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떠나는 이종석 통일장관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와 남북화해를 위한 노력과 성과들이 무차별적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정쟁화되는 상황에서 저보다 더 능력있는 분이 이 자리에 와서 극복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이 북한 핵실험이 몰고 온 거친 파고를 넘지 못하고 25일 공식적으로 장관직에서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학계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올해 벽두에 장관에 지명됐고 2월 10일 취임했으니 8개월 여만에 사의를 표시한 것이다.

그의 재임 기간은 화려했다기보다는 좌절과 인내, 도전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관계가 이미 지난해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문제로 북핵 협상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렸기 때문이다.

전임 정동영(鄭東泳) 장관이 2004년 7월 취임 직후 당국 간 대화의 끈이 끊겼다가 작년 5월부터 남북관계가 급격히 복원되고 북핵 6자회담도 9.19 공동성명을 낳으면서 장관직을 화려하게 마무리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장관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장관 지명자 신분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칠 때도 `사상 편향’ 논란에 휩싸였고 한나라당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취임사에서 `국민 속으로’를 통일부 모토로 내세우면서 국민 공감대에 기초한 대북정책 추진을 위해 각계 인사를 접촉하며 사방으로 뛰면서 통일정책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둘러싼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나온 이념 논란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게다가 카운터파트인 북측도 크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것처럼 보여졌다.

취임 직후부터 북측은 3월말 평양에서 이뤄질 예정이던 제18차 장관급회담을 한미 군사연습을 문제삼아 일방적으로 연기하면서 신임 장관 길들이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그는 4월 열린 18차 장관급회담에서는 어느 정도 합격점을 받았다.

취임 직후부터 인도적 차원에서 납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 해결에 의지를 보인 그는 납북자 해결을 위해서라면 대북 지원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제안을 내놓으면서 그동안 남북관계에서 금기시돼 오던 납북자 문제를 회담에서 거론하기 시작했고 김영남씨 모자상봉도 이끌어낸 것이다.

또 내부적으로 그동안 표류해왔던 납북자 가족 지원법을 완성했다.

그가 처음으로 시험대에 오른 것은 5월 24일 경의선.동해선 열차시험운행을 북측이 일방적으로 연기한 사건 때다. 시험운행을 불과 24시간 여 앞두고 북측이 연기를 통보하면서 대북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북한에게 뒷통수를 맞았다는 비판과 함께 통일부의 오판을 꼬집는 지적에 직면해야 했다.

6월 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 열차시험운행을 전제조건으로 대북 경공업 원자재 제공에 합의, 시험운행 문제를 돌파했지만 열차가 달릴 날은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상황이다.

최대 위기는 7월 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였다.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발사를 강행하면서 정부는 대북 쌀 차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해 버렸다. 미사일 문제의 출구가 보일 때까지 쌀 차관을 중단한 조치는 대북 정책 기조에 미묘한 변화를 몰고오기도 했다.

더욱이 정부내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열린 제19차 장관급회담이 3일만에 조기 결렬로 귀결되고 북한은 이에 따른 `보복’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중단하면서 남북관계는 식기 시작했다.

그나마 7월 중순 북한 수해를 계기로 쌀과 자재장비 등 수해복구 지원에 나서면서 남북관계의 불씨를 되살리려고 시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수해지원이 끝나기도 전에 북한이 지난 9일 핵실험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이 장관 본인도 결정적으로 사임을 결심한 것이 핵실험 이후라고 털어놓았다. 실제 한나라당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강하게 받았고 그는 10일 국회에서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사퇴권고 결의안을 추진하겠다는 얘기도 일부 야당에서 흘러나왔다.

그가 대북 포용정책의 상징처럼 인식돼 왔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으로 있을 때부터 참여정부 외교안보정책의 한 복판에 있었던 만큼 핵실험이 포용정책을 크게 흔들면서 그가 외풍에 휘청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가져왔다.

이 장관은 이날 “북한 핵실험이라는 막았어야 할 상황을 막지 못한 게 유감이고 회한”이라며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대북정책, 외교안보정책에 대해 이념이나 정치적 편향으로 보는 것이 극복되지 않은 점”이라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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