이 사고 지점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고 평균 속도가 얼마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으므로 확실한 출동시간을 추정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목포해경이 사후에 수정한 4월 16일 상황일지의 자료에서 도착시간은 분명 틀렸기 때문이다.


참고: 목포해경상황실이 9시 2분 팩스로 전파한 상황보고서의 세월호 침몰 위치는 ‘병풍동 북방 1.8해리’로서 실제 사고 지점과 일치하지만, 9시 3분의 출동명령에 나와 있는 ‘관매산 남동 2.7마일’에서 ‘관매산’이란 지명이 없기에 ‘관매도’로 이해할 경우 이 위치는 사고 지점과 12km 정도 떨어져 있다. 또 ‘병풍동 북방 1.8해리’라는 사고지점 확인 시간은 상황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III. 123정의 퇴선방송


현재 선실진입과 퇴선방송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23정 김 정장은 언론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그렇다면 김 정장은 정말 퇴선 방송을 안 하였나. 김 정장은 4월 28일 기자회견에서 ‘출동명령을 받은 시각이 8시57분-58분, 도착시각은 9시 30분이며 이때부터 약 5분간 퇴선유도 방송을 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검찰은 이런 방송이 없었다고 발표하였다.


검찰수사결과 목포해경 123경비정 정장과 승조원들은 참사 발생 열흘째인 4월 25일부터 본격적으로 ‘항해일지’ 조작을 모의했으며, 조작된 내용에 따라 언론인터뷰를 하고 감사원 감사에 임했던 것이다. (…) 검찰 관계자는 “처음에는 정장이나 승조원 모두 입을 맞춰 퇴선방송을 했다고 진술하다가 검찰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정장이 시키는 대로 진술했다’, ‘퇴선방송을 들은 적 없다’고 진술을 바꿨다”고 말했다. 


5월 19일부터 감사원은 123정 승무원을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하였고, 7월 8일 중간보고서에는, “’09:35경 세월호 400m 전방에서 승객 탈출 안내 방송을 실시하였다’고 진술하나, 상공의 헬기소음 등 고려 시, 승객들에게 전달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하였다. 기자회견과 감사원 중간보고서와의 차이는 퇴선방송 시작 시각이다. (감사원 보고서는 123정의 도착시간은 9시 30분이라고 기술하였다.) 언론이 퇴선방송이 없었다고 보는 이유는 해경이 공개한 동영상 중에는 123정이 세월호 승객에게 퇴선방송을 하는 장면이 없기 때문이다. 김 정장이 4월 28일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퇴선방송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퇴선 명령은 어떻게 하셨나요.
“저희 배에는 함 내 경보방송장치가 있습니다. 그 장치로 ‘승객 여러분 총원 바다에 뛰어내리십시오, 퇴선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 매뉴얼 상에 선체 진입 하게 돼 있지 않나요?
“이 배가 크기 때문에 기울기 때문에 세월호 선체 밑으로 들어갑니다.”
– 이○○ 경사는 하셨잖아요.
“그것은 시간이 10분 이상 지난 뒤에 각이 70도 이상 되니까 올라갔습니다.”
– 방송은 몇 시쯤 하셨나요. 퇴선하라는
“30분부터 35분까지 했습니다.”
– 방송 듣고 나온 사람도 있었나요?
“방송 듣고 한 3, 4분 후에 좌현 함미 쪽 그때 사람이 보여가지고 저희 단정이 최초로 가서 먼저 구한 겁니다.”


앞에서 확인한 대로 123정의 도착시간은 9시 35분경이다. 따라서 30분터 35분까지 방송을 하였다는 것은 사실일 수 없다. 그러나 김 정장이 스스로 출동시간과 도착시간을 5분 일찍 한 것으로 ‘조작’할 이유는 없다고 보인다. 그 반대이다. 123정이 세월호 근처에 도착한 시각을 9시 35분경이라고 하고, 고속단정을 내리는 데에 약 3, 4분 정도 걸린 것으로 추정하고, 이때 함미의 승객을 보아 고속단정을 출발 시켰다면 그 시각은 9시 39분경이다. 다른 한편 고속단정이 2회 승객 구출을 해서 123정에 옮겨 주고 다시 세월호 중간 현측으로 출동할 때까지 걸린 시간을 5분 정도이고, 9시 44분에 상황실에다 ‘직원을 승선시켜 (퇴선)유도하겠다’는 보고를 한 후에 123정이 조타실에 접안한 시간이 9시 45분경이라는 사실을 모두 고려하면, 고속단정의 출발시간은 9시 39-40분경이라고 보아야 한다.








▲좌측은 123정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 9시 35분경, 우측은 고무보트가 함미로 출발하는 9시 39분경.


해경 동영상에서 이어진 두 개의 쇼트(short)에서 카메라의 각도가 변하였다. 오른쪽 화면이 더 높은 곳, 더 왼쪽에서 찍혔다. 멀리 보이는 섬의 크기가 거의 변하지 않은 것을 보아 123정은 정지하면서 조금 뒤로 밀렸지만 캠코더 화각(줌)은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뱃머리 검은 구멍의 크기 변화는 피사체와의 거리 변화에 기인한다. 123정 선체사진을 볼 때, 왼쪽 화면은 갑판에서, 오른쪽은 함교 내부에서 찍은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오른쪽 화면과 연속으로 이어지는 영상에서 무전소리가 들리며, 헬리콥터의 소음을 고려할 때 외부에서 함교 내의 무전소리를 또렷하게 녹음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123정의 동영상이 편집이 되지 않았다’는 김 정장의 기자회견 내용이 사실이라면 두 장면 사이에 촬영은 4분 내외가 중단되었다. 그 이유로서는 촬영자가 갑판에서 함교로 이동할 때 촬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는 추정이다. 물론 이때 촬영을 한 것을 잘라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동영상 편집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종합하면 123정 김 정장이 퇴선 방송을 하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동영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의 기자회견 내용을 거짓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촬영이 없었던 바로 이 시간에 퇴선방송을 하였고, 이때 장소이동으로 촬영이 중단 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검찰의 주장처럼 퇴선방송이 없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동영상이 편집되어 문제의 4분 정도가 잘려 나갔다면 그 이유가 퇴선방송이 없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고, 화면이 장소이동으로 심하게 흔들려서 잘랐을 가능성도 있다. 4월 25일 해경을 수사하겠다는 발표가 나자 123정 정장과 승무원들이 모여서 ‘선내진입 시도 및 퇴선방송 부재’에 대한 언론의 맹렬한 비난에 대응하기 위하여 4월 16일 구조작업을 복기(復棋)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런 모임을 ‘조작모의’라고 부르는 것은 예단(豫斷)이다.


만일 검찰 측 주장처럼 퇴선방송을 하지 않았다면, 9시 35분경에 도착하여 3-4분 고속단정을 내리고 보니 함미 쪽 4층 난간에 승객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사실 헬리콥터가 떠 있는 상태에서 퇴선방송이 승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고속단정을 내리는 동안 녹음되어 있는 퇴선방송을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다른 한편 9시 30분 도착설은 그 이후의 123정의 행적을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도착 후 퇴선 방송을 5분간 하고 고속단정 출동시간까지 3-4분간 그냥 기다렸다거나(김 정장), 퇴선 방송을 하지 않았다면 5-6분 정도 그냥 기다렸다는 것이다(검찰). 긴박한 상황에서 승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123정의 도착시간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은 123정이 도착 후 곧바로 상황실에 현장 상황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언론의 비난은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이다. 상황실에서 9시 37분 현장 상황 보고를 요구하였는데, 123정이 9시 35분경에 사고 지점에 도착하였을 때는 급선무는 고속단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때 1-2분이 지난 후에 상황보고 요청이 온 것을 보고를 먼저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123정의 도착시간 차이 5분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다.


IV. 123정 실내 진입


세월호 승객 구조작업과 관련하여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는 사실은 123정이 승객에게 퇴선 방송을 하지 않았으며, 또 선실에 진입하여 승객들을 구조하거나 퇴선을 유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다:


“세월호 침몰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해경 123정은 급격히 기울며 침몰하는 선체에 올라갈 능력도, 용기도 없었다는 것이 해경 교신록에서 드러났다. 당시 해경 지휘부는 네 차례에 걸쳐 세월호에 진입하거나 승객들을 바다에 뛰어내리도록 조치하라고 독려했으나, 123정은 ‘이미 배가 기울어 진입도 탈출도 어렵다. 곧 침몰할 것 같다’ ‘특공대 투입, 항공 구조가 급하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9시 35분경 123정 김 정장이 사고 해역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한 일은 고속단정을 내려서 세월호 좌현에 있던 승객을 구조하는 일이었다. 고속단정을 내리는 데에 3-4분 정도 걸렸고 고무보트는 세월호 좌현에 접근하였지만 선실로 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조갑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해경(海警)자료와 경○○ 정장의 증언을 종합하면 李00 경사의 행적은 이렇다. <9시43분경 좌현 선미로부터 3분의 1 지점 현측(舷側)에 올랐으나 선실 쪽으로 진입하는 입구가 가까이 없고, 내부 구조물까지의 거리는 3m 이상인데 경사가 60도 이상이라 올라갈 수가 없었다. 구명벌을 (발로 차서) 두 개를 바다로 던졌다. 9시48분경, 123정이 선수(船首)에 접안하였을 때 승객들이 조타실로부터 호스를 이용, 탈출하였다. 이들은 나중에 선원들로 밝혀졌다. 李 경사는 123정의 홋줄을 이용, 조타실로 진입, 퇴선방송을 하려고 하였으나 경사가 너무 심해 미끄러져 내렸다.”









▲왼쪽 사진: 좌현 4층의 승객을 구하고 있는 고속단정, 난간 왼쪽 끝에 4층 휴게실과 로비로 통하는 문이 열려 있다. 오른쪽 사진: 이00 경사가 5층으로 올라가 구명벌로 향하고 있다.


9시 40분경 세월호는 적어도 55도 이상 기울어진 상태였고, 4층 갑판에서 학생들이 있는 선실 벽까지의 길이는 세월호의 설계도를 보면 약 2.8m 정도이다. 이런 상태에서 세월호 중앙부 좌현에서 우현 쪽으로 미끄러운 갑판을 기어 올라가 선실로 진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구조대원이 구명보트로부터 4층에 올라가 난간을 따라 선수 쪽으로 걸어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왼쪽 사진). 여기서 4층 객실로 통하는 문을 지나면 휴게실과 넓은 공간이 나오는 데, 어떤 언론은 해경이 높은 경사로 인해 선실로 진입하지 못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거짓말은 알고도 안 했음을 감추었을 경우이다.


위의 해경 구조작업 사진의 왼쪽에 4층의 객실로 통하는 문이 열려 있음을 볼 수 있다. 만일 123정의 누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4층 선실 내에 많은 승객들이 대피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을 알았다면, 4층 난간의 문을 통해 선실 내로 진입하였을 것이고 ‘즉시 퇴선 하라!’고 외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후에 이런 사실을 영상분석을 통해 알았을 때의 이야기다. 언론은 사후의 전지적(全知的) 시점에서 해경 구조행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123정의 정장이나 승무원들이 이런 지식을 사고 당시에 갖고 있을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세월호 선원이 선실 진입 방법을 알려주는 것인데, 9시 38분쯤에는 진도 VTS와 통신이 단절되었고, 따라서 123정과도 교신이 불가능했다고 보인다.


9시 44분경 123정 정장은 상황실과 첫 번째 교신에서 “현재 승객이 안에 있는 데 배가 기울어져서 현재 못 나오고 있답니다(간접화법에 주의). 그래서 일단 이곳 직원을 배에 승선시켜서 안전 유도하게끔 유도 하겠습니다”라고 보고하고 9시 45분경 선수 조타실 아래에 123정을 접안시킨 후 조타실 진입을 시도하였다. 다음은 조타실 진입을 시도하였던 박○○ 경장의 경험이다.


“그때 저는 세월호에 타고 있었는데 123정에 승선하고 있던 대원들이 저더러 뭐라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소리를 치는 겁니다. 헬기 소리 때문에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는데 하도 긴박하게들 소리치는 모습을 보면서 제 나름대로 해석했지요. ‘아, 조타실로 들어가서 남은 승객들에 대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하라고 지시하는 모양이구나.(…)”


줄을 단단히 잡은 채 조타실 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조타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더구나 문 안쪽에서 ‘홋줄’ 매듭은 끝이 나고 있었습니다. 뭐라도 잡을 게 있었더라면 그걸 잡고 선실(船室) 내부로 더 들어갈 수 있었을 테지만 선실 벽은 대부분 두꺼운 철판이거나 합성수지계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둘 다 표면이 매끄럽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게다가 더 이상 잡을 것이 안보이니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예 줄을 놔 버렸습니다.”


해경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123정은 조타실의 선원과 승객을 구하고 세월호로부터 후진(後進)하여 멀어져 가지만 박 경장은 세월호에 남아 조타실로 올라간다. ‘텅 비어 있었지만, 잡을 게 있었다면 조타실 내부로 들어갔을 것’이라는 박 경장의 기술은 조타실 진입의도가 조타실 승객의 구조가 아니라, 객실 승객 퇴선유도였음을 말한다. 이점은 김 정장이 선수로 접안하기 직전 목포해경 상황실에 보고한 ‘직원을 승선시켜 승객 안전을 유도하겠다’는 내용과 일치한다. 승객보다 먼저 탈출하여 국민의 공분을 산 이준석 선장은 9시 38분경 ‘퇴선명령을 내렸다고’는 주장하지만 승객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참고로 123정 조타실에 접안하였을 때의 동영상의 소리를 잘 들어보면, 123정이 녹음된 방송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헬리콥터의 굉음과 정장의 마이크 지시 소리로 방송 내용은 이해 불가능하다. 그러나 방송을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검찰은 김 정장이 123정 항박일지(항해와 정박일지)에 “9시 47분 123정 승조원들이 줄을 연결해 선내 진입을 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을 사후에 추가로 집어넣어 조작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승객 안전 유도’를 목적으로 선수 접안을 김 정장이 결정하였고, 박 경장이 세월호에 남아 조타실 진입을 시도하였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검찰의 ‘조작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V. 123정 김 정장은 초기구조작업 재구성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123정의 초기 구조작업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123정은 출동명령을 받고 곧바로 사고해역으로 떠나 9시 35분경 사고 지점에 도착하였다. 고속단정을 내리면서 김 정장은 세월호 옆에 123정을 직접 계류하면 ‘세월호 밑에 깔릴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도착 후 1-2분이 지난 9시 37분경 상황실에서 현장상황을 보고하라는 무전이 왔다. 김 정장은 고속단정을 내리는 동안 퇴선방송을 했다고 주장하고 검찰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9시 39분경 함미 쪽에 승객을 구출하러 고속단정이 출발하고 123정은 세월호와 계속 거리를 유지하였다. 고속단정은 2회에 걸쳐 11명의 승객을 구출해 세월호로부터 일정 거리에 있는 123정으로 옮겼다. 김 정장은 구출된 승객 혹은 구조대로부터 ‘승객이 선실에 갇혀 있다’는 말을 듣고 고속단정의 구출방식으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판단하여, 상황실에 ‘직원을 승선시켜 퇴선을 유도하겠다’고 말하고, 9시 45분 선수 조타실에 접안하였다. 이때 좌현 현측으로 계단을 통해 5층 갑판으로 올라온 이○○ 경사가 구명벌을 내리려고 시도하였다. 조타실 접안 이후 내용미상의 녹음된 방송을 하였다. 조타실로부터 선원들이 내려왔는데, 김 정장과 승무원들은 이들을 승객으로 알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홋줄을 승객의 도움을 받아 조타실 입구에 고정하는 데에 성공하자 몇몇 선원이 홋줄을 타고 내려왔다. 9시 50분경 조타실 진입을 위해 박○○ 경장을 세월호에 남겨 놓고 123정을 후진시켜 빠져 나왔다. 박 경장은 조타실 입구에서 더 이상의 진입에 실패하고 내려와, 한 승객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주고 같이 바다로 뛰어 내렸다. 김 정장은 123정의 구조대원으로는 선내 진입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9시 51분 상황실에 “승객이 절반 이상이 지금 안에 갇혀서 못 나온답니다. 122 구조대가 와서 빨리 구조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이후 상황실과 3009함에 있는 목포서장으로부터 퇴선유도와 선내진입을 요청 받았지만, 세월호의 상태는 빠른 속도로 조타실 진입 시도 때보다 더 악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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